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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21회


1


밖에서 지내던 사랑이를 집안으로 데리고 오면서 서로의 삶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랑이가 말벗도 해주는데다가 심리적으로 의지도 돼서 저는 너무 좋습니다.
사랑이도 묶여서 지내지 않아도 되고 외부에서의 자극에 덜 민감해져서 정서적으로도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다보면 서로의 행동을 더 잘 관찰하게 됩니다.
저의 조금만 행동에도 귀를 쫑긋하는 사랑이는 제가 뭔가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눈치가 빨라서 냉큼 행동에 옮기려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사랑이의 행동스타일이나 바디랭귀지에 익숙해져서 사랑이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를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교감하면서 소통하는 건 너무 좋은데 최근에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밥을 먹을 때 같이 밥을 먹기 시작한 사랑이는 제가 집을 비우게 되면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아버지 간병 때문에 이틀에 하루는 집을 비워야하는데 하루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와보면 사랑이 밥그릇이 그대로입니다.
저를 보고 기뻐서 꼬리를 흔들던 사랑이는 뒤늦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원래 식탐이 많은 녀석이 아니라서 평소에 밥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닌데다가 영양에 문제가 있을 정도로 식사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걱정할 건 아니긴하지만
심리적으로 너무 제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한집에서 같이 지내면서도 사랑이를 위한 시간은 산책을 하는 것 외에 별로 배려를 하지 못하는게 미안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제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니까 더 미안해지게 됩니다.
사랑이가 건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사랑이가 살아가는 삶의 조건은 점점 저를 중심으로 묶여가고 있는 거였습니다.
다시 집밖에서 지내게하는건 사랑이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될 것 같아서 싫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사랑이를 위해 뭔가를 더해줄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귀찮더라도 산책을 좀더 자주하고 맛있는 간식도 자주 챙겨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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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즘 유일하게 보는 tv프로그램이 ‘놀면 뭐하니’입니다.
유재석이 아바타처럼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는 모습을 담아놓았는데
기존의 예능프로그램과는 다른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이 재미있어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때는 ‘이건 식상하고 재미없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하고 다르려냐’하는 마음으로 별 생각없이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첫회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상한 일들을 벌이더군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자유로움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천방지축 마구 뛰어다니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별일들을 다 벌이더군요.
자유로움을 위해서 억지스럽게 상황을 만들고 그속에서 가학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상황에 캐릭터를 갖다놓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만들어놓으면서 생겨나는 파동들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위아래 없고 정해진 것도 없으면서 혼자서 잘난척 하는게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놀면 뭐하니’를 보면서 이 방송도 그렇게 자유로웠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읽는 라디오’라는 게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걸 혼자서 자유롭게 시작한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다보니까 조금씩 포맷도 고정이 되고 내용도 식상해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상으로 자유롭게 흘러가야할 물길이 자꾸 내면으로만 고여들고 있는 것도 좀 그렇고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건 아닙니다.
이 방송이 고이지 않고 좀더 흘러넘쳤으면 하는 것, 그리고 가슴 속으로 뭉쳐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으로 펼쳐졌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안데르센의 동화처럼 따뜻한 온기가 흘렀으면 더 좋겠죠.
장애인, 외톨이, 가난뱅이 같은 허접한 인간들이 잠시 눈길을 둘 수 있는 곳이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이런게 아직은 원대한 꿈이지만 그런 꿈을 가슴 속에 간직하면서 방송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3


유난히 따뜻해서 눈구경은 일찌감치 포기한 겨울입니다.
그렇다고 날씨가 좋은 건 아니어서 흐리고 비오고 하는 날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나마 미세먼지가 최근 몇 년보다 덜할 것이 다행이지요.


아버지의 섬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서 밤새도록 시달리며 짜증으로 파김치가 됐는데
오래간만에 밀려든 미세먼지 때문에 아침에 환기도 제대로 못한 날
신종코로나에 대한 뉴스로 난리를 치는 뉴스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져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밥을 못먹어서 배는 고픈데
며칠 동안 청소를 못한 집안에는 개털이 날리고 있었고
사랑이를 산책을 가고 싶다고 간절한 눈길을 보내더군요.


모든 걸 다 뒤로 미뤄두고 사랑이와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 사이에 미세먼지는 물러가서 하늘은 좀 맑아졌고
화사한 햇살이 비춰서 몸에 온기를 더해주는데
멀리 한라산을 봤더니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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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신기루처럼 헛것도 아니고 아주 멀리 있는 인터넷 속 세상도 아닌
차를 타고 한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는 곳에서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 모습에 몸과 마음의 온갖 찌꺼기들이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주를 마감하는 일요일 저녁
읽는 라디오 살자 백스물한번째 방송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네요.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이번 주도 특별한 변화는 없겠지만
기지개 한번 켜고 다시 시작해보자고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간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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