포탈라 건너 뛰고 맛뜨리아에서

포탈라 건너뛰고 맛뜨리아에서!

 

영화를 본 후 감독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왔다. 로비에 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윤지미씨가 우리 일행에 합세했고,

여러 사람과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되었다.

 

시작 전에 받은 노란 쪽지에 별표를 해서 팬 투표함에 넣고, ‘독립영화’에 관한 설문지도 작성했다. 요즘 설문지 작성해주는 데는 공짜가 없더라. 여기서도 볼펜 한 개와 커피 한 병씩을 주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지? 우리는 배꼽시계가 보내는 째깍소리에 충실하기로 했다. 극장 뒤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적당한 음식점을 찾아서 두리번 두리번....... 선두에 선 사람의 꽁무니를 좇아서 계단을 올랐다.

 

분위기가 어째 괜찮은 거 같다. 식탁마다 하얀 식탁보가 깔려있고 식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에그.. 그런데 이게 뭐람? 전부 예약석이란다. 뭔 일이여? 토요일 밤 누가 이곳을 벌써 다 찜해놓았단 말인가. 할 수 없지. 선약이 있다는데... 일행은 줄줄이 다시 내려왔다.

 

‘포탈라’, 우리가 들어갔다가 나온 티베트음식점이다. 포탈라는 모든 티벳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달라이라마를 경외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덕분에 이 음식점 ‘포탈라’도 나름대로 단골손님을 확보하고 있나보다. 포탈라, 좋겠다.

           

                  

 

포탈라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 북서부의 포탈라산에 있는 궁전을 가리킨다. 포탈라는 첨에 송첸캄포왕 때 만들었지만 가장 위대한 제 5대 달라이라마가 지은 것이라 한다. 왜 우리는, 왼 만한 사람들은, 테베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말한다.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외국 사람들 중엔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나 이게 정확한 말일까? 그 보단 사람들에게 각인될 만한 한국의 상징물이 문제인 거지. 안 그래요?

 

한걸음 건너 두세 걸음 그리고 건너건너 돈까스집으로 갔다. 여기다. 우리가 들어갈 집이, 여기도 알고 보니 나름 자주 와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송기역씨,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와본 곳이라고 했다. 똑같은 컨셉으로 모 여대 앞에서 크게 성공한 집이라고 했다.

 

오방찌게 둘, 주먹밥 둘, 돈까스 둘 그리고 원하는 사람마다 밥 한 그릇씩,“이집 고구마 돈까스가 맛있어요!” 송기역씨가 말했다. 곁들여서 음식점의 역사를 간략하게 말해주는 것이어서 앞에서 소개한 것이다. 근데 우리는 이곳에서는 정말 밥만 부지런히 먹었다. 4만 6천원치(?)

 

‘영상포럼’이니 어쩌니를 논해본 곳은 2차로 가서였다. 발단은 뭐시더라? 송기역씨가 감명 깊게 본 ‘시대정신’이라는 다큐멘터리와 또 일본 감독 키타노 다케시의 작품 ‘그해 여름은 푸르렀다’를 얘기함으로서 영감을 얻었다. 우린 이렇게 명동성당 앞에 있는 괜찮은 호프집에서 소세지 안주와 훈제 닭요리를 놓고 생맥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답니다. 

 

                 

 

 “어떻게, 좋은 영화를 많이 보셨네요?” 아는 사람이(아님, 어떤 사람) 보내줬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 혹은 어떤 사람이 그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 없는 사람은 쪽팔리겠다 싶었다. 그러니 어떤 사람 있는 송기역씨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주시압!’

 

모두 짝짝짝! 7기생들(원하는 사람에 한 해서에요!) ‘7기’라는 이름 안 붙여도 되는 거구요. 어쨌든 1달에 한번이라도 영화사적으로 다큐멘터리 역사 상 기념비가 될 만한 좋은 작품 있음 힘 합쳐 구해보고 포럼을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음다.

 

그 과정에서 모든 준비가 다 잘돼서 첫모임을 번듯하게 시작하면 좋지만 세 번째 7기모임조차도 뭔가를 논의하기만을 위해서 만난다는 것은 시간상 공간상 개인 일정상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썩 내키지도 않고요. 다시 말하자면 두 번의 만남도 여러 번의 전화와 까페 게시판을 통해서 공지한 결과였거든요. 근데 논의하자고 세 번째도 또 그렇게?

 

참석자 8명 중에서 영상이든 다큐든 긴 영화든 간에 ‘영상물’을 매개로 모임을 갖자는 취지에는 전원 찬성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다시 말을 앞으로 돌리자면, 첫모임을, 모든 거 준비해서 번듯하게 시작하면 좋겠지만, 모임이 완전 정착되기 일보 직전의 과도기인지라 이시규님아이디어를 하나 냈어요. 님의 웹하드에 영상물 하나를 다운 받아놓을 테니 3차 모임을 그냥 논의만 하기위한, 아니면 대책없이 모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에서 보고 만나자는 것입니다.

 

어때요? 이시규님이 모임을 위해서 배려한 이 제안이 괜찮치 않나요? 아님, 어느 분이 나서서 영상포럼을 포럼답게 하기위한 준비와 배려를 해주신다면 좋은 일인거구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완전 만족은 못하지만 차선책으로다가 이시규님이 제안하신 방법도 좋구요.

 

모든 기수를 뛰어넘어 좋은 추지로 하는 것에 제약이나 구분을 지으면 의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폐쇄적인 공간 보다 열린 공간이 좋겠지요. 아무리 열린 공간이라 노래 불러본들 이 바쁜 세상에 모임 근근히들 이어가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첨부터 구분 짓고 줄 그어 놓는 모임은 전 원치 않습니다.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를 아시나요?

아동문학에서 본 책 이름이에요.

좋은 의견 많이많이 보태주시고요

댓글 많이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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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3:05 2010/02/0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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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의 대화 ~ 외박의

영화감상 후 팬 미팅

 

영화가 끝났다. 팬미팅 시간을 가졌다. 김미례 감독과 다큐멘터리 속에 나오는 실제 인물 두 사람이 함께한 자리였다. 이랜드 일반노조 이남신 전 수석부위원장과 전 사무국장 홍윤경씨이다.

 

김미례 감독은 상당히 들떠있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본인의 작품이 상영되고 관객들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는다는 사실이 즐겁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니까.

 

이랜드노조원 출신 두 사람은 ‘외박’의 성공을 빌어주며 각자의 발언을 또박또박 이어나갔다. 먼저 이남신 부위원장은 투쟁과정에서 진보신당의 비례대표국회의원으로 출마한 뒷이야기를 잠깐 해줬다. 그 일로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는 짧은 이야기였다.

 

온 나라가 대통령선거로 들썩일 때 그들은 한참 투쟁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서 투쟁목적을 극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정당에 몸을 실어 국회로 진출하려는 뜻을 세웠다. 실제 조합원들과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도 잠시 비췬다.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섣부른 액션이었는지도 모른다. 선거는 연말이었는데 그들의 농성투쟁은 정확히 6월 30일부터 시작했으니까 아무리 그들의 복직투쟁이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정치세력화 하는 데는 ‘꿈도 야무져’하는 평가에 그칠만큼 선언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하긴, 이랜드투쟁을 지원하가로 한 정당 자체가 선거체재로 들어간데다가, 같은 둘로 쪼개지는 일이 벌어졌다. 하여 연대와 지원의 끈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선거운동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앞서 말한 대로 1박 2일 예정으로 점거농성에 돌입했다가, 21일 만에 공권력에 의해서 진압되고, 나아가서 510일이라는 장기농성으로 이어진 투쟁인데 어느 누구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많은 않은 일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일은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계속되는 투쟁 하나만도 버거운 일인데 얹혀서 선거운동까지 한 일은 이래저래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질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관객 1: 먼저 홍윤경씨 한테 한 질문이었다. 투쟁의 와중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본인 위상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복직하지 못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지금도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에는 변함이 없고요. 어려운 동지들의 일자리 보장과 복직을 위해서는 노조 집행부에서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때문에 동지들이 복직한 것에 대해서 비중을 두고 저희들은 아쉽지만 협상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관객 2(실은 철호씨) : 여성 영화제에서 볼 때와는 엔딩장면이 달라졌는데요. 거기서는 마지

막에 투쟁에 함께 했던 여러 사람의 인터뷰가 있었잖아요? 생략된 이유가 있는지요?

 

네, 사람들이, 관객이죠.... 생각하는 몫을 더 던져주기 위해서라고 이해해 주면 되겠네요.

나머지 질문 하나는 홍윤경씨가 대답하는 게 더...

 

투쟁 중간에서 활동을 접고 직장에 복귀하는 사람들도 있고 노조를 떠난 사람들이 있는데 가족들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사람들이 남은 건지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든 가운데도 남아준 동지들도 많습니다. 환경과 위치는 변수는 되겠지요.

결국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줬어요.

 

팬 미팅 사회를 봐준 사람은 나갈 때 투표를 꼭 해달라는 당부로서 끝을 맺었다.

 

          

 

로비에서 사진을 여러장 찍었지만 카메라 불실로 사진이 흔들렸어요. 미안합니다.

그래도 단체사진 한장 올려봅니다.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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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58 2010/02/0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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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을 보고....

외박은?

 

 외박은 78분짜리 독립영화다. 감독은 김미례씨다. ‘노가다’라는 작품을 내놓았던 여성감독이다. 이번에는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간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선보였다.

 

2007년 6월 30일 밤이었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상암 월드컵 점으로 속속 모여든다. 이들은 저마다의 지점에서 계산원과 판매원으로 일하는 아줌마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대량해고를당한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소박한 꿈, 1박 2일 동안 계산대 점거농성을 통하여 복직을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외박은, 집 밖에서의 잠은, 무려 21일 간이나 계속된다. 여기다가 천막농성까지 합치면 투쟁기간은 무려 510여일로 이어진다.

 

무엇이 이들을, 아줌마들을 510일 동안이나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랜드 그룹에서는 이들을 ‘비정규 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날 몽땅 해고를 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안다.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라는 것은 똑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에 비해서 받는 월급이나 대우가 딱 반절이라는 것을, 이쪽과 저쪽 우리와 너희로 편을 가르는 차별의 상징이 이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단 하루라도 자신들의 삶터에서 복직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보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승진할 뻔한 하루 전날 오히려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었다. 무려 1천여명나 되었다. 그동안 마음껏 싼 값에 부리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승진시켜 비싼 임금을 지불하기가 싫다는 속내였다. 그리하여 박성구 이랜드 회장은 법 시행 하루 전날 그 어느 업체보다도 빨리 그리고 잔인하게, 바로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노동자들을 추풍에 낙엽 베듯이 전격 내쳐버린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해고 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계산업무를 보는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막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울렁거렸어요.”하며 울먹이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은 오로지 살고 싶다는 절규였다. 그 여성 노동자는 아이가 넷 딸린 아줌마였다.

 

이렇듯이 어린 자식들을 집에 두고 온 사람, 병든 시어머니를 병원에 맡기고 온 사람, 사별한 남편을 대신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 등 온갖 사연의 여성노동자들이 오로지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한 장소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파업 첫날, 밤을 맞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다. 카메라가 이 모습을 천천히 훑고 지나간다. 거기엔 각자의 개성을 뽐내듯이 입은 옷색깔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준비해 온 타올과 여분의 옷을 이불 삼아 덮고서 하나 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이냐? 분위기는 들떠있고 눈빛은 꿈을 꾸는 소녀들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보라, 무지개동산이 따로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이 따로 없었다. 이것이 점거한 계산대 사이사이에 자리를 펴고 누운 그들의 모습이었다.

 

왜일까?

일탈을 꿈꾸며 집 밖에서 처음 맞는 1박 2일의 외박이었으니까.

 

“우리가 매장에서 일하는 시간요? 이게 우리 주부들한테는 오히려 내시간인 거예요.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에서 떠나있는 시간이 저희들한테는 나만의 시간인 거지요....”이렇게 말하는 아줌마들인지라 ‘하루만 이렇게 하면 내일이면 일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딱 1박 2일만 집을 나와서 외박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튿날이 되었다. 아줌마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지만 말고 자신들의 주장을 외쳐야한다는 것을 깨게 된다. 통일된 대오를 형성해야 투쟁이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았다. 8박자 구호를 외쳐보지만, 팔도 안 올라가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온다. 줄도 삐뚤삐뚤 박자도 엉망 이거 원 죽이 맞아야 해먹지....

 

“다시, 자 다시 한 번! 해~봐아!” “박성수는 각성하라! 해고통보 웬말이냐? 일터 복귀 원한다. 성실교섭 응하라! 응하라!” “아· 이제 좀 되네!”

 

먹어야 사니까, 국도 끓이고 밥도 해 나른다. 상추며 쑥갓이며 치커리 등 씻어온 쌈재료를 펼쳐놓고 나무젓가락으로 반찬 뚜껑에 밥을 덜어서 전달, 전달, 그래 맛있게 먹어! 먹어야 힘을 쓰는 것이여!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 그리고 21일 째, 그 사이 아줌마들은 구호를 다듬고 동작을 곁들이는 연습도 한다. 어떤 때는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투쟁을 하며 느낀점을 삼행시로 지어서 발표도 한다.

 

“에구, 왜 이놈의 마이크가? ‘틀리면 욕먹는다. 하는 계산 다시 보자. 조심조심 살피며 말없이 슈퍼맨처럼 잘하자!

’ 이상 캐쉬 아줌마 000”

“호호호, 좋아좋아! 박수!”

 

그러나 밖은 살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거농성 첫날부터 수십대의 전경차들은 매장을 에워싸고 있던 터였다. 무전기를 든 사복차림의 형사들은 이날따라서 유독 더 눈을 번득이며 바삐 오가는 것이었다. 끼리끼리는 무엇인가 부지런히 지시를 주고받으며 분초를 다투기나 하듯이 긴박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 자! 상황 빨리 이어라!”

한 사나이의 목소리가 터진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전경들이 매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아줌마들은 바닥에 들어 누워있었다. 손에 손을 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바닥에 누운 것은 점유면적을 좀 더 넓게 하고 대오를 촘촘하게 하려는 뜻에서 인가 보았다.

 

안이나 밖이나 긴장감이 돌았다. 몇 겹이냐? 방패를 든 전경들이 열을 지어 에워싸고 있다. 그 앞에 지시하는 형사들이 있고, 선발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을 끌어내는 일은 일단의 여경들이 맡아서 진행하고 있었다. 역할분담인가 보다. 성희롱이나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전술 차원인가 보다.

 

앞쪽에서부터 5~6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한 사람을 뜯어내고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을 또 떼어내서 차례차례 대오를 무너뜨리면서 차에 싣는다. 공권력의 위력이다. 아줌마들의 매장점거 농성이 21일 간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투쟁은 계속되었다. 매장 밖에서 천막농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소박한 꿈은 바로 병든 시어머니, 어린 자식들을 두고 나온 터에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한 직장복귀였다. 그러니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보자. 이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가슴 떨리는 일탈이 어찌하여 510여일의 장기투쟁으로 이어진 거냐 말이다.

 

아줌마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이들을 해고한 자본가의 조치가 악랄한 것일까?

 

물벼락이 쏟아진다. 방패로 천막을 내리치고 지지대를 무너뜨리니 천막농성장이 힘없이 허물어진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물벼락 속에서 대열을 짓고 앉아있는 아줌마들은 서로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보아라! 월 80여만원 받는 일자리 하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며 싸우는 모습을! 절실하고 다급한 웅변이다. 아니, 그것은 절규이며 단말마의 함성일 수밖에 없다.

 

 510일, 이랜드그룹의 홈에버가 삼성그룹의 홈플러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줌마들은 각 매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농성을 주도한 간부급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일자리를 원하는 동지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생활고를 책임져야 하는 주부가장을 살리고, 아이가 넷이나 되는 엄마에게 일자리를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급한 문제 앞에서 정작 자신들의 일자리는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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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4 02:48 2010/02/04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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