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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15회


1


서울에서 항암치료 중이던 아버지가 잠시 내려오셨습니다.
힘든 과정을 잘 버티고계신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같이했습니다.
특별한 것 없는 조촐한 자리였지만 즐거웠습니다.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오래간만에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속이 좀 불편하더군요.
밤에 잠이 깨서 뒤척이다가 새벽에 겨우 잠들었는데 다음날은 몸이 무거워서 하루 종일 누워지냈습니다.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그런건 아니었기에 게으름 피운다는 생각에 그냥 몸을 내버려뒀습니다.


그렇게 몸을 달래고 있는데 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갔더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식이 불완전하다고 하더군요.
병원에서는 이런저런 검사를 해봤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검사를 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오전보다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고하니 하루밤 지나서 다음날 경과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를 면회하고 나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센트위치 하나를 먹고 맥주를 한잔 했습니다.
사온 맥주를 다 먹지 못하고 밤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났더니 몸은 여전히 무겁고 속도 좋지 않아서 똥상태가 나빴습니다.
뭔가를 먹어야겠기에 적당히 아침을 먹고 사랑이 산책을 하며 마음을 조금 달랬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 상태가 더 좋지않아서 암치료중인 서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더군요.
다시 병원으로 갔지만 비행기 수송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면회를 하면서 본 아버지는 눈에 뛰게 수척해지고 눈이 흐려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나니까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그날 늦게 아버지는 서울로 이송이 됐고 다시 그곳에서 온갖 검사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검사결과 몇군데 이상이 발견됐고 두 군데는 수술을 해야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먹지를 못해서 기력이 약해지신 상태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고, 집에 가겠다면서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저 멀리서 소식을 듣는 것 밖에 할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마음을 달래보려고 영화도 보고 술도 먹었는데 오히려 몸과 마음만 더 무거워졌습니다.
텃밭에 있는 야채들을 뽑아서 반찬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사우나도 다녀오기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시 가볍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수술을 잘 마쳤고 여전히 힘들지만 조금씩 회복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꿈자리가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잠도 잘 자고 모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날씨는 추웠지만 몸과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서 사랑이와의 산책길이 편안해졌습니다.


밭에 심어져있는 매실나무에 잎이 모두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겨울임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이지만 다음달이면 이 가지에 꽃이 핍니다.
추위가 가장 혹독한 1월에 꽃을 피우기 위해 12월은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 거지요.
앙상한 매실나무를 보면서 겨울나기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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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재난과 참사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1970년대 있었던 남영호 침몰사건부터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까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참사가 일어나면 신속하게 덮어버리고, 현장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넘겨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흘려버리고, 나중에는 다시 그 시스템 속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현실이 한결같았습니다.
지배세력들에게는 참으로 견고한 대한민국이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촘촘하게 죄어오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야만의 세상을 바꾸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알겠지만
성찰할줄 모르는 진보세력들에 대해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으니...
한발 떨어진 곳에서 먼산 바라보듯이 지켜보기에는
그 파도가 이미 내 발목을 적셔오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지금은 그저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다독여보지만
세상과 떨어져 내면으로만 들어가다보니 자아라는 허상만 붙들고 있는 내 모습만 보이고...


생각을 한들 답이 나오지 않으니
책을 덮고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해진 냉장고가 보였고
수확하고 널브러져 있는 땅콩이 보였고
내용물이 얼마남지 않은 침치통이 보였습니다.
냉장고 속 내용물을 다 옮겨놓고 전원을 뽑아놓았습니다.
파김치를 담그기위해 준비물들을 꺼내놓았습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땅콩껍질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춥다고 게으름 피우지말고 주변을 돌아보며 밀린 일들을 조금씩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귀는 열렸으니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으면 잘 듣고
몸은 움직일 수 있으니 주어진 일들을 정성을 다해서 해나가고
입은 살아있으니 할말 있으면 혼자서라도 조잘조잘 지껄이고
마음 또한 움직이니 그 마음이 가는 곳을 잘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을 날이 있을 겁니다.
그 손길이 절박할 때 외면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성민아, 그럴수 있겠니?”

 


(전진희와 강아솔의 ‘우리의 슬픔이 마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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