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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2/17
    자연농법 (2) - 그 원리
    자유인
  2. 2010/02/17
    자연농법(1) - 2010년 농사
    자유인
  3. 2010/02/16
    오아시스(2004년9월13일-월)
    자유인
  4. 2010/02/16
    세계의 서술(2004년 9월10일-금)
    자유인
  5. 2010/02/12
    단식1일차 (2010년 2월 1일-월)
    자유인

자연농법 (2) - 그 원리

자연농법이 가능 하냐고요?
그 질문은 무신론자에게 '신이 왜 없다는 것이냐?' 는 물음과도 같습니다.
좋습니다. 유신론자에게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기 보다, 무신론자에게 신이 없음을 증명하라고 하시니 기꺼히 그러겠습니다. 다만, 증거를 남기기위해 농사지을때 따라다니셔야 합니다.

저는 태평농법을 자연농법이라 부릅니다.
이영문 선생께서 오랜 시행착오끝에 태평농법의 원리를 정립하고 실제로 작물의 생산물로 증명하신지 약 10년쯤 됩니다.
산청인지 밀양인지 하동인지 헷갈리는데 최근에는 낙동강 하구쯤에 후학들을 위한 실습장도 운영하고 계십니다.
태평농법의 원리는 ' 모든것은 땅(흙)에 있다.' (출판사는 기억안남), 최근에는 업그레이드한 '자연의 --- 아니라고 있나?' (보리출판???)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태평농의 그 기술은 처음책자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최근책은 농업기술과 한국 농업의 구조에 대한 관계, 그리고 자연과 인간생명간의 관계(의학)로 까지 고민의 지평을 넓힙니다.

태평농법은 이명문 선생이란 독보적인 존재없이는 설명불가능합니다. 뭐랄까? 농사꾼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자연에 대한 집요한 관찰때문에 가능했으며,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때문에 원리를 터득했다고 보여집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조응하라 !'는 것입니다.최근 방송을 탄 일본의 썩지않는 사과농장편을 보신분은 아실겁니다. 땅심을 강하게하고 무농약합니다.

저는 태평농법을 친구로부터 듣기만 하고 대번 깨달았습니다. 이거구나하고 말이죠! 저는 당시 (99년 경) 자연의학에 대해 거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태평농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의학이란 무엇인가?
원리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몸을 자연에 맡겨라! 왜냐고?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에 부단히 조응하는 인간의 몸을 만들라!' 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연의학의 원리는 이론적으로 배워야 했던 것이죠.
그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쯤 습득을 하게되는데, 이때는 제몸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실험을 해서 저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때 당시는 자연의학이란 이름은 낮설었습니다. 일본의 '니시 가쓰오' 선생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실험해서 터득했다고 해서 저는 니시의학으로 기억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국내에서 이름꽤나 있는 분들은 니시의학이나, 모리시타선생(?)등의 이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하고, 또 우리나라 대대로 내려오던 민간요법을 나름대로 발전 시켰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90년대 초반에 저는 '자연의학'의 원리에 푹빠져 있었습니다. 해서는 이걸로 큰 돈을 벌수도 있겠구나 별러 보기도 했으나, 주변에서 땡기는 강한힘은 이게 아니어서 포기했습니다.

대표적인 노빠인 최민회(?) 씨가 쓴 ' 황금똥을 ---' 이란 책등이 히트를 친거는 2003년 경쯤으로 아는데 이때쯤 웰빙 열풍이 불었고 08년 광우병사태 터지고 유기농선호 하면서 돈번 사람들 좀 있었을 겁니다.

저의 돈벌이 고민이 10년 앞섰던 것이었으나, 저는 한참 웰빙열풍을 선전해대며 자연을 상품화하던 2004년 당시 돈벌이는 커녕 감옥에서 1년을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이때 저는 자연의학과 자연농법의 원리를 더욱 깊고 넓게 고민하였습니다.
 

자연의학과 자연농법의 결합이라!
이 둘을 원리적으로 결합시킨 이론서를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는 개척정신을 가지고 이를 대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저의 자긍심은  대단하다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건축문제입니다.
인간의 집과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라고 했을때, 현재 자본주의적 건축물은 분명히 자연을 거슬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특히 건축문제는 화석재료,에너지,빈부공간, 부피 그자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중대한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도달한 자연건축원리는 간단합니다.
'인간의 건축물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 위배되는 건축물은 모두 파기하고, 자연에 조응하는 토목건축양식을 짓도록 하자! 한국의 대표적 주거양식인 아파트를 부숴라! 흙집5층이하면 족하다.' 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연의학에서 출발하여, 자연농법과 자연건축의 원리로까지 고민은 확장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인간의 기본인 의-식-주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정립시키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저의 이러한 자연의-식-주론은 현재 어떻게 드러나며, 향후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첫째는 대체로 자본주의적 경제성 원리와 충돌하고 있으며, 탄압을 받거나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혁명적 원리는 증명할 기회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평한 지구를 둥글다고 하니 그냥 놔둘수가 없는 것입니다.
침뜸의 대가이신 구당 김남수 선생께서 탄압받는 거를 보시면 압니다. KBS에서 종종 대체의학 방영한바 있는데 의사협회 압력으로 중간에 짤리는 거 아시는 분들은 압니다.
자연농업의 경우는 최근 썩지않는 일본 사과농장편이 공중파를 타기도 하는 등 , MBC나 KBS피디들이 기획하기도 하지만 가뭄에 콩날 정도고 그것도 수박 겉핧기 식입니다.  
 

둘째, 때문에 (내용)원리에 맞는 체제(형식)를 시급히 건설해야 합니다.

자연의-식-주 원리는 자연과학기술이라 할수 있습니다. 내용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그 내용은 형식과 조응해야 꽃을 피울수가 있습니다. 헌데, 현재 이 원리(내용)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담보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라는 형식에 어울리는 의-식-주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농업기술은 농약에 버므리고 유전자가 조작된 콩입니다.
(구조 : 원주민들 내쫒고 농지파손과 공장 짖기-> 아마존의 눈물을 보라! 광우병으로 상징!)

성냥갑 같은 고층 아파트나 지하실방에서 구매자나 노동력의 제공자로 대기자로 사육되고 있는 주거양식이지 않습니까?
(구조 : 멀쩡한 강바닥 홀랑뒤집어 파헤치는 토목구조. 돈되는 건축물 짖는데 버티면 태워죽이고!!!! -> 뉴타운건설공화국)

화학식품과 스트레스 때문에 암걸리면 암덩어리 도려내고 방사선 쏘이는 무식한 치료(기술-내용)로 내몰립니다.
(구조 : 돈 없으면 병원근처도 못가는 의료시스템. 보건의료 민영화 가속화)
 
한편, 알만한 사람들은 거의 아는 건데 돈많은 자들이 자연주의 의-식-주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가요? 브르주아 애덜이 자본주의적 원리에 입각하지 않는거 말입니다. 
아닙니다. 자연(주의)의학과 농법기술, 자연건축물이 좋다는 거를 브로조아 애덜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햇빛, 물, 공기, 흙등 자연재가 '녹색성장론'에 기반해서 급속히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연재뿐 아니라, 자연농(의, 건축)기술도 자본의 이윤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연농(의, 건축)기술양식이 반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일뿐, 원래가 '반자본적 기술원리다 '라고 못박을 수도 못박는다고 박히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중요한 문제로 향후 더 말하겠습니다.) 
  
  
셋째, 의-식-주가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결합과정에서 발생하는 양식이라고 했을 때,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하고 있는'생태 사회주의'양식은 이러한 '자연 의-식-주 기술원리'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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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1) - 2010년 농사

이번에는 무조건 농사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합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보면

1) 10살부터 20살까지 10분의 1 농사 !
농사꾼의 아들이었으니까 하기싫은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던 농사일이었던 것인데, 그래도 농사일은 이때 어깨넘어로 배움.

2) 20살때부터 현재까지 30분의 1정도 농사일!
모심을때, 벼벨때, 농약줄때, 고추심을때, 고추딸때,
김장심을때, 콩심을때등 주로 큰농사에 집중적으로 강제동원되었던 농사였던 것으로 에지간한 농사를 완성했던 것.

3) 특별한 경험으로
호박농사를 들수있는데,
2001년경 태평농법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장적은 노동력투입으로 가장많은 수확을 위한 실험에 돌입하게 됨. 2008년까지 실험하게 되나 큰재미는 보지 못했음.

4) 2010년 봄부터 도전하는 농사는 그동안의 공력이 총동원되는 농사가 될것임.
첫째,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써 자연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기본적 철학에 입각한 농사원칙.
둘째,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이웃들의 자급자족원리의 운영시스템을 구축.
셋째, 당연히 경쟁적 이윤창출때문에 빚어지는 농약에 버무리는 농사기술을 지양하게 되며, 또한 혁명적인 태평농법의 기술을 도입하게 됨. 최소 노동력 투입과 최대 수확이라는 자연변증법의원리를 도입하게 됨.
(공동체 농업에서 자연농법 시도하는것이됨. -  국내최초?. 보통 알려진 동물배설물- 똥- 을 사용하는 유기농업과는 다른 기술적 원리임)
넷째, 혼자잘먹고 잘사는 텃밭농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집단농사가 될 것임. 직장인들의 경우 주로 주말에 괭이를 메고 밭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에, 주말공동집단농장을 연상하면 될것임.
다섯째, 결론적으로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농사라고 할수있으며, 적어도 소속가정이 일년동안 먹을 식량의 100%를 지향함.(1년차 20%, 2년차 50%, 3년차 70%로 자족률 급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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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2004년9월13일-월)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아시스란? (뒤에 그림을 참조)

 

'오아시스. 실크로드의 기워드인 오아시스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오아시스에는 생 오아시스, 하천 오아시스, 산록 오아시스등이 있습니다.

 

샘오아시스는 사막안에있는 낮은 웅덩이에 지하수가 용수천으로 솟아 나와서 물이 괸 것으로 , 넓이가 다양합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아라비아 사막에 걸쳐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하천 오아시스는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의 대하천이 사막을 관류하는 중에 물의 양이 현저히 감소하긴 하나 없어지지 않고 바다나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데, 이강의 양 기슭에 형성되는 녹지대를 말합니다. 나일,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등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여기서 생겼습니다.

 

산록 오아시스는 높은 산들위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린 하천이 내륙평지의 사막으로 흘러들면서 산기슭에 형성하는 오아시스입니다. 타림분지의 오아시스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곳을 옛날에는 '서역'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아시스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자연에만 의존할수없어 예로 부터 관개 시설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에서는 카레즈라는 인공수로가 발달했는데, 오른쪽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로 돼있습니다. '

 

 

** 서역이란 용어는 다음장에서 살펴볼 장건( ? - BC114년) 의 여행 이후에 생겼다.

'한서(서역전)에 따르면 한나라 서쪽에 있는 나라를 뜻한다. 한대에는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나라들만을 가리켰으나, 당대에 오면서 인도와 서아시아까지도 포함하였다. < 반주류 실크로드사 - 김영종지음 - 중에서>

 

지은이 김영종님은 '실크로드사'를 약자의 세계사를 위한 탐색으로 설정하고있어. 동서교류의 길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일면적일뿐 아니라 ' 왜곡'을 포함한다는 거야. 수평축이 낙타의 비단길이라면, 수직(남북) 의길은 '말'이 개척을 했고, 전쟁으로 부터 실코로드가 만들어졌다고 하네, 이과정에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한 약자들의 역사는 사라졌고 주변화 되었다는 것이지.

 

( 북의 유목(몽골)과 남의 정주(송나라, 중국)국사이의 전쟁의 틈바구니에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약소국들이 존재했다는 건데, 동방 견문록에 쿠빌ㄹ라이 칸이 미화된 것과는 묘한 대조를 보인다고 봐야지.

참고로 김영종 지은이는 동방견문록 역자인 김호동님에게 글을 감수 받은듯.

 ' 중국으로 가는 길' ( 정수일 선생의 편역) 까지 하여, 모두 중국(?) - 유라시아(?) 관련 사계절의 책들이다.)  (9월 11일 쉬었다가 다시 -----)

 

글은 최대한 쉽게 쓰려 했으나, 결코 쉽지 않다.

BC 5세기 , 1세기 AD 5세기등이 역사적 시간과 , 동로마, 페르시아, 중국등 정주국들의 도시는 물론, 스키타이, 월지, 대하, 흉노, 투르크 등 유목국들의 도시와 이동 경로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엮으로, 이책은 유라시아의 역사를 한눈에 일겍도 해준다. 그래서 , 로마의 시대, 중국의 시대, 페르시아의 시대를 (인물, 왕, 사건별로) 비교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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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사를 보다가 폴로의 동방견문록으로 오면 천년이 뒤로 온다. 허나,

천년후의 베니스 사람들은 그동안(천년동안) 동양에 대해서 마치 교류가 없었던 양 펄쩍 뛰며 놀라고 있다. 이미 실크로드를 통해서 로마 제국의 서쪽끝인 '런던'에 비단이 넘쳐 난적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시 그리스로 와보면 '에페소스'의 거리를 몇백년후 '클레오파트라'가 걷게되는 것인데, 그 시간적 차이도 흥미롭다.

 

그렇다. 역사의 유물은,

시공간의 차이를 통해 동질성과 선인들의 지혜를 후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증거들이다.

우리는 오로지 그것만을 통해 역사를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과거사이자, 인간 사회의 변천사이다. 현재의 사회는 과거의 사회로부터 발전해왔으니, 현재사회의 모순을 깨닫기 위해서는 과거 사회를 알아야 함을 너무도 당연하겠다. 역사의 유물이 존재하는 것은 후세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행운이자 자산이다. 당연히, '서기'를 기준으로 한 기원전, 기원후의 계급사회의 족적으로 남겨진 역사유물은 고스란히 민중들의 애환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의 기록과 유물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길을 우리 모두에게 그것 자체로 말해주고 있으리라. 현실의 갑을 논박이나, 치열한 대립에서 한걸은 뒤로 하여, 장구한 역사를 돌아봄직도 하다. 긴 과정이 압축된 역사적 사건은 현재 역사르 ㄹ체험하며 스스로 역사의 한페이지를 써나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다 긴호흡과 넓은 시야를 갖출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현재 역사의 한곳을 살고 있다.

 

2004년 9월 1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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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서술(2004년 9월10일-금)

사랑하는 당신에게

 

' 세계의 서술' 이 원제목이라고 한다.

서구인들은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구눈(동양에 대한 서구의 우월감과 몽골제국에 대한 세계성을 부인하고픈)을 위해서, ' 동방 견문록' 이라는 제목을 강요한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17년간 중국제국, 25년간의 세계여행(몽골타타르제국의 땅)을 하고 (1271- 1295) 돌아왔다. 감옥에 갖히게 되는데(그 원인은 논쟁중) 이때 누구에게 구술한것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쿠빌라이칸'(징기스칸의 손자) 의 제국의 영토와 문명이었다. 마르코 폴로의 눈에도 놀랍고, 지금 이를 대하는 나의 눈에도' 놀랍기 그지없다.' 아르메니아, 이라크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일본을 빼고 끝까지, 남으로는 인도차이나는 물론 자바와 보르네오 섬까지 '영토'화 했었다고 하니 실로 지구상 전무후부한 '제국'이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 쿠빌라이는 남송을 접수함으로써 '대몽골 울루스'를 태평양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전 내륙지역을 지배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 그는 몽골 제국의 팽창력에 옛 남송의 해군력을 결합시켜 --- 일본 원정이었다.

-------------------- 1281년에는 고려 해군까지 동원하여 무려 10만명을 태운 3500여척의 대함대를 투입했다. 이러한 규모는 세계 해전사에서 20세기 들어와 4000척의 함선과 100만명의 군대가 동원되었다는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의해 비로소 깨졌다' (옮긴이 김호동의 해설중)

 

한 베니스의 상인에 의해 자기들의 세상에 알려진 동방은 처음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등으로 꿈이나 거짓말로 들렸던 것이지. --------- 하지만, 진실과 저짓의 차이는 말과 글에 분명하기에 2백년후 콜롬부스에게 마르코폴로의 '인도'를 찾기위해 항해를 하도록 모험심을 부추키는 자료로 충분했다. ---------------------------------------------

 

'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라는 책은 일명'가미가제' 특공대의 당사자들을 조사해서 (분석 자료, 상황) 국가주의 , 파시즘과 그 이데올로기적 작용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는 책이야 !

------- 천황제와 파시즘에 동원된 숫한 젊은이들의 당시 심정과 심리상태를 글로 표현했고, 그들은 이순간에 천황에 동원이라기 보다는 , 이상적인 애국주의에 몸을 던지기 위해 부단한 지적, 사상적, 몸부림을 전개했다는 것이지, 그러나, 자신들도 모르게 사쿠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에 동원되어 파시즘의 제물로 소모되었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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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0일 

 

************** <로스하우스 그림>

건축은 합목적성, 시대성, 장소(공간)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거야!

위 건축은 아돌프 로스의 작품(건축)으로 일명' 로스 하우스'로 불리지!

'빈'의 미카엘 광장(Michaele platz) 에 있는데, 당시 엄청난 논쟁을 불렀다고--

곁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궐인 로프브르크등이 있고,

신흥 부자들은 각종 장식을 한 '허영과 사치'의 도시에 들어선 '맨홀뚜껑' 같은 이 건물을 거부한 거지!

로스는 '장식과 죄악'이라며(논문) , 과감히 혁명을 일으키고, 승리함---

 (승효상 - 건축, 그 사유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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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1일차 (2010년 2월 1일-월)

단식1일차 (2010년 2월 1일)

 

- 나로써는 변화는 불가피했다.

목이 잠기고, 눈이 아프고, 쉬 피로했다.

저녁 나절이면 너무 피곤하여 픽 쓰러졌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니 몸의 조절기능이나 저항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몽고군이 유럽을 때렸던 여파로 흑사병이 돌거나, 스페인 군인들이 인디오를 살육할 때 돌던 전염병도 큰 사이즈여서 그렇지 이런 원리일 것이다. 급작스런 외부의 침입이나 환경변화는 평상시 몸을 규형을 뒤흔들 게 된다. 당연히 소우주인 몸 안의 평화가 깨지게 되면서내 몸은 건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사투에 들어가는 것인데, 흔히 이때를 ‘병에 걸렸다’고 부른다. 인구가 밀집된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지역전체로 당연히 번진다. 전염병 발생의 원리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흔히 침탈과 전쟁으로부터 발생했다.

특히, 제국주의가 절정을 구가하던 시절에는 더 했을 것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돼지독감, 신종플루도 같은 맥락이라 나는 본다. 어찌, 자연환경적 원인만이겠는가? 사회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만 제대로 해석되며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것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주류 의학계 이론은 이를 부정한다.

‘신종플루원인? 갑자기 닥친 자연재해를 니들이 뭘 안다고 떠 드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

잔말 말고 손발 씻고, 돈이나 내놓고 주사나 맞으시지?!’

 

내 몸을 돌팔이 병원의사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로 인해 깨지고 부러졌을 때는 무지무지 발달한 양방의학이 고맙지만, 외상말고 내부질병과 관련해서는 양방은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우선, 환자가 질병을 얻게 된 원인과 조건을 깡그리 무시하는 그 무미건조한 질병접근법부터가 틀려먹었다. 핵심적으로는 그 기계적이고 분석적인 관념철학에 기반한 무식한 치료방법 때문이다.

 

암을 예로 들어보자!

잘못된 생활습관과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암(종양)덩어리가 생긴 것이다. 식생활 등 습관을 고치거나 정신적 휴식과 피를 맑게하여 스스로 암(종양) 덩어리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야 말로 변증법적이고 상식적인 치료방법 일 것이다. 몸이라고 하는 물질은 상호 연관되어 운동하고 있으므로 그 관계를 잘 파악하여, 원인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나?

 

허나, 병원에 가보라! 덮어놓고 배 가르고 암 덩어리부터 잘라낸다. 잘라내는 것도 부족해서는 암세포 박멸한다고 멀쩡한 몸에 초강력 방사선을 쏜다. 튼튼했던 육신이 배길 수가 있나! 머리털 허옇게 빠지고, 젊음은 오간데 없고 몇 달만에 완전 늙은이가 된다.

암 제거 수술이 잘 되었다고??!!! 잘라내도 문제다. 잘라 낸 옆자리에 다시 더러운 피가 고여 다시 암덩이 생긴다. 이걸 암이 재발했다고 부른다. 의사가 엄숙하게 “ 이미 전이 되셨습니다.” 라고 사형선고를 내리는 말로도 불리고.

주변에 암 걸린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라!

늙으신 분들은 한 십년, 젊은 사람들은 길어야 5년을 못 넘기고 집안 재산 병원에 처박고 고생고생 하다가 결국은 죽는다. (양방치료를 할 경우 혈기 왕성할수록 더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암이란 질병의 특성과 치료방식의 부조화 때문이다.)

 

무작정 나선 단식의 길 !

생활단식은 자신이 없었다. 먹는 것에 대한 유혹쯤이야 극복하겠지만, 춥고 시끄럽고 공기도 탁하고. 자신이 없었다. 대성리 물맑고 산공기 좋은 곳을 찾았다.

 

- 안중에서 평택까지, 평택에서 잠실까지, 잠실에서 대성리까지 버스요금 1만원 정도.

겨울 햇빛이 따사롭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은 버스 여행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밥 때도 나와는 상관없다.

 

-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대성리!

캠프촌을 가르는 냇물은 흰눈과 얼음을 뚫고 쉼 없이 흐른다.

연초 내린 큰 눈 때문인지 수량이 좋다.

대성리 참터!

오랫동안 기다리기라도 한 듯 참터지기 선배님 내외가 반긴다.

저녁 대용으로 물 한 모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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