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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 자랐던 곳은 제주시 용담동이라는 곳인데
제주도의 상징이라는 용두암이 가까이에 있던 동네였습니다.
용머리처림 생긴 바위라서 유명해진 곳인데
매일 그곳에서 놀았던 우리에게는 그냥 커다란 바위일 뿐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그곳에 가서 수영을 했고
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앞으로 해안도로가 생기고 주변에 팬스가 쳐져서
관광객들만이 찾는 곳이 되버렸습니다.
몇 년 전까지 우리집은 애월읍 고내리라는 자그마한 동네에 있었습니다.
바닷가 풍경이 너무 좋아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자주 하곤 했었습니다.
주변에 특별한 관광지가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네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해안도로에 카페와 팬션들이 밀려들더니
경치 좋은 해안도로는 관광객들에게 양보해야 했고
해안도로를 넘어 마을로까지 몰려드는 관광객과 이주민들로 인해
고내리에서 밭들이 사라지면서 곳곳이 공사중인 도시가 되버렸습니다.
그 열기에 호응을 해서 우리집도 리모델링을 해서 민박집이 됐고
저는 하가리라는 중산간마을 외곽에 조립식건물에서 살게 됐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으면 살고 있는데
몇 년 전까지 주변에 온통 밭들만 있던 곳이
어느 순간부터 타운하우스가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틈만나면 건물이 들어서서 조그만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앞에도 천 평 정도 되는 밭이 있는데
작년에 개발업자에게 팔려서 언제 공사가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곳에 공사가 시작되면 20억원 안팎의 호화로운 집들이 단지가 돼서 들어설테고
밖으로나서면 시원하게 보이던 한라산도 보이지 않게 되겠지요.
어릴적 추억이 깃든 용두암을 빼앗긴거야 관광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렇다치고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볼수 없는거야 여유로운 한라산의 풍광을 즐기는 맛으로 대치하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한라산을 볼수 없는거야 삶의 사치를 하나쯤 줄인다 생각할 수는 있는데
여기서 더 밀리고 뺏기면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고민스럽습니다.
2
어릴 적에는 바다만 보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섬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답답해서 대학 다닐 때부터 육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대도시 생활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다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돈도 없고 배운 기술도 없어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8백평 정도의 감귤농사에 천평 정도 땅을 빌려서 밭농사도 했습니다.
이 정도 면적이면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일을 별로 고되지 않았습니다.
초보가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하며 농사를 배워가기에는 적당했지요.
그대신 수입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 생활비로 충당하는 것을 제하면 제 수익은 연 8백원 정도 됩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삶은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밭농사를 할수 없게 됐습니다.
밭주인이 밭을 처분하겠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밭 바로 옆에 얼마전에 콘도가 들어섰는데
콘드측에서 주차장을 비롯한 여러 용도로 사용할 공간으로 그 밭을 사려고 하나 봅니다.
여름농사와 겨울농사를 벌갈아가며 열심히 해봐야 연수익 3백만원이 고작인 밭이라서 크게 타격은 없지만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건물이 들어서기 바쁜 요즘에 다른 곳에서 밭을 빌리는 건 만만치 않고
개발열기에 쫓겨나는 농민의 현실을 한탄해봐야 울화만 치미는 것이라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가져봅니다.
그래도 감귤농사는 지을 수 있으니 다행이고
먹고 사는 걱정은 없으니 그것도 복이고
몸과 마음이 많이 좋아졌으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다만, 여기서 더 쫓겨나지 않기만 바랄뿐이지요.
3
처음 객지생활을 할 때 제주도 출신이라고 하면 ‘오~’ 그러면서 관심을 가져줬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방학이나 휴가 때면 고향으로 놀러오는 지인들을 대접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지금도 그런 관계는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지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는데
나를 통해서 제주도를 여행하거나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나를 찾거나 할뿐
온전히 나를 찾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삶의 구렁텅이에서 한참 발버둥치고 있을 때
제주도를 여행왔다가 저를 찾은 이는
“이런 곳에 살고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고
제주도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제게 전화를 걸었던 이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라는 제 반응에
“친절히 얘기해줘서 고맙다”라며 냉소를 보냈습니다.
나의 삶과 고민과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제주도를 즐기고 소비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필요하다면
그런 관계는 끊어져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4
저의 이런 태도에 시비를 걸어봤습니다.
“너는 좋은 곳에서 별 걱정 없이 잘살고 있어서 너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이기주의 아니냐?”
몸과 마음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사는 건 맞고
민박도 잘되고 농사도 그럭저럭 잘되고 있으니 잘살고 있는 것도 맞고
이곳 출신인데다가 조그마한 터전도 있으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 빼앗기고 쫓겨나야 합니까?
그러려니 하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잖아요.
제게는 나름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 아름다운 곳에 몸과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양소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추세라면 휴양소는 고사하고 제가 버틸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개발업자와 일부 부유층과 소수의 지주에게만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별볼일 없는 사람들도 편하게 살 수 있고
몸과 마음을 다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까지도 함께 품을 수 있다면
저는 그런 이기주의는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제주도청 앞에서는 제2공항 건설을 반대는 농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40여 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면서 고향에서 쫓겨날 수 없다는 절절한 외침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 해 관광객 천만 명이 넘게 찾는 이곳 제주에는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이 모자라서 경보를 울리고 있고
차들이 넘쳐나서 대도시에 버금가는 교통지옥을 겪고 있고
곳곳이 공사장으로 넘쳐나서 공사자재도 모자란 판인데
관광객들을 더 받아들이기 위해
조용히 살던 사람들을 쫓아내서 제2공항을 지으려 합니다.
숨이 막합니다.
제발, 제주도에 오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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