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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63회 – 오는 사람 가는 사람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예순 세 번째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성민입니다.

 

택배로 물건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이곳이 조금 외진 곳이라서 택배를 받으려면 기사님에게 항상 위치 설명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기사님에게 자세하게 위치를 설명해드리고는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했습니다.

시내에 나가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간다는 기사님의 메시지가 왔더군요.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 앞에 물건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이곳이 하우스라서 입구를 잘못 알았나하는 생각에 주변을 다 살펴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200미터 쯤 떨어져 있는 다른 하우스에도 가봤지만 그곳에도 없었습니다.

기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근무시간이 지났다는 메시지만 들리고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기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을 앞둔 시간이라 미안했지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사님은 택배를 배달한 위치와 상황을 설명하셨지만 저는 물건을 찾을 수 없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진 곳에 누가 와서 그 물건만 들고 갈 리도 없고, 도둑이 들었다한들 다른 건 다 놔두고 자그만 물건 하나만 들고 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며 도난의 가능성을 일축하자

기사님은 잠시 당황하시더니 이런 경우 본인이 배상을 해야 한다면서 와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물건이 비싼 것은 아니어서 큰 걱정은 없었지만

퇴근을 앞두고 배달사고를 처리하느라 다시 움직이게 만들어서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뉴스에서 접해왔던 택배기사님들의 어려운 현실들이 되새겨져서

본의 아니게 제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기사님의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지내는 하우스 뒤쪽에 있는 옆 밭 창고에 물건을 배달했다고 합니다.

기사님에게서 물건을 전해 받으면서 서로가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위치를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고, 기사님은 배달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물건을 전해 받은 저는 퇴근이 늦어진 것에 대해 미안하다며 귤 한 봉지를 건네 드렸습니다.

귤을 전해 받은 기사님은 다음부터는 정확하게 배달하겠다며 즐거운 미소를 보여주며 가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해 받은 택배는 최근에 다치셔서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에 특별한 마음들이 녹아들어 있으니 어머니에게 힘이 되길 기원해봅니다.

 

 

2

 

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는 분이 오래간만에 찾아오셨습니다.

2년 여 전에 아버지가 암투병을 시작하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찬바람만 불어와서

제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했었습니다.

그 분도 그때 같이 정리했었는데 2년 여 만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힘들 때 이래저래 도움을 줬던 것이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낮은 자세를 보이셨지만

이미 마음을 정리해버린 저는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짧게 살아가는 근황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다음에 한 번 보자는 얘기에 적당히 거리를 두며 대화를 마치고는

가는 걸음에 귤을 조금 담아서 드렸습니다.

택배기사님에게 귤을 드렸을 때는 즐거운 미소가 돌아왔었는데

그 분에게 귤을 드렸을 때는 씁쓸한 뒷모습만 남겨놓더군요.

그나마 그 분의 삶이 최근에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얘기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잘 살아가셨으면 좋겠네요.

 

 

3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어서 가보지는 못하고 아쉬운 마음만 달래봅니다.

멀리 있기 때문에 살가운 관계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면 애틋한 정을 나누곤 했었는데...

 

작년 연말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전에는 가까운 친척분이 돌아가시고

이번에는 이모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부모님 세대들이 한분씩 돌아가시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우리 세대입니다.

앞으로 20~30년 밖에 남지 않았네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남은 삶이 길지 않으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지금 삶에서 딱히 더 열심히 하고자시고 할 게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삶에 좀 더 최선을 다하고

가능하면 주위를 좀 더 돌아보며 살아야겠죠.

 

오늘은 조금 처연한 노래를 들어볼까 합니다.

이 분도 암투병을 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황현의 목소리로 ‘세월’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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