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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세상나들이


1

 

세상을 살다보니까 어느새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버렸습니다.
어느 순간에 삶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져 발버둥치는 걸 경험했습니다.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힘을 내서 또 발버둥치고
남은 기운을 다 모아서 다시 또 발버둥쳐봤지만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촘촘히 나를 옥죄어오는 세상은 무서웠습니다.

 

불면증, 우울증, 자살충동 이런 걸 친구처럼 달고 살았더니
감정조절장애라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나를 보는게 두려워
대인기피증이라는 피난처로 숨어들어갔습니다.

 

내 친구들은 자상도해서 내 주위를 떠나지않습니다.
지겹다고 그만 좀 떠나달라고 화를 내면 내 화를 먹고 더 커져버립니다.
얘네들이 너무 무서워 도망갈라치면 유유히 휘파람을 불면 제 앞에 서있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를 싸울수도 도망칠수도 없는 반갑지 않은 친구들만이 위로해줬습니다.

 

2

 

tv에서 처음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에이고, 또 사고났군”하며 심드렁하게 흘려보내고는
그날 저녘에 혼자서 공연을 보러갔습니다.

 

다음날에도 세월호 관련 소식은 계속 나오는데
자식을 걱정하며 울먹이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에 짜증이 확 밀려왔습니다.
“남들이 발버둥칠 때는 나몰라라 하다가 지 새끼가 뒤지니까 저러지”하며 채널을 돌려버렸지요.

 

그후에 촛불집회도 열리고 사회단체들과 함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진보운동한다는 놈들은 자기 주변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은 못본채 하고, 이슈가되는 데는 달려가서 목소리를 높이지”라며 냉소를 보냈습니다.
3년 동안 세월호 사건은 이렇게 짜증과 냉소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올초에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게 됐습니다.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치유활동을 하고 있는 정혜선씨의 책이었는데
유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힘겨운 과정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 어느 5.18 고문 피해자 한 분이 저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대목을 읽게 됐고
그런 감정이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도서관에서 세월호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무거운 얘기를 정말 힘들게 읽어내려갔습니다.
무겁고 무겁고 무겁고 무겁고 또 무거운 얘기들
그들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내 마음이 점점 가라앉더니
나중에는 깊은 바다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힘도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를 지지하는 모임을 알게 됐고
그 깊은 바다 속에서 다시 올라오려고 모임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3

 

발버둥치며 10년을 견디다가
10년만에 처음으로 세상 속의 사람들을 만나러 나서는 길은 조금 두려웠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선 모임에서 김동수씨와 그 가족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내가 발버둥쳤던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게 뭔지 알기 때문에 할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준비모임에 갔다와서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온 것 같다는 반성과 함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떠올랐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간절히 내미는 그 손을 잡아야했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발버둥치는 이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갈 것이고
나 역시 괴물의 먹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김동수씨 후원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하는 속에서 기분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잠시 후 시간이 되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밝고 화사한 분위기에 즐거워졌습니다.
행사가 계속되면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에 나를 맡겨놓았더니
몸과 마음이 밝은 기운으로 가득차더군요.
그렇게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한 행사가 돼버렸습니다.

 

10년만의 세상나들이를 마친 지금
행사를 준비하신 분들과 참여하신 분들에게
고맙고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세상을 향해 살며시 내딛은 내 발걸음이 깊은 안도를 주었던 것처럼
김동수씨와 그 가족들도 같은 위안이 전해졌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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