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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7/31
    삼광사 기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2)
    아이야
  2. 2006/07/30
    우중의 스타대회, 주최측의 무성의를 지적한다(2)
    아이야
  3. 2006/07/27
    비 오는 날 만난 거미(2)
    아이야
  4. 2006/07/15
    내가 믿는 종교를 넘어(2)
    아이야
  5. 2006/07/13
    해가 지는 거리
    아이야
  6. 2006/07/09
    끝나지 않는 대화
    아이야
  7. 2006/07/06
    1년전 광안리에서 만난 노(老) 기타연주가(3)
    아이야
  8. 2006/07/04
    취함
    아이야

삼광사 기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민중언론 참세상[신도들, 삼광사 조합원 내몰다] 에 관련된 글.

내가 참세상 부산경남에 기자로 들어오면서, 기자수첩(기자의 눈)만큼은 되도록 적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는 기자관이 기사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8일에 쓴 '신도들, 삼광사 조합원 내몰다'라는 기사가 논란의 소지가 된 모양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기사에 달린 덧글을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첫번째가 바로 사진설명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쓴 '사찰에 대한 신도들의 절실한 신앙심이 느껴진다'라는 표현이 종교와 운동간의 갈등으로 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밝히고 싶다. 다만, 나는 사진을 통해 신도들의 잘못된 신앙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두번째 신도 대표의 인터뷰를 기사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실었다는 점이다.

왜 신도들의 의견을 균등하게 실었을까? 반론권 차원에서다. 내가 취재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참세상에서 삼광사에 대해 첫번째 기사가 나간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반론권 차원에서 현재 노조와 표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신도단체의 의견을 실었다.

 

신도단체에서는 이미 참세상 기사가 편파적이라고 얘기해 왔고 그에 따라 그들의 반론을 실어준 것이다.

 

그런데 기사 분량의 반에 해당하는 양을 실었어도, 나는 휴일 아침 한 신도의 항의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여전히 기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 신도분이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해 기사를 대충 읽어봤다고 얘기하지만.

 

마지막으로 기사가 무엇을 말하느냐인데, 노조와 신도의 입장을 통해 서로 비교해보면 분명 신도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정확히 하고자 '종교단체에서도 노조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노동청의 입을 통해 풀어났다. 사실 내 주관으로도 글을 쓸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노동분야 기관을 통해 적는게 어느 정도 펙트에 힘을 보태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노조와 신도가 서로 반목하는 것은 참 민감한 부분이다. 왜 노조와 관련해 삼광사 스님들이 아닌 신도들이 나선 것인지는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찰측이 직접 나서게 되면 모양새가 이상해서일거다. 그래도 명색히 종교단체가 아닌가.

 

신도들을 동원해 노조를 막는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 했을 것이다.

 

나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고 절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을려고 애쓰는 편이다. 또한 나는 스스로 운동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과 운동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서로의 입장과 뜻을 존중하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삼광사만큼은 노조활동을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것으로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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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의 스타대회, 주최측의 무성의를 지적한다

29일 부산 광안리 '스카이프로리그 2006'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지난 29일 부산 광안리에서 '스카이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언론에서도 경기결과에 대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4만 명에 달아던 관객들의 실망은 다루지 않았다.

 

SKT T1과 MBC게임 히어로간의 대결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관객의 수는 4만여 명이었고 필자도 그 정도의 수치로 보였다.

 

그런데 이날 경기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관객들은 경기가 아닌 대회진행에 실망했던 것일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바로 비 때문이었다. 비도 보통 비가 아니었다. 필자도 이날 오후 5시 현장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좋아하는 팬으로서 경기구경을 나섰다. 필자는 친구와 함께 경기 시작 전 한껏 흥이 돋아 응원도구로 신나게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막 1경기의 막이 올리고 T1의 임요환과 MBC게임의 염보성의 대결이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게임캐스터들도 당황했다. 한 캐스터가 “비가 와도 스타팬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비를 맞아야 했던 관객의 반응은 달랐다. 당시 관객들의 대부분이 우산은 물론 우의를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관객들도 경기진행을 하던 캐스터들도 곧 그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비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했고 1경기를 숨죽이고 지켜보던 관객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한 관객이 “우의는 왜 안 나눠주는 거지”라며 얘기했다. 물론 이날 언론보도를 보면 관객들이 대부분 우의를 착용했던 사진을 볼 수 있다.


경기 시작전 양팀 감독들에게 이날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듣고 있는 장면.

 

하지만 이날 주최 측은 우의를 방송관계자들과 스탭들에게 먼저 챙겨줬다. 기자도 그걸 관람석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관람석에서 필자 바로 앞에 앉아있던 MBC게임 소속 연습생들도 우의를 지급받지 못하고 신문지 등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도 1경기 중 친구가 돈을 주고 사온 우의를 받아 입었다. 이때만 해도 주위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필자 친구처럼 돈을 주고 우의를 사거나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게임경기를 지켜봤다. 필자도 광안리 바닷가 백사장에서 치러진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면서 경기보다는 어떻하면 카메라나 핸드폰이 젖지 않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하지만 관객의 VIP급들은 대우가 달랐다. 주최측 고위관계자들은 비를 거의 맞지 않았다. 또한 관람석 옆에 천막에 있던 프레스석 기자들도 비를 맞지 않았다. 그들 중 사진기자들 역시 현장사진을 찍으면서 우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날 게임대회 주최 측은 관객들이 비를 맞게 내버려뒀던 것일까? 그점에 대해서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의문을 느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리던 비 때문이었을까? 스타크래프트 게임화면을 보여줬던 대회 전면 대형스크린도 부분적으로 깨지고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것 또한 관객들의 게임몰입에 방해했었다.

 

결국 필자는 이날 내리던 비에 감당못해 1경기를 보고 친구와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왔고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나오던 중 관람석을 훌터보니 뒷좌석의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이후 우의를 주최측이 나눠줬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 기사의 리플을 통해 당시 관객들이 우의를 돈을 주고 샀다는 의견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스타결승전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내리던 비가 대수롭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주최측은 왜 관객들에게 경기도중 우의를 나눠주지 않았던 것과 기자들은 왜 관객들의 그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냐는 점을 꼭 물어보고 싶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팬로서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날 프로선수들의 경기는 훌륭했다.하지만 그날 비를 맞은 팬들을 단지 중계방송을 위한 좋은 밑그림으로 생각했다면, 주최측의 반성이 다시한번 필요한 부분이다.

 

p.s. 이 글은 기자가 아닌 스타크래프트의 팬으로서 당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미디어다음 블로그기자단 기사 등에 올렸습니다. 비 맞는 관객의 모습은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찍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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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만난 거미

 

26일 오후 5시 광안리 바다 앞 도로에서

 

군대가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날.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건물 밑에서
까만 거미를 만났다.

 

어릴 때부터 곤충의 움직임을 관심있게 지켜봤던 나는 
유독 거미만큼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워했다. 

 

어쩌면 거미는 나에게 있어 
세상 어느 것보다 더 무서운 존재 중에 하나였다.


10분 가량 지켜봤을까?


거미는 거미줄 위에서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옆에 있던 작은 거미는 줄을 치느라 부산했지만,
오직 검은 거미만큼은 조용했다.

 

아니 자세히 말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한 나는 
그것을 사진에 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비가 오는 바다에 거미의 모습이라..
좋은 피사체였다.

 

조용히 카메라를 들여다 댔다.


혹시나 거미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디카 접사모드로 조금씩 거미곁으로 다가갔다.

주먹 한개 들어갈 정도의 거리까지.

조바심도 들었고 두려움도 한층 더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다가가지는 못했다.
결국 근거리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데 그쳤다.

 

지금까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 여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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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종교를 넘어

 

부처님 오시기 며칠 전 부산역


난 명목상 기독교다.

어릴때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온 나는,

유치원도 교회 부설 유치원을 다녔고 대학때도 호기심에
기독교 서클에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종교에 몰두한 적은 없다.

어머니가 아시면 실망하시겠지만,
요즘은 밥 먹을 때조차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물론 종교에 대해서 물어보면 기독교라고 얘기하지만,
난 내 자신을 더 믿는 경향이 많다.


그러다 차즘 관심이 간 종교가 불교였다.
어쩌면 난 다종교주의자일수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연 종교가 인간에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가질 때가 많아졌다.


갈등과 번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종교가
어느덧 갈등과 번민을 조장하는 경우를 많아졌다.


희망과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종교단체들을 보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이 든다.


가까운 예로 부산의 어느 불교사찰에서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투쟁을 벌인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스님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또 부산역의 경우, 어느 목사님이 노숙인을 상대로
무일푼에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들이 그걸 믿는 종교인들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다.
아니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한번쯤 우리는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믿는 종교라서 해서 그것이
100%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신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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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거리

 

13일 오후 7시 사무실 앞 마당에서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평화롭게 해가 지는 풍경이다.


이런 날에는 지그시 눈을 감고 정원에서  
음악이나 들으면서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로 뒤덮힌 도시에서도
이런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을까 생각되지만,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고 싶다.


아, 오랜만에 해가 지는 풍경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들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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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대화


 

7월 9일 오후 7시 광안리 바닷가 뒤

 

천년의 약속 1병을 나눠마셨다.

오랜만에 먹는 술이라 3잔 째 마시니 취기가 돈다.

 

오늘 술을 마시기 전부터 친구와 한미FTA(무역협정)문제부터

시시콜콜한 일상얘기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결국 얘기의 결말은 돈의 문제로 끝난다.

예전에도 그랬다.

 

나도 얘기의 결말이 이렇게까지 오면,

'돈은 벌어야 겠구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나이 벌써 서른이구나'라고 실감한다.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문제에까지

신경이 쓰여진다. 골치아픈 문제다.

 

그렇다고 엄밀히 따져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게 이런 우유부단 성격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를

나는 10년 동안이나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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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광안리에서 만난 노(老) 기타연주가


 

2005년 3월의 어느날 광안리 바닷가에서..

"아직도 음악을 배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상적인 말이었다. 1년 전 광안리 바닷가에서 만난 한 노(老) 기타연주가가 내게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음악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분의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지만 연세가 족히 70살은 되어 보였다. 하지만 손자뻘인 나에게 존댓말을 쓰시면서 자신의 음악을 들어달라며 부탁했다.

 

그 분은 평생 음악만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분은 아직도 음악의 길은 멀었다며 연주가 끝난 뒤 자신의 연주를 솔직하게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 분이 내게 들려준 곡은 락이었다.

 

통기타와 연결된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단조롭고 조악스러웠지만, 

알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겨 왔다. 역시 연륜의 힘은 무시 못하는 것이었다.

 

당시 10분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난 그분이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분에게 있어 음악은 단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였다.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면 그때 그 음악이 생각난다.
멜로디는 잊혀졌지만, 그때 느낌 때문에 아직도 가슴 한켠이 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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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함

 

며칠전 사무실 마당에서 바라본 건물

 

몇년만에 술에 취했다.

오랜만에 기분좋게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막 들뜨기 시작했다.

 

실로 참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

시야의 초점이 맞지 않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기분.

 

살다보면 이렇게 기분좋게 취하는 날도 있나 보다.

그동안 술을 마셨지만 취하지 못한 날이 더 많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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