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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죄, 아들과 가정부를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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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해서 처음 10여 분 동안은 조금 어수선했다.

뭔가 얘기를 꺼내놓는 것 같기는 한데 약간 어지럽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곧 얘기의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어느 중산층 부부는 두 개의 재판에 관여하게 된다.

하나는 아들의 재판이고 또 하나는 그 집 가정부의 재판이다.

둘 다 구속돼 있기는 한데 무엇 때문에 구속됐는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그 이유는 차근차근 설명된다.

 

 

부부는 두 개의 재판에 관여하면서도 무게의 추는 자연스럽게 아들의 재판으로 향한다.

그리고 법정에서는 아들의 죄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벌어진다.

아들을 꺼내려고 노력하는 부부는 아들의 편에서 정성을 다해간다.

아들의 재판에 비해 비중이 덜한 가정부의 재판에서는 진실공방 보다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비중이 두어진다.

증인으로 참석하게 되는 부부는 그저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얘기할 뿐이다.

 

 

아들의 재판에 개입하는 부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놓고 서로 갈등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아들의 재판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돼버린다.

가정부의 재판에서는 사건의 실체가 점점 명확해지면서 한 인간의 삶이 걸린 문제로 되어간다.

그 상황에서 가정부의 재판은 법리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판단의 문제가 되어간다.

그렇게 점점 이야기는 고조되어 가고 아들의 재판과 가정부의 재판이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진다.

 

 

두 개의 재판에 관여하던 부부는 어느 순간 둘 사이에 끼어버리게 된다.

이제 그 시점에서는 두 개의 재판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로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정립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영화가 얘기하려는 문제를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지만

스포일러가 되는 지점이 영화에서 핵심이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

 

 

아들에 대한 믿음과 가정부에 대한 온정으로 부부는 두 재판에 임했지만

감춰진 진실과 현실의 무게는 믿음과 온정이라는 것을 넘어서 버렸다.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부부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 이후의 관계들은 또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아주 감동적이거나 사람을 잡아끌거나 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그저 무난하게 끌고 가는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생각을 막 던지는 게 아닌가.

철학적이거나 지적인 영화도 아닌데...

 

 

봉준호의 ‘마더’가 떠올랐다.

‘마더’에서는 아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엄마가 그 믿음을 끝까지 이어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그 믿음을 밀어붙였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봤다.

‘가족의 죄’도 그렇게 믿음을 밀어 붙이는가 했는데 둘 사이에 낑겨버리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면서 ‘마더’와는 다른 결론으로 갔다.

 

 

힘 있게 밀어붙였던 ‘마더’는 100% 창작이었고

멈춰 서서 생각을 했던 ‘가족의 죄’는 실화였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 지점 때문에

‘마더’가 끝났을 때는 가슴이 뛰었지만

‘가족의 죄’가 끝났을 때는 생각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나라면 저 선택의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 제일 먼저 달려들었지만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라고 되물어버렸다.

그랬더니 주인공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글쎄요, 쉬운 선택은 아니었는데, 아들도 가정부도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생각이 쉬워지던데요.”

내 아들과 내가 고용한 가정부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더 많은 질문이 달려들었다.

 

 

이 영화의 최고의 장점은 실화를 다루는 자세였다.

실화를 영화로 만들다보면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오버하다가 영화를 망쳐버리는 일이 많은데

이 영화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건조한 다큐처럼 현실을 차갑게 그려내는 것도 아니라

등장하는 이들의 심리와 관계들의 밀당도 적절하게 풀어 넣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적당한 거리두기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을 줄 아는 센스가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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