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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9월 5일~ 9월 11일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피해자와 함께 농성하고 계시는 권수정 대리인께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상경농성 99일 문화제, 추석기간 농성장 이야기 들어보세요~!

 

9월 5일 월요일 농성 96일

 

1.

집에 갔다가 농성장에 도착해보니 못보던 이불이 있다. 지난 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가 우리 농성장 사연을 아시게 된 시민분이 날이 추워진다고 사오셨다고. 아침저녁 쌀쌀해지긴 했는데, 이불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그냥 침낭덮고 자면 되려니,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앞서는 동지들 마음이 따듯하다.

 

2.

금속노조 동지들이 저녁에 오셔서 농성장 텐트 보수공사를 하고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걸개그림을 나무에 걸었다. 여름내내 비에 시달렸던 터이고, 더욱이 여가부 건물 청소하는 아저씨가 화단에 물을 준답시고 우리 텐트로 물을 뿌리며 괴롭히는 통에 다른 무엇보다 텐트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단도리 하는것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농성 여러번 해보신 동지들이 오셔서 능숙하게 손보는 모습이 든든하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보수공사하고 인테리어까지 마무리한 느낌. 동지들 모두 감사합니다. 새집에 놀러오세요!

 

 

 

9월 6일 화요일 농성 97일

 

1.

언니와 둘이 민사소송 준비를 하며 씨름을 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이 맞고, 성희롱으로 인한 고용상의 불이익(징계, 해고) 당한 것이 맞다는 국가인권위 결정에 따라 가해자 조장, 소장과 금양물류 사장, 현대자동차 사장에게 민사소송을 낸것이 지난 2월 24일이다. 그동안 가해자들이 보낸 소설같은 답변서에 일일이 사실관계 확인해 주느라 씨름을 했었다. 언니를 원래 헤픈여자, 트러블 메이커 뭐 그런식으로 몰아가는 내용의 답변서에 일일이 댓구를 해주느라 언니도 나도 피곤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금양물류 사장이 반소장을 보내왔다. 지가 오히려 피해를 보았다고 언니에게 6천5백만원을 보상하라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가해자들의 일반적인 대응이 똑같다고 하는데, 참으로 천박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한번더 괴롭히는 그자들의 머릿속에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가.

 

집중해서 하면 이삼일이면 될텐데, 농성장으로 오시는 손님들과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 있으니 틈틈이 짬짬이 하느라 시간은 더 오래걸리고, 빨리마무리 해야하는데, 생각하며 마음속에 돌맹이 앉아 있는것처럼 묵직하게 며칠을 보냈다. 가해자들의 비방과 폭언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아 언니도 나도 소화가 잘안된채, 씨름하고 있다.

 

2.

민주노총 여성부위원장과 동지들이 도시락을 싸오셨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의 밥심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부러 집에서 한 밥과 반찬을 싸들고 오는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인데, 귀챦아하지 않고 준비해오시는 동지들 마음이 달다.

 

 

 

9월 7일 수요일 농성 98일

 

1.

서울상경 농성을 시작하던 무렵, 서초경찰서 앞에 있을 때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박승희 여성위원장님이 도시락을 싸오셔서 밥심연대를 해주시는데, 오늘은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동지들이 도시락을 가지고 오셨다. 덕분에 박승희 여성위원장님 모처럼 그냥 오셔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공감의 여성분들은 씩씩하고 밝다. 아직 남아 있는 ‘작은 꽃 아픔으로 피다’ 티셔츠를 사서 그 자리에서 입고 걸개그림 앞에서 인증사진 찍는 동지들 웃음소리가 화사하다. 고마워요. 자주 놀러오세요. ^^

 

2.

오후 4시 충남지부 동지들 60여명이 와서 농성장 침탈규탄 성희롱 피해자 복직을 위한 집회를 했다. 상경농성 98일만에 처음으로 금속 충남지부가 공식적인 집회를 한것이다. 지난 여름 충남지부는 유성기업 투쟁에 집중하느라 서울에서 다른 집회를 잡지 못했었다. 아무리 유성기업 투쟁이 중요하고 집중해도 그렇지, 너무했다. 이렇게 말하면 섭섭해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말이 더 이상하다. 피해자 대리인과 피해자가 섭섭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조합원이 7000여명인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사업이 집중할 투쟁은 집중하더라도, 작고 힘이없어 외롭고 소외된 조합원의 투쟁 또한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섭섭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조직의 정체성의 문제다. 조직되어 힘있는 지회를 위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투쟁을 집중하기 위해서만 우리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성희롱 당하고도 해고된 억울한, 단 한사람의 피해여성 조합원을 위한 투쟁 또한 넉넉하게 함께 하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금속노조 충남지부가 되어야 하는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98일만에 우리 농성장앞에 금속 충남지부 깃발이 걸렸다. 반갑다. 이제 유성기업투쟁과 발레오공조동지들의 투쟁이 마무리되었으니, 더 자주 지부 깃발 펄럭여 지치고 힘든 언니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길 바란다.

 

9월 8일 목요일 농성 99일

 

1.

오늘 아침부터 농성장으로 경향신문이 배달된다. 연대동지 한분이 경향신문 지국으로 전화해 농성장 장소를 알려주고, 매달 선금으로 입금해주기로 했다고 어제 전화가 오더니 정말 신문이 배달되었다. ^^ 신기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한잔 마시며 럭셔리하게 신문을 보고 집회 신고 하러 가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점점 익숙한 집처럼 되는 느낌이다. 더 익숙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언니가 복직되어야 하는데, 생각하며 그래도 농성장 생각해주는 동지 마음이 고맙다.

 

2.

내일이 서울상경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이 된다. 세월이 참 빠르다.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님이 우리보고 “벌써 100일이야!” 하신다. 웃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울겨울, 봄여름가을겨울을 세 번을 보내고 다시 맞고 있는 봄여름가을을,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1000일이야!’ 하면서 유명자 동지와 재능지부 동지들은 길바닥에서 보냈을까. 바람과 눈과 비를 맞으며 용역깡패들의 폭력에 맞서 기를쓰고 악을 쓰며 주먹쥐고 보냈을까. 그렇게 당해도 눈여겨 봐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보며 초라해지는 농성 텐트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그렇게 버려진 것이 나의 처지 같아서, 침탈당할때마다 구겨지고 찢어지는 텐트가 나의 몸같아서 또한 얼마나 아팠을까.

참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그냥 가는것은 아니라고, 인간의 가치가 자본의 욕망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는 동지들의 투쟁의 하루하루, 그 고통과 그 지루함과 그 모멸감을 넘어 햇살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의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3.

99일 문화제가 풍요로왔다. 노래해주신 동지들, 몸짓해주신 동지들, 음향시스템을 봐주신 동지들, 언니에게 진보신당 김홍춘동지가 써주신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주신 김성만동지, 20년만에 사회를 보신 김수경 동지 그리고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늘 동지들에게 받기만해서 일부러 이벤트처럼 노래준비를 했는데, 내가 언니에게 찬송가 ‘뜻없이 무릎꿇는’ 불러부고 언니가 나에게 ‘민들레처럼’을 서로 불러주기로 했는데, 언니가 목이 상해서 소리가 안나온다고 나만 불렀다. 성가대 소프라노 20년 경력의 언니의 노래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노래도 잘 못하고, 반쪽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섭섭하여 그냥 불렀다.

문화제 끝난후 정리하느라 부산한대 한동지가 인사하며 “권수정동지 노래듣고 은혜받았어.”한다. ㅍㅎㅎㅎ, 재밌다. 조만간 언니의 민들레처럼을 청해 들어야한다.

 

 

9월 9일 금요일 농성 100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비가 온다. 어제저녁 먹은 숙취해소를 위해 언니와 콩나물 해장국을 먹으며 새벽부터 삭신이 쑤신다 했더니 언니가 목욕탕 갔다오라고 하네. 아! 왜 그방법을 몰랐을까. 그런데 근처에는 목욕탕이 없다. 아니 목욕탕이 있는데 남성전용이다. 진짜 웃겨. 2008년인가 여의도에서 한겨울에 농성하면서 보니 여의도에도 남성전용 목욕탕만 있더라. 어처구니 없다. 이동네는 남자만 사냐. 나도 산다고.

서울역 근처까지 가서 몸을 담그고 왔더니 살것같다. 시원하다.

 

민중의소리 방송 ‘체샤의 배운뇨자’ 생방송 인터뷰. 음---, 체샤는 명랑한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하는것은 익숙하지만, 뭐랄까, 토크쇼처럼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이런 방식은 처음이라 분위기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렵더라.

 

오늘저녁부터 추석 명철 휴가인 셈이다. 오늘저녁은 지엠대우 비정규직 동지들이 오셔서 농성을 해주신다. 명절기간에도 농성장 찾아주시는 동지들 모두 고맙다.

 

 

9월 11일 일요일 농성 102일

 

1.

금요일저녁부터 오늘 오전까지 내가 집에 다녀오고 오늘부터 언니가 명절 보내러 아산으로 가셨다. 모처럼 아이들과 다른것 모두 잊고 편히 쉬고 오시길 바란다.

 

지난 여름내내 농성장 텐트에서, 그리고 인도 바닥에서 깔고 덮고 잤던 더러워진 침낭을 햇볕좋은날 한번 세탁해서 말려야 하는데, 생각만 하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데 농성장 도착해보니 침낭들에서 뽀송뽀송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 물어보니 임용현동지와 김현동지가 김현동지 오토바이에 싣고 빨래방가서 세탁, 건조 해 온것을 농성장 앞에 빨래줄 걸고 다시한번 말렸다고 하네. ^^ 퀵서비스 노동자 김현동지, 우리 농성장 머슴같은 용현동지, 고마워요.

 

2.

어제 남윤철 동지와 함께 아산에서 올리온 이옥선 동지는 내일 저녁까지 있는다고 한다. 언니의 신랑이 유성기업 파업투쟁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민주노총 충남본부 정환윤동지다.

“언니, 차례 지내러 안가도돼?‘

“어제 올라 오기전에 면회했어. 집안에 차례 지내야할 남자가 빵에 있는데, 나혼자 뭘. 얘기하고 올라왔어. 잘됐지뭐. 이참에 여기 농성장 와서 추석지낸다고 말하고 왔어.”

야간노동 철폐하자는 정당한 투쟁을 하고도 정환윤 동지가 구석되어 있는 것이야 억울한 일이지만, 모처럼 차례음식 만들지 않아도 되는 언니는, 농성장에 앉아 홀가분한 표정이다. ^^

명절을 농성장에서 혼자 지낼까봐 부러 와서 연휴기간 함께 보내주는 언니에게 고맙다.

 

3.

추석 연휴 며칠 전부터 지원대책위 동지들과 연휴기간 농성함께 해줄 동지들을 확인했는데,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날이 오늘이었다. 추석 바로 전날이라, 모두들 고향에 내려갔든지, 여성들은 음식준비하느라 빠질수 없든지, 그래서 오늘 농성을 조직하는 조건이 매우 까다로왔다. 서울인근이 고향인 착한 싱글 남성. 사회당 김스캇 당첨! ^^

 

김스캇동지가 명동마리 농성장에서 싸웠던 젊은 동지들과 함께 와서 놀았다. 기대하지 않은 전어와 생새우까지 풀어놓고 신이났다. 수상한 남자 박정근이 누군지 처음으로 알았다. 동지들의 목소리가 음표처럼 울렸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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