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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농의 샘,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
- 12/13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
변혁운동의 힘은 사상과 대중에서 나온다. 대중은 계급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사상은 대중투쟁 속에서 풍부한 현실의 힘을 얻는다.
현장과 지역과 부문운동 속에서 끝임 없이 대중을 조직하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대중에 대한 신뢰이다. 격렬한 투쟁 과정이나,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을 헤쳐 나가는 힘은 ‘대중과 호흡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였다.
87년 6월항쟁을 광주에서 경험했던 금속노조 법률원의 박훈은 ‘거대한 민중의 바다’라는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일 동안 전개되는 것에 푹 빠져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껴요. 우리 해방구였어요. 가서 불 질러버리고, 포위해서 작살을 내버리고.. 어디가도 숨겨주고... 군복 입은 새끼들은 적이고, 군복 안 입은 사람들은 우리 편이고...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민중의 열기라는 것은 앞에 나서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들이 진짜 민중의 바다예요. 어디가도 숨겨줘요. 없다고 그러고... 아니면 ‘씨발놈아, 왜 들어와’ 그러면서 자기 오십년 역사에서 최초의 항거를 하는 사람들... 그런 거 보면서 ‘민중의 바다 속으로 숨는 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두려움도 없었지요.”
- 금속노조 법률원 박훈
대중투쟁은 한순간에 자동으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활동가들이 끝임 없이 대중과 호흡하는 일상 활동을 벌였던 힘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오는 것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 상집으로 노동안전활동을 벌여왔던 김정곤은 대중과 호흡하는 일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푸른등’ 해갖고 비닐봉지에 꼽도록 깔끔하게 만들었어. A4지에 쓰는데, 예를 들면 ‘산재라는 것은 어떤 것이다’ ‘과로사라는 것은 뭐다’ 이렇게... 간단하고 쉽게... 한 달에 한 번씩 발행을 했어. 전 야드에 화장실이 엄청 많은데 우리가 다 그걸 못 붙이잖아. 그래서 대의원들에게 나눠져서 붙이는데 대의원들의 평가가 들리는 거야. 조합원들이 ‘화장실 소자보 안 바꾸냐’고 그런다고... 그러면 안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늦어지면 빨리 하라고 그러고... 그래서 성공한 거야.”
- 대우조선 전 위원장 김정곤
대중과 호흡하는 것은 간부들의 선도적 열정만으로는 곧 한계를 드러낸다. 그 속에서 대중을 주체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열정은 현실에 묻히고 만다. 2000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다양한 투쟁 속에서 현장을 장악했던 풀무원 춘천공장은 이런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미련스럽게 했던 것 같고... 열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몸이 부서져라하고... 민원에 대한 부분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어요. 복지문제, 개인문제, 임금 등 1년에 해결한 것만 200건 가까이 될 정도로... 거기다가 교통사고가 나도 위원장을 찾을 정도였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는 별로 바람직한 게 못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초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서 신바람은 나고, 어깨에 힘은 주고, 자신감은 있었지만, 막상 그런 것을 쳐나갈려고 하니 쳐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간부들 선동교육 시키려면 얼굴이 하얘졌다 노래졌다 이런 상황이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자판기 노조처럼 된 현실이었고, 날이 가면 갈수록 부하가 커지고...”
- 풀무원 춘천공장 박엄선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을 주체로 만들기 위한 활동은 학생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대중운동 영역을 넘어서 확산되고 있다. 파산학교를 중심으로 직접 대중을 조직하고, 금융피해자들 스스로의 주체화를 위해 고민하는 대구인권연대 서창호는 인권운동이 활동가 중심의 운동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운동 자체가 고유하게 자기 성격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상근자 조직으로 가면 정책사업, 피케팅, 기자회견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런 것이 지역의 요구와 맞물리게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그런 것을 외면할 수 없는 거고...
금융피해자 인권운동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게 그런 문제의식이거든요.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 속에서 강제 받지 못하게 되면 이게 붕붕 떠다니고, 1년 지나고 2년 지나면 아무 것도 없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죠.”
- 대구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현실 일상 속의 대중은 매우 수동적이고 개별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속에서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중과 제대로 된 호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노금호는 장애인 당사자이면서 장애인과 제대로 호흡하지 못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하면서 정말 힘들었죠. ‘왜 이 사람들이 이럴까? 나랑 별로 다른 사람도 아닐낀데...’ 그런 의문점이 들었죠. 그러다가 함께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누나한데, 그 누나도 장애인인데, ‘왜 그럴까’ 물어보니까... 장애인들이 살아온 삶이 경쟁사회나 이런 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또한 처음부터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지만 계속적으로 동정과 시해 그리고 배제로 인해서 자신의 결정권이 박탈당하면서 체내화 된 일상적인 무기력함, 그리고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 동기부여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스스로 동기부여 해서 뭔가 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고...
‘그런 것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게 얘기 되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걸 내가 알게 됐죠. 그러면서 ‘내가 너무 속도 위주로 해왔구나. 그런 거보다는 이들에게 동기부여하고 그들의 결정들이 비록 어설프더라도 존중하면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금호
지역차원의 연대운동 역시 사안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수준을 넘어 지역차원의 정치투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중적 정치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대책위로 나타나는 형태로 연대운동을 했던 시기가 있어요. 전국적으로 다 같은 시기적 국면을 갖고 있는데... 단체가 연대해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주체를 좀 더 발굴해서 그들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잘못된 연대운동 방식이 뭐냐 하면, 많은 단체가 함께 한다는 상징성 빼고는 실제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거죠. 그런 한계가 있는 거고... 그것이 한 시기에서는 성과가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와 같은 연대사업 방식은 없어져야 된다는 거죠. 운동도 새로 만들고, 주민이 됐든 집단이 됐든 새로운 인식과 마인드로 무장을 시켜나가는 운동이 병행이 돼야 된다는 것이 새연정 출범에 녹아 있어요.”
- 전북 새날을 여는 정치연대 김종섭
대중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생각 외로 힘겨운 부침을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전북 부안의 계화도에서 바다일로 살아가다 10년 가까이 새만금 저지투쟁을 벌여왔던 고은식은 쉽게 벋어날 수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그 힘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도 이제 끝났다는 생각들... 이제는 근본적인 얘기보다는 10원이라도 나한테 득이 오는 것을 현실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방조제 막히기 전에는 공사 중단이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할려고 했던 것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것을 할려고 했었는데... 그게 힘들더라고요.
지금 어떻게 보면 어정쩡해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여기서 힘들면 떠날 사람들 다 떠나고 떠나지도 못하는 이런 분들을 또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정도 되면 이제 실체를 다 알기 때문에... 우리한테 주는 보상이나 이런 것도 허구라는 거, 결국에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거는 우리가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알거 아니냐는 거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치르기들’ 이거든요. 여기 방언인데 아무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그 사람들과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은 있어요.”
- 전북 부안 계화도 주민 고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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