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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0/09
- 8.Oct.2014 :: 첫 문신
2년정도 고민했었다. 문신을 하고 싶은데 어떤 걸 해야할지.
어떤 걸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뭐든지 금방 질리는 내가 뭘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지.
쇄골에 레터링을 하고 싶었다. 스페인어를 좋아했을 때 스페인어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잘 할 수 없었다. 검증이 불가능하니 선뜻 엄두가 안났다.
결정된 문장의 내용은 같았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0대 어느 날 버스에서 다이어리에 그런 말을 적었다.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이전의 나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인가. 라는 내용이었다. 변한다는 건 이전까지의 나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든 것 같다는 것을 새삼 나 스스로 깨달았기에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나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내가 아직 용납할 수 없다. 아니 자주 그러긴 하지만 최소한 그러면 안된다고는 생각은 있다.
그리고 유물론에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을 했다. 맞다. 변해야한다. 촛불 무렵, 혁명이 일어나면 집회가 없는 세상이 올까? 생각하고 웃던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어떤 세상이던 집회가 없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라고. 반대가 없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라고 했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조금은 알겠다. 변하지 않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다.
변한다는 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거다. 그 변화가 좋아질 건지 나빠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정도일 뿐. 안되도 하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모든 건 변한다. 생각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모습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내가 가진 과거도 변하고 추억도 변한다.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산다면 자꾸 고집쟁이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변하는 걸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변화에 맞춰 나를 또 변화시키면서. 도망치지 않고, 고민하면서.
πάντα χωρεῖ καὶ οὐδὲν μένει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변이 수업 때 이야기 해줬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다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
그 사람의 말은 이미 책에 실린 것이라 검증이 필요 없으니 골랐다. 플라톤 책 어딘가에 있는 걸 그리스어 원본도 찾아보고 나름 애썼다. ㅈㅋ가 ㅈ2라는 말을 꺼내서 울었다. 사실 쫌 쪽팔렸다. 나도 그리스어에 헤라클레이토스같은 고대 철학자 말을 새기는 게 좀 부끄러웠다.
하지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했다. 내용은 안부끄러웠다. 만물은 유전한다고 하면 웃기지만, 저 내용은 2년간 고민했는 걸. 그리고 저 정도는 지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타투를 하게 된 건 다 날토때문이다. 늘 하고 싶었지만, 왠지 찾아가기 무서워서 못 가고 비쌀까봐 못가고 그랬다. 마치 미용실가면 늘 혼나듯이 혼날까봐도 무섭고, 내 몸에 새기는 건데 누군가에게 쫓기고 눈치보며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날토가 타투를 배우겠단 소리는 몇년 전부터 했었고, 하다 말았었는데 어느새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 사이 또 배웠단다. 가격도 덜 부담되고, 친구니까 편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집이랑 10분 거리인 염창에 있다. 집들이겸 놀러가 언니랑도 인사하고, 날을 잡고 찾아갔다.
내 몸이니까. 내 타투니까. 미리 그리스어 폰트도 잔뜩 찾아서 글씨를 고르고, 날토와 만나 크기를 정하고, 수정할 부분을 수정했다. 도안을 정하는데만 1시간. 전사지로 위치 잡는데 1시간이 걸렸다. 살이 약해서 전사지로 찍은 걸 지우는 동안 빨갛게 부어올라서 날토가 걱정을 했다. 살이 부으면 잉크를 안먹는단다. 그걸 5번쯤 찍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왼쪽 쇄골에 예쁘게 자리 잡았다. 이제 시술만 하면 된다.
이미 2시간이라 배가 고파 컵라면을 사와서 나눠먹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작하는데, 아프다! 커터칼로 살을 긁는 듯한 느낌이다. 뭐 놀랐긴 하지만 죽을만큼은 아니었다. 쇄골이 워낙 아픈 곳이기도 했다. 다른 곳은 덜 하다니까. 처음엔 긴장해서 1시간을 보냈다. 선만 땄다는데 나는 이미 너무 신기하다. 이게 뭐람. 진짜 내 몸에..??? 한번 쉬고 다시 시작했다. 이젠 슬 적응이 되서 막 졸립다. 그렇게 1시간정도를 더 하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살이 더 이상 잉크를 안 먹는다니 다음에 다시 와서 하잔다. 나는 또 와서 아프기 싫으니 그냥 하자고 했지만 안된단다. 신기해서 거울을 몇번을 봤다. 어색해서 예쁘고 뭐고 구분도 안간다. 사진을 몇개를 찍어보지만 어색하다. 이게 정말 내 몸일지 모르겠다.
예쁜 척 사진을 찍어봤지만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설레고 들뜬다. 강화도로 돌아갔다. 따끔따끔하다. 비판텐을 사서 발랐다. 잘 무렵이 되니 빨갛게 부었던 게 좀 가라앉았다.
첫 문신 :: πάντα χωρεῖ καὶ οὐδὲν μένει | 왼쪽 쇄골 아래 | 날토 | 1.Oct.2014
예쁘다. 예쁘다. 날토는 아직 서툴지 않을까 하고 어느정도 각오 했던 게 있는데 완전 예쁘다. 약간 불균형한 부분이 있지만, 글씨체도 워낙 손글씨체고 해서 잘 어울린다. 사실 그 자체로도 난 만족스럽다. 예쁘다. 곧 리터칭 하러 갈텐데 빨리 끝내고 잘 자리잡으면 좋겠다.
이게 다 되면, 언니에게 꽃 섬그림도 받아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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