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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도시, 탈출한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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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 휩쓸고 간 콩고, 성폭력의 현장에서 생존한 여성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설립된다. 서로를 보듬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여성들, 그들이 변화와 희망을 노래한다!

 

이 영화에 대한 소개글은 이렇게 돼 있었다.
내전 속에 상처입은 여성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겠거니 생각했다.
그들의 상처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줄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부터 내 예상을 완전히 깔아뭉개면서 시작됐다.
내전이 일어난 콩고 상황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나서 막바로 피해여성들의 얘기에 집중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카메라를 마주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경험을 가감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그 얘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다.
지금까지 고통받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의 경험을 생생하게 얘기하는데
지옥에 등급이 있다면 그곳이 최고등급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계속 이어서 지옥의 경험을 들려주는데
그들의 얘기를 듣는게 솔직히 힘들었다.


‘기쁨의 도시’는 전쟁피해 여성들을 치료하고 돌보면서 자활을 이끌어가는 공동체의 이름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그 긍정의 에너지로 자신을 채워나간다.
그 과정들 역시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어설프게 피해여성을 지원하고 보살피는 것이아니라 아주 당당하고 활기차게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눈물 흘리면서 숨지말고 당당하게 외치면서 춤추고 노래하라’라고 가르치는데 그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긍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영화는 그렇게 고통을 딛고 긍정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도 지옥에 대한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주위에서 지겨우니까 그만하라고 해도 여성이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얘기를 멈추지 말라”라면서 계속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그 고통의 기억은 피해여성들에게만 쌓여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던 이들도 금새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던 이는 살해당하기 직전까기 몰리기도 했다.
지옥에서는 안전지대가 없을 뿐아니라 희망은 너무 쉽게 짖밟히고 고통은 너무 쉽게 전염된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곳은 정말 지옥이었다.


하지만 긍정의 힘을 맛본 여성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고 그들의 공동체를 지켜냈다.
절망 속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콩고를 떠났던 의사를 그들의 힘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기쁨의 도시’를 더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도시로 만들어나갔다.
지옥의 한복판에 봉쇄된 채 위태롭게 서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지옥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일어선 그들은 그곳을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오아시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긍정의 힘을 확인한 여성들은 ‘기쁨의 도시’를 떠나게 된다.
그들이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지옥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지옥으로 다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른 여성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기쁨의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길지 않은 다큐멘터리였지만 이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것들이 담겨있었다.
야만의 현실을 고발한다면서 피해여성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서로가 동등한 주체로 바라보는 카메라는 평등한 위치에서 눈높이를 맞출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고통의 깊이와 희망의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군더더기 하나없이 아주 깔끔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너무도 뛰어난 영화였다.


영화 마지막에 ‘고통을 힘으로 승화시켜라’라는 벽화의 구호가 보이는 속에
‘기쁨의 도시’를 떠나서 다시 지옥 속으로 걸어나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경건해졌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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