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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36회


1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달라진 게 몇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스모그가 종종 몰려옵니다.
그리고, 미투운동의 광풍이 거셉니다.
또 하나, 우정이가 외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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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지난 겨울의 사진입니다.
행복이, 우정이, 행복이 새끼들이 한 가족처럼 붙어있는 걸 사랑이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요.
이 개들은 저랑도 많이 친해져서 산책할 때마다 마주치면 저한테 달려와서 마구 애교를 부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강아지들의 목에 줄이 채워지더니 강아지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이 동네 터주대감이나 다름없는 행복이도 보이기 않는 겁니다.
그 사연이야 알수 없지만 주인없는 우정이만 동네를 활보하는 꼴이 되버렸습니다.
넷이 어울리다 혼자 남은 우정이는 사랑이와 저를 보면 매우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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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행복이네 집에서 밥을 먹는지 사랑이 밥을 얻어먹으러 오지도 않았는데
요즘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사랑이 밥을 먹으러 옵니다.
저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우정이지만
밥을 먹으러 올 때는 이렇게 담 위에서 눈치를 봅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매번 말을 하지만
남의 밥을 얻어 먹는다는 생각에 눈치를 살피게 되나 봅니다.
그런 우정이의 모습을 보면 짠해집니다.


배고픔을 달래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는 건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
그저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야하겠지요.

 

2


며칠 전에 고문을 받는 꿈을 꿨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본격적인 고문이 시작되기 직전에 깨어났으니까
고문을 당할 뻔한 꿈을 꿨습니다.
왜 이런 꿈을 꿨는지는 아시겠죠? 하하하


지난 방송에서 metoo운동에 대해 많은 얘기를 쏟아냈었는데
그 칼날을 제 가슴에 대보았습니다.
아프기는 한데 피가 나지는 않더군요.
칼날이 무디거나 제 심장이 약했거나였을텐데
뭐, 어느 경우였든 저는 아직 그 정도 선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정말 너의 악행을 반성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나?”
선 듯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 폼을 잡는 것’을 거둬들이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씨와 함께 하는 활동을 중단하기로 한거죠.
내 스스로 나의 악행을 드러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반성은 좀 더 철저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이 방송도 중단할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중단하는 건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거더라고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인 sns를 끊어버리면
저는 다시 세상과 떨어져서 혼자만의 세계로 침전하게 되는데
그건 저에게 고요한 평화를 안겨줍니다.
세상과 등을 돌리면 피해자의 고통과도 멀어지니까요.


오랫동안 제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그 악몽들을 흘려보낼 수 있게되서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그 뒤를 이어 제가 남에게 줬던 상처들이 올라왔습니다.
제 악몽을 흘려보냈듯이 이것들을 흘려보내는 건 쉬운데
그건 너무 이기적이잖아요.


이 방송을 계속 해야하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았습니다.
‘나의 악행을 계속 기억하자.’
‘편안하고 행복해지지 말자.’
‘도망가지 말자.’


아, 뭐, 그렇다고 방송이 엄청 무거워지거나 칙칙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평소처럼 사는 얘기하면서 진행할 겁니다.
그러다가 불쑥불쑥 불쾌한 기억들을 건져올리겠죠.
떨쳐버릴레야 떨쳐버릴 수 없는 악몽처럼.

 

3


어느 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어느 분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 소식들을 들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기 때문에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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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 때문에 뒤늦게 피어난 브로콜리를 수확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하우스에는 잡초가 장난이 아닙니다.
오전에 브로콜리 수확을 하면 오후에 잡초를 메고
오전에 잡초를 메면 오후에는 브로콜리 작업을 하면서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일들이 이렇게 몰려서 닥칠 때는
도를 닦는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니
겨울 동안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살살 달래면서
다시 노동에 익숙해지게 만듭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질테니까요.

 


(‘잠비나이’의 ‘그들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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