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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66회 –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진 날

 

 

 

1

 

읽는 라디오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어느 곳에 작은 호의를 제안했다가 거부당했습니다.

나름 고민 끝에 큰 마음 먹고 찾았던 발걸음이었는데

거절이 단호해서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거절당한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귀찮아서’ ‘윗사람 눈치 때문에’ ‘다른 일들이 많아서’ ‘해오던 일이 아니어서’

같은 어이없는 이유가 떠올라 짜증이 확 밀려왔습니다.

짜증을 억누르며 마음을 달래려 해봤지만

‘내가 하는 일이 뭔들 제대로 되기나 하겠어?’ ‘이기적인 세상에 어정쩡하게 위치하고 있으니 그런 대접을 받는 거지’ ‘세상물정 모르고 순하게만 살려고 하니 그렇지’

이런 생각들이 마구 저를 집어삼켜버려서 화가 치밀어 올라버렸습니다.

 

한번 끓어오르기 시작한 마음을 주체하기가 힘들어서

술을 한 잔 했더니

뜨겁던 분노가 조금씩 가라앉고

차가운 냉소가 그 자리를 차지하더군요.

 

 

2

 

내 안의 나 : 어쩌겠냐, 세상이 그런걸.

 

나 : ......

 

내 안의 나 : 까마귀들 무리 속에서 혼자 힘들게 백로처럼 살려고 하지 말고 너도 그냥 까마귀처럼 살아. 그래야 세상살이가 편해.

 

나 : ......

 

내 안의 나 : 야, 그렇게 발버둥 친다고 세상이 변하든? 아주 잠시 발버둥치는 동안 세상이 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엉뚱한 곳에서 훅하고 치고 들어와서 니가 쌓아놓은 걸 아주 우습게 뭉개버리잖아. 그것에 허탈해하다보면 너는 원래보다 더 뒤로 후퇴해있고.

 

나 : 그래서 나도 괴물이 되라는 거야?

 

내 안의 나 : 야, 세상을 괴물과 천사로만 보지 말고,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으로 살라는 거야. 주위에 죄다 까마귀들 천진데 너도 그냥 평범한 까마귀로 살라고.

 

나 : 나는 나도 까마귀라고 생각해. 고고한 백조가 될 생각도 없어.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세상이 미쳐서 돌아가고 있는 걸 보다보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끔찍해서 그래.

 

내 안의 나 : 세상이 미쳤으면 너도 적당히 미쳐봐. 그러면 생각보다 세상이 끔찍하지 않아.

 

나 : ......

 

내 안의 나 : 선한 사람 백 명이 악한 사람 한 명을 당하지 못한다고 하잖아. 너도 많이 경험해봤을 거 아냐. 주위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 많아도 모진 놈 한 명 때문에 좋았던 관계들 다 깨져버리고, 평소에 인심 좋게 사람관리 잘 해오다가도 한 번 실수로 모두 날려버리는 것도 흔한 일이야. 그런데 냉정하게 주위를 봐, 선한 사람이 한 명 있으면 그 주위에 그걸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열 명이야.

 

나 :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내 안의 나 : 니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어? 그 중에 니가 절박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야? 그래, 니 말대로 내면을 들여다봐서 연결될 수 있다고 치자. 앞으로 10년 정도 그런 노력을 해서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사람을 몇 명이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애? 야, 너도 세상을 살만큼 살아봐서 알잖아. 니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나 : 그래도 나는 그렇게 노력하고 싶어. 끝끝내 안 되더라도 그런 노력이라도 없으면 삶이 너무 슬퍼.

 

내 안의 나 : 그런 거라면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니 마음의 평화만 찾아.

 

나 : 세상을 바꾸려는 거 아냐, 나를 바꾸려는 거지.

 

내 안의 나 : 그런데 왜 자꾸 세상이 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그래?

 

나 : 이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라도 찾으려면 그렇게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야. 마음의 평화가 세상에서 등 돌리고 신선처럼 살아간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잖아. 세상 속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거지, 혼자서...

 

내 안의 나 : 야 야, 니 핸드폰을 보라고. 핸드폰에 있는 사람 중에 몇 명이나 너의 진정한 이웃이고 친구냐고? 솔직히 그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만들어보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세상이 만만치 않아서 그게 잘 안 되는 거고, 그런 현실 때문에 너는 화가 나는 거고, 아니야?

 

나 : ......

 

내 안의 나 :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좋은 말이야, 그치? 부처님이나 예수님 얘기 같은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반박하겠어.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단 말야. 그런 현실에 대고 아무리 부처님 예수님 얘기를 해봐야 씨알이 먹히냐? 그냥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는 세속의 까마귀하고는 다른 고고한 백조입니다’라고 합리화하는 거야.

 

나 : ......

 

내 안의 나 : 삐졌냐?

 

나 : 아니.

 

내 안의 나 : 뭐, 삐졌어도 할 수 없고.

 

나 : ......

 

내 안의 나 : 더 하고 싶은 얘기 없어?

 

나 : 응.

 

내 안의 나 : 그래 알았다. 혼자서 고민 많이 해라.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래저래 사람들에 치여서 진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느 집 대문 앞에 ‘개조심’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을 봤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내운 개가 있으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겠죠.

이 팻말을 보며 내 마음에도 ‘개조심’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싶어졌습니다.

‘내 마음 속에 사나운 개가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게 말이죠.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작은 것에도 예민해지고

그렇게 날카로워진 마음은 쉽게 지치고

혼자만의 공간 속으로 움츠러들고만 싶어집니다.

‘광폭한 맹견 조심’이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혼자 있으면 내 마음속 맹견이 더 크게 으르렁거립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기력해져 있는데

갑자기 지난 방송에서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눈물 흘리면서 숨지 마라.”

“여성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지겹도록 얘기해라.”

 

저는 지금 이렇게 방송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를 무시하고

제 마음 속에서는 맹견이 계속 짖어대고 있지만

저는 오늘도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TRPP의 ‘Li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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