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from 잡기장 2007/08/04 16:16

magister님의 [무너지는 사람들, 무신경한 시간들] 에 관련된 글.

트랙백에 어울릴까 모르겠지만.-ㅅ-;;.

 

 

저는 요즘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재취업과정이라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대초반까지 두루두루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나이로는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누님이죠. 30이 넘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 제법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유치원때부터 최근의 직장까지 지각을 안 한 날이 한 날보다 적었지만 최근에는 그 습관도 고쳐지고 있구요.

 

magister님의 글을 읽다보니 같이 공부를 하는 친구 중에 저와 동갑인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최근 저는 이 친구와 크게 싸웠어요. (평소에 저는 누군가와 싸우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제 머리털이 난 이후로 이렇게 한 사람에게 화를 낸 것은 한 일곱번째 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한 마디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습니다. 매우 산만해요. 저도 한 산만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수업을 듣곤 하는데 이 친구는 수업을 안 듣다가 옆 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저도 순간 놓치고 맙니다.

처음에는 착한 사람같기도 하고 옆자리니까 최선을 다해서 질문에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사이도 제법 좋았죠.

하지만 그 친구의 산만함은 개선이 되질 않았고, 결국 제가 부탁을 했죠. '네가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면 내 머리가 포맷되어버리니까 내 상황을 살펴가며 질문해다오'라고요. 

알았다고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슬슬 이 사람에 대해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지각을 하는 것도 별로 편하게 보이질 않고, 공부가 안된다고 심하게 괴로워하는 것도 얼척이 없고,

나름 절박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저에게 맥락없이 짧게(넌 잘난 놈이야 류의), 자주 칭찬을 해대는 것도 기가차고.. 기분이 아주 나빠지더군요.

그래도 순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이라 쉽게 미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여섯번 이상 반복되니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하거나 필요없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거나 수업시간에 잡담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울고싶어졌습니다. 쉿하면서 손가락을 입에 대는 것도 열번이 지나면 하기가 괴롭습니다.. 특히 제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두세배 해대는 데는 서러워질 지경이었죠,. 이 사람은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제'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자꾸 '강자'로 규정하고 조언을 넘어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꾸 제 안의 폭력적인 부분을 끌어내는 데 환장하고 미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도데체 이 친구는 어떻게 일을 하려고 이렇게 공부에 집중을 안 하는 걸까, 왜 남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 걸까. 어쩌면 이렇게 자기중심적일까 등등.. 불만이 넘쳐났고 결국 저는 이어폰을 장만해서 귀에 꽂았습니다. 대화는 대폭 줄었죠.

 

두서너주가 지나고 어느 날, 그 친구는 지각을 밥먹듯하다가 (당연히) 과정을 못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매우 배가 고프고..전날 잠을 못자서 무척 피곤했습니다.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도 흔쾌히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배운 것이었으니 저도 어설프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은 제대로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러이러한 거야.' 하고 말하면 '내 말좀 들어봐, 저러저러한 거라는 거지?'하는 식으로 다섯번을 설명해도 다르게 말하자 지친 마음에 불이 붙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전혀 쉴 틈을 안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설명하는 것이 부족한가보다 싶었지만 그 친구는 다시 생각할 틈도 안주고 똑같은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해서.. 멈췄다가 다시 설명했습니다.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안 나오고.. 계속 제가 한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그 친구 입에서 나오는데 어느 순간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내 이야기를 듣긴 듣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 나서 "나보고 어쩌라는거냐, 난 힘들어, 지친다고--" 하고 내밷었죠. 그랬는데 틱틱거리는 내 상태가 꽤 지속된지라 그 친구도 화가 났습니다. "됐다. 넌 항상 나한테 그런 식이야" 갑자기 그리 말을 하더니 일어나서 나갔려고 하더군요. 그때 완전 폭발한 저는 소리를 꽥 질렀죠 "내가 처음부터 그랬어?!!!"하구요..ㅠㅠ

그리고는 쌈이 붙어서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그 친구는 나가버렸는데 주변 아이들이 화내지 말라고 왜 그러냐고 그러더군요. 너무 화가나니 떨리더라구요..ㅎㅎㅎ

 

그리고는 저도 나오는데, 그 친구가 따라내려오더군요. 그러더니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일말의 정이 싹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저는 그 친구가 화날만한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었는데, 뭐가 미안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뭐가 미안하냐 나도 잘못했는데 네가 왜 미안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됐고 아무튼 미안하다"는 이야기예요.

 

상종을 하기가 싫어서 지금까지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 몇일 안되었지만요.

 

 

이 사건 때문에 지금 매우 괴로운 것은, 제가 '강자의 입장'('강자'가 아니구요-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항상 처해 있었구나를 자각하게 된 것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순하고 사람들과 수다떨고 자기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고 잘(마음대로긴 해도) 믿고..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아무리 약한 남자라도 흔히 자연스레 깔리게 되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부분들은 싫지만, 대놓고 싫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상황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 만으로, 적응을 나름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강자가 되더라구요. 강약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 친구와 싸우면 싸울수록, 질문에 답하면 답할수록 그런 상황은 개선이 되질 않고 악화만 되었습니다.

 

저도 이 친구와 다를 바가 없는데, 집이 부자도 아니고, 재취업과정을 같은 나이에 같은 시기에 듣고,,

그런데도.. 왜 제가 그 친구보다 강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농락당하는 기분입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노력하지 않고 잘 하는 것이 평생 하나 있을까 말까 한 거 아닌가요.. 부잣집 양반댁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저는 그 친구와 싸우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저는 제가 '무능하고 비정상적인 개인'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친구를 보니 더 '무능하고 비정상적인 개인'이란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졌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별로 안 무능하고 정상적인 개인이 되려면, 아니 상대방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그 친구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고 힘을 내서, 다시 정확하게 대화하는 것 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내 생각을 천천히 전달하고, 그 사람이 싸울 수 있을 만큼 강약을 조절해서.....ㅠㅠ 그 사람의 상황을 파악하고..그 사람에게 맞는 강도와 대화법, 분위기를 연구하고 익혀서 대화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 기분을 잘 다듬어서 걷보기에는 화를 내지 않는 상태로 오래도록 온화하게 견디며 치열하게 싸워야 할 판입니다. 강자든 약자든 가해자든 피해자든 농락당하는 사람들이 농락을 인식하고, 내가 강자가 아님을, 내가 약자만은 아님을 인식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무능하고 비정상적인 개인이 아니라도 손쉽게 그렇게 되어버리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남을 그런 개인으로 돌린다고 해서 자기가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겠죠. ㅠㅜ

 

왤케 힘든 건지. 별일 아니라고 그냥 넘어갈 순 없고. (그래서도 안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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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4 16:16 2007/08/04 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