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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봐야 할 영화, 헤드윅

 

영화 헤드윅(존카메론미첼, 2000) ⓒ백두대간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10월 26일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실 건물의 어느 단칸방이었다.

 

빔프로젝트기를 설치해서 친한 사람들 몇 명과 함께 본 <헤드윅>

그 이후 나를 한동안 헤드윅 ost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만큼 <헤드윅>을 통해 들었던 음악들이며 이야기들은

당시 나의 가슴에 작은 조각 하나를 남긴 셈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본 영화 중에 음악과 영화의 조화가

가장 잘된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 사람들이 헤드윅이 최고의 영화를 뽑는데 주저하지 않을까?

이유는 바로 영화내내 눈과 귀를 땔 수 없게 만드는 감독이자 주연인

존 카메론 미첼의 연기력과 노래에 있었다.

 

남자였으나, 나중에 미군의 여자가 되기로 하고 성전환 수술을 했는데

중요부위의 1인치만 남은채 드랙퀸(여장남자)이 된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 헤드윅.

 

그녀가 드랙퀸 전용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은 감히 눈을 땔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았다. 아니 가슴을 파고들었다.

 

감독 존 카메몬 미첼은 <헤드윅>에서 '이것이 쉴새없는 뮤지컬영화구나'라고

느끼게 해 줄 것처럼 신들린 연기력과 무대매너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영화 헤드윅 스틸 컷 ⓒ백두대간
 
영화는 90년대 통일독일의 혼란과 

미국 이민사회에서 겪는 소수자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래서 그녀가 만든 곡들은 모두가 사연이 담겨있다.
특히 오리진 오브 러브(사랑의 기원)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노래했다.
 

그녀는 그런 의미가 담긴 노래들을 강렬한 락사운드에

열정적인 몸짓으로 녹여 강렬하게 노래한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감흥은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는 노래 부르는 그녀(그)가 아름답다고까지 느껴진다.
그녀는 고독했지만, 행복했다.
 
이 영화는 말이 필요없다.
드랙퀸의 존재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더라도 일단 감상하고 보자.
 
그럼 당신은 헤드윅이라는 존재에 한동안 빠지게 되고
그의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원래 영화 헤드윅은 존카메론미첼 감독이 1994년 시나리오를 쓰고 작은 드랙퀸 바에서
공연을 하다 차츰 인기를 얻어 뮤지컬로도 대박을 맞았다. 결국 2000년도에 감독 자신이 주연한 영화 헤드윅은 200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감독상과 관객상을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헤드윅은 국내에서 2002년 첫 개봉해 흥행은 못하고,2005년 재개봉때야 매니아층의 뜨거운 지지로 좌석 90%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얼마전에 수입사 백두대간에서 준비한 앙코르 상영이 서울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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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옴

        

 

이번 설에 부산갔을 때 찍은 광안리 바닷가(19일임)

아버지가 날리는 연을 보고 좋아하고 있는 아이. 부러운 모습이었다.
 

부산 생각날 때마다 이 사진 봐야지.

 

바닷가의 공기가 너무 좋다. 시원한 느낌이라고 할까.

파도소리하며 사람도 별로 없고,

 

여기 산다는게 전에는 행운이란걸 몰랐는데..

서울에 와서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3일간의 짧은 귀성이었지만, 부산에서의 시간은 너무 좋았다.

친구들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쉬웠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9일 광안리의 밤, 너무 좋지 아니한가^_^

저자리에 앉아 바다를 보고 눈을 감고 있으면 파삭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21일 서울에 와서 고시원 좁은 방을 창문있는 방으로 변경했다.
같은 고시원 내의 방인데 창문있는 방은 3만원이 더 비싸다.
 
하지만 창문이 있고 방이 넓은게 너무 좋다.
움직일 수 있는 여유공간이 확보된 셈이다.
 
또한 깨끗한 공기가 실시간 공급된다는 것.ㅋ
이게 바로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서울로 올라올때 옷가지랑 린스, 종합비타민을 챙겨왔다.

이제 사람답게 살아봐야지.

 

 

 (참, 광안리 바닷가 앞에서 오래 살다보니 백사장에 눈쌓인 풍경도 볼 수 있었다) 

 



 

2005년 3월 경이었다.

당시 부산에는 기상관측 이례 100년만의 대폭설이 내렸다.

 

생전 백사장에 눈 쌓인걸 구경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날은 정말 눈밭처럼 하얗게 쌓인 것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이 백사장에서 눈사람 만들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거..

 

 

 

 

이날 하루동안 눈사람 가족은 광안리의 명물이 됐을 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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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함과 조용함이 공존하는 광안리

 

지난 1월 17일 부산 광안리 바다에서 미월드쪽을 바라본 풍경
 
 오랜만에 광안리 바다에 나갔을 때입니다.
광안리 바닷가 뒷편에 살지만 실로 오랜만이었죠.
 
광안리 바다의 낮과 밤은 느낌이 참 다릅니다.
광안리 입구 공원 풍경.
 
광안리 입구입니다.
예전에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었죠.
지금은 공원이 생기고 의자와 망원경도 있습니다.
주변의 불빛에 빛나는 광안리 바다
 
표면이 보석처럼 빛나는군요.
광안리 도로쪽의 화려함과는 반대로 백사장 쪽은 조용합니다.
광안리 입구 공원 의자
광안리 민락회센타쪽
 
간이점집이 눈에 띕니다.
아주 예전에 이곳에서 한번 보기도 한 것 같군요..
 
광안리 바다의 매력은 아마도 번잡함 속에 조용함인 것 같습니다.
주변은 화려하지만, 광안리 백사장은 의외로 조용한 편입니다.
 
그게 참 묘하게 맞물립니다.
광안리 민락회센타쪽
 
 
광안리 주변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광안대교도 생기고 큰 건물도 생기고..
 
그래도 특유의 바다내음은 여전하답니다.^_^
아 바다 보고싶어라~~;;
이번 설때 부산가서 봐야지.ㅎ
아래는 [보너스]로 그 유명한 광안대교 사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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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곳에서 살기

 

4일 오후 3시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제 내가 살던 부산을 떠나 한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활동 때문에 올라왔지만 ,'너무 섣부른 결정을 한게 아닐까' 하는 후회도 들고,

'서울지리 하나도 모르는 부산촌놈이 어디서 미아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이왕 올라온거 한달은 살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잡아맸다.

 

주섬주섬 챙겨온 옷가지들이 든 비닐백을 손에 쥐고 

서울역 주변을 시작으로 해서 이리저리 방을 구하러 다녔다.

 

그런데 들고간 옷가지들이 무거웠던지, 이내 비닐백 손잡이가 찟어졌다. 

그래도 방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틀어진 비닐백을 부여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낯익은 건물이 없는 곳을 걸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처음 찾아간 고시원이라는 곳,

생각보다 엄청 열악했다.

 

좁은 방은 둘째치고, 이미 그곳에 정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시텔 좁은 계단에서 담배를 몰아피우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두번째 찾아간 곳은 깨끗하고 안정되게 보였다.

방값도 아까 갔던 곳보다 쌌다.

 

'그래, 이곳에서 당분간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15일치를 계약했다.

 

그리고 나서 나의 방에 들어가 봤다.

총무가 전에 쓰던 사람이 깨끗하게 썼다고 얘기해 준다.

 

창문은 없지만 작은 텔레비젼이 방에 있었다.

텔레비젼에서 나는 사람소리를 들으니 살 것 같다.

 

공동부엌에서 누가 밥 먹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화장실에서 씻는지 물소리도 들린다.

 

순간 긴장감이 픽하고 풀린다.

그렇게 나의 서울 첫 하루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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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다. 편도선아~

 

사진: 9월의 어느날 부산 녹산공단에서

 

 

어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만 지냈다.
그놈의 몸살이 원인이었다.

근래에 들어 몸살 앓아본 적도 처음인데,
그 고통이 장난이 아니다.

담배를 피고싶은 생각도 안드는 것은 물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다만 고통에서 해방될려고 약국에서 산 진통제만
빵과 함께 먹었다..


놀라운 것은 오늘 아침 거울을 보니,
내 편도선이 퉁퉁 부워 있었다.

편도선에 하얀 분비물이 뒤덮힌 걸 보니,
어제까지 편도선이 균들이랑 엄청난 전쟁을 치렀나 보다.

결국 이비인후과에서 편도염으로 항생제를 처방받고 난 뒤에나 몸이 좀 나아진 것 같다.


흐. 방금 네이버 백과사전을 보니 아직까지 편도선의 기능은 밝혀지지 않았나 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대체로 세균 감염에 대한 방어기관으로 보고 있다"고 정리되어 있다.

고생했다. 편도선아..;

편도선 부을 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시원하게 해주라고 하는데,
오늘 몇개 먹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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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피곤해지면


 

8월의 어느날 광안리 바다에서 하늘을 바라보다

 

삶이 피곤해질 때면, 

바닷가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이날도 그런 날이었다.

 

이 때의 행동지침은,

무작정 바다가 잘 보이는 커피숍 또는 

백사장 근처의 의자에 앉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어느정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이 눈에 뛴다.

덩굴로 뒤덮힌 커피숍이다.

 

이 커피숍 3층은 특히 작가작업실처럼

조용하고 단정하다.

 

의자에 앉아 잠시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잠시 후 노을이 지는 순간.

따스한 빛줄기가 얼굴을 스쳐 간다.

 

뭐랄까.

누군가 내 마음을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눈을 붙여도 좋은 순간이다.

 

내가 곧잘 쓰는 방법이다.

삶이 힘들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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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그 슬프고도 화나는 현실

 

지난 9일 포항 동국대병원 앞에서 열린  ‘열사정신계승, 경찰폭력살인규탄 전국노동자대회’

 

포항에 다녀왔다.

 

이날 난 포항의 상황이 심각하게 흐를 줄 생각도 못하고

덜래덜래 부산에서 포항으로 올라왔다.

 

부산 건설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올라갈 때만 해도,

난 그저 이날 대회가 평화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포항 출발 당시부터 부산민주노총 건물을 지키고 있던 경찰들을 따돌려야 했고,

고속도로를 지키던 전경병력에 조바심이 났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연곡절 끝에 도착한 포항.

난 결국 노동자들의 가두행진에서 경찰병력의 무서움을 맛보야만 했었다.


 

 

나는 포스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경찰 소화기의 비릿한 맛을 코로 느껴야 했고,

 


 

 

살수차에서 뿌리는 강력한 수압의 물줄기에 온몸을 젖셔야만 했다.

그것에서 끝냈으면 나는 이 글을 적지도 않았다.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경찰의 무자비한 방패에 맞아 쓰러진 일반 시민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 것이다.

 

슬프고도 화나는 현실이었다.

 

나는 경찰에게 구급차를 수십차례나 요청했어도, 아니 아무리 소리질러도

그들은 나를 지나쳐 버렸다..

 

새벽 부산으로 오는 길.

 

결국 그렇게 그날의 일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음날 가판대 신문에 조그맣게 실렸다.

 

..노조원과 경찰이 충돌했다고만.

 

 

그날 내가 본 것은 잊혀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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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통제당하면...

영화 '이퀄리브리엄' ⓒ 태원엔터테인먼트

 

 

아무생각없이 케이블방송을 보다가

영화 '이퀄리브리엄'을 보게 됐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3차대전 후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원래는 감정을 자극하는 책이나 물건들을 없애는 요원임)이 다시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

 

영화에서 시민들은 총사령관의 1인 지배하에서

정기적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프로지움이란 약을 투약한다.

 

영화를 자세히 보다보면 시민들의 표정이 없다. 

그들은 거리를 무표정으로 걷고 책상의 사무용품 배열조차 똑같다.

 

반면 반군들이나 이를 저항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들은 음악과 책, 명화들을 향유하며 그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당하더라도 매 순간을 느끼려고 애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다 '나도 거의 무표정인데..'하고 고민하게 됐다.

웃긴 웃지만, 무표정이 편하기 때문이다.

 

예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저 '화려한 총격신이 멋지다'라는 정도만 느꼈는데..

 

오늘은 좀 달랐던 것이다.

 

통제된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들,

그리고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

 

나도 그들처럼 감정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멋진 풍경을 보더라도 '아름답다'라는 생각보다 

디카에 담는 기계적인 행동을 하는 나이기에..

 

영화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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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광사 기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민중언론 참세상[신도들, 삼광사 조합원 내몰다] 에 관련된 글.

내가 참세상 부산경남에 기자로 들어오면서, 기자수첩(기자의 눈)만큼은 되도록 적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는 기자관이 기사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8일에 쓴 '신도들, 삼광사 조합원 내몰다'라는 기사가 논란의 소지가 된 모양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기사에 달린 덧글을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첫번째가 바로 사진설명에 대한 부분이다.

내가 쓴 '사찰에 대한 신도들의 절실한 신앙심이 느껴진다'라는 표현이 종교와 운동간의 갈등으로 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밝히고 싶다. 다만, 나는 사진을 통해 신도들의 잘못된 신앙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두번째 신도 대표의 인터뷰를 기사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실었다는 점이다.

왜 신도들의 의견을 균등하게 실었을까? 반론권 차원에서다. 내가 취재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참세상에서 삼광사에 대해 첫번째 기사가 나간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반론권 차원에서 현재 노조와 표면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신도단체의 의견을 실었다.

 

신도단체에서는 이미 참세상 기사가 편파적이라고 얘기해 왔고 그에 따라 그들의 반론을 실어준 것이다.

 

그런데 기사 분량의 반에 해당하는 양을 실었어도, 나는 휴일 아침 한 신도의 항의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여전히 기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 신도분이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해 기사를 대충 읽어봤다고 얘기하지만.

 

마지막으로 기사가 무엇을 말하느냐인데, 노조와 신도의 입장을 통해 서로 비교해보면 분명 신도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정확히 하고자 '종교단체에서도 노조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노동청의 입을 통해 풀어났다. 사실 내 주관으로도 글을 쓸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노동분야 기관을 통해 적는게 어느 정도 펙트에 힘을 보태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노조와 신도가 서로 반목하는 것은 참 민감한 부분이다. 왜 노조와 관련해 삼광사 스님들이 아닌 신도들이 나선 것인지는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찰측이 직접 나서게 되면 모양새가 이상해서일거다. 그래도 명색히 종교단체가 아닌가.

 

신도들을 동원해 노조를 막는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 했을 것이다.

 

나도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고 절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을려고 애쓰는 편이다. 또한 나는 스스로 운동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과 운동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서로의 입장과 뜻을 존중하고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삼광사만큼은 노조활동을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것으로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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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의 스타대회, 주최측의 무성의를 지적한다

29일 부산 광안리 '스카이프로리그 2006'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지난 29일 부산 광안리에서 '스카이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언론에서도 경기결과에 대한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4만 명에 달아던 관객들의 실망은 다루지 않았다.

 

SKT T1과 MBC게임 히어로간의 대결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관객의 수는 4만여 명이었고 필자도 그 정도의 수치로 보였다.

 

그런데 이날 경기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관객들은 경기가 아닌 대회진행에 실망했던 것일까?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다. 바로 비 때문이었다. 비도 보통 비가 아니었다. 필자도 이날 오후 5시 현장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좋아하는 팬으로서 경기구경을 나섰다. 필자는 친구와 함께 경기 시작 전 한껏 흥이 돋아 응원도구로 신나게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막 1경기의 막이 올리고 T1의 임요환과 MBC게임의 염보성의 대결이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게임캐스터들도 당황했다. 한 캐스터가 “비가 와도 스타팬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비를 맞아야 했던 관객의 반응은 달랐다. 당시 관객들의 대부분이 우산은 물론 우의를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관객들도 경기진행을 하던 캐스터들도 곧 그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비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했고 1경기를 숨죽이고 지켜보던 관객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한 관객이 “우의는 왜 안 나눠주는 거지”라며 얘기했다. 물론 이날 언론보도를 보면 관객들이 대부분 우의를 착용했던 사진을 볼 수 있다.


경기 시작전 양팀 감독들에게 이날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듣고 있는 장면.

 

하지만 이날 주최 측은 우의를 방송관계자들과 스탭들에게 먼저 챙겨줬다. 기자도 그걸 관람석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관람석에서 필자 바로 앞에 앉아있던 MBC게임 소속 연습생들도 우의를 지급받지 못하고 신문지 등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도 1경기 중 친구가 돈을 주고 사온 우의를 받아 입었다. 이때만 해도 주위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필자 친구처럼 돈을 주고 우의를 사거나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게임경기를 지켜봤다. 필자도 광안리 바닷가 백사장에서 치러진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면서 경기보다는 어떻하면 카메라나 핸드폰이 젖지 않을까 고민했을 정도다.

 

하지만 관객의 VIP급들은 대우가 달랐다. 주최측 고위관계자들은 비를 거의 맞지 않았다. 또한 관람석 옆에 천막에 있던 프레스석 기자들도 비를 맞지 않았다. 그들 중 사진기자들 역시 현장사진을 찍으면서 우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날 게임대회 주최 측은 관객들이 비를 맞게 내버려뒀던 것일까? 그점에 대해서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의문을 느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리던 비 때문이었을까? 스타크래프트 게임화면을 보여줬던 대회 전면 대형스크린도 부분적으로 깨지고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것 또한 관객들의 게임몰입에 방해했었다.

 

결국 필자는 이날 내리던 비에 감당못해 1경기를 보고 친구와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왔고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나오던 중 관람석을 훌터보니 뒷좌석의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이후 우의를 주최측이 나눠줬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인터넷에 올라온 언론보도 기사의 리플을 통해 당시 관객들이 우의를 돈을 주고 샀다는 의견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물론 스타결승전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내리던 비가 대수롭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주최측은 왜 관객들에게 경기도중 우의를 나눠주지 않았던 것과 기자들은 왜 관객들의 그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냐는 점을 꼭 물어보고 싶다.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는 팬로서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날 프로선수들의 경기는 훌륭했다.하지만 그날 비를 맞은 팬들을 단지 중계방송을 위한 좋은 밑그림으로 생각했다면, 주최측의 반성이 다시한번 필요한 부분이다.

 

p.s. 이 글은 기자가 아닌 스타크래프트의 팬으로서 당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미디어다음 블로그기자단 기사 등에 올렸습니다. 비 맞는 관객의 모습은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찍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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