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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농의 샘,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
- 12/13
‘문제아들만 모여있는 학교에 새로운 기간제 교사가 오면서 조금씩 아이들과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영화’라고 소개돼있었다.
그리고 ‘죽은 시인의 사회’와 ‘굿 윌 헌팅’을 이 영화와 연결해놓고 있었다.
이렇게 소개해놓으니 뻔한 학교영화일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씨에 그냥 편안한 영화를 보고 싶어서 마음 편히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마자 심각한 얼굴을 한 사내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돼었는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도 이어졌다.
미국에서 교사는 막장직업인지 인터뷰하는 이들의 얘기들은 조금 어두웠다.
어두운 얼굴의 사내 역시 밝은 얘기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밝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한가지예요. 바꿀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리고 문제의 학교에 첫출근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건 완전 상상 이상이었다.
선생들을 개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수틀리면 협박하고 조롱한다.
새롭게 부임한 선생을 향한 그들의 살벌한 행동에 내가 놀라고말았다.
상상이상의 상황에서도 당황하지않고 차분하게 수업을 진행했던 주인공은
퇴근 후 할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달려간다.
간신히 상황을 수습한 후 병원담당자에게 한마디 건네는데
학교에서 학생들이 그에게 했던 살벌한 행동을 그가 보여주는게 아닌가.
영화가 시작하고 10여분만에 완전 맨붕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채 전진 또 전진이었다.
학교도, 병원도, 길거리도 온통 살벌함과 추잡함으로 넘쳐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영혼이 탈탈 털린채 근근이 버티고있을 뿐이다.
애초 가졌던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산산히 부서졌는데 부서진 파편들을 자근자근 밟으면서 계속 나아가는게 아닌가.
그때부터는 그냥 마음을 놓아버렸다.
“그래, 니가 어디로 가는지 보자.”
영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러면서 점점 뻘밭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뻘밭에서 무기력하게 채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선생의 의지는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할수 있는 여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뻘밭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노력이 잠시 힘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고 그의 노력은 다시 뻘밭에 파묻혀버렸다.
아주 처절한 방식으로!
그러면서 관객들을 향해 씩 웃어보이면 한 마디 던진다.
“세상이 그렇게 쉬워보이세요?”
이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랑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는 영화였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범생이들을 향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하게 살지말고 당당하게 저항해라”라고 얘기했다면
‘디태치먼트’는 양아치들을 향해 “삐딱하게 개폼잡지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며 제대로 살아라”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는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주며 끝났지만 ‘디태치먼트’는 절망의 구렁텅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온통 절망만이 판치는 세상을 보여주면서도 영화는 차갑거나 어둡지 않았다.
주인공이 바꿀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것처럼 감독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가위 영화처럼 고독한 인간들의 깨진 영혼이 넘쳐났지만 연민이 살아있었기에 우울함에 질식하지는 않았다.
절망이 판치는 세상에서 희망없이 발버둥치며 끝나는 영화였지만 한줄기 햇살과 같은 연민의 끈이 있었기에 숨막히지 않고 볼수 있었다.
영화가 다 끝나고나서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끈을 가만히 잡아당기면 블라이든가 걷히는 것처럼 영화가 거꾸로 보인다.
그랬을 때 ‘디태치먼트’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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