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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공유합니다 - 4

어떤 분이 댓글을 통해 제가 책을 나눠주는 것이 기부나 자선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에 책을 공유하는 것을 시작한 동기는 단순합니다.

책들이 그냥 먼지만 쌓여간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저만의 오래된 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건넨 책이 여러 사람을 돌고 돌아서 다시 내 손에 전해지는 거죠.

물론 그 꿈을 꾸어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전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꿈을 꿀 수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공유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민중도서관이나 마을도서관 같은 형태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고

단체나 모임에서 서로의 책을 함께 나눠보는 방법도 있고

책을 읽고 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많고

책에 대한 소개나 서평의 형식으로 내용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방법들이 있겠지요.

제가 하는 것은 그런 방법들 중의 하나입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실험도 재미있습니다.


제가 건넨 책이 다시 누군가에 의해서 재사유화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한 명은 더 그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의미는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을 건네면서 나름대로 즐거움이 많습니다.

유형의 것을 건네서 무형의 것을 받는 다는 것도 비자본주의적 거래의 즐거움입니다.


이런 행위를 계속하면서 저는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해 심각하지 않은 고민을 합니다.

그 과정은 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제 행동이 기부로 보이든, 자선으로 보이든, 처분으로 보이든, 공유로 보이든 크게 상관은 없지 않을까요?


아래 적어 놓은 책들 중에 보고 싶은 책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메일을 주십시오.

보고 싶은 책과 받아볼 수 있는 주소를 적어서 메일을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성민 smkim18@hanmail.net



홍길동전 (보리출판사, 2007년판) : 생각해보면 유명한 고전을 원작으로 읽어 본 적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아주 유명한 고전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조선시대에 쓰여 진 민중영웅소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홍길동전, 전주치전, 박씨부인전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다양한 현대판에 너무 익숙해져 그런지, 원전으로 읽는 재미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혁명을 표절하라 (이후, 2009년판) : 트래피즈 겔렉티브라는 그룹이 엮은 책입니다. 반자본주의적이고 생태적인 다양한 사례들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의사결정, 건강, 교육, 먹을거리, 문화행동주의, 자율공간, 언론 등의 다양한 예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모아놓았습니다. 영국 사람들답게 매우 실용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크게 새로운 것은 없더군요. 우리도 그만큼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의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년판) : 마커스 보그와 톰 라이트라는 신학자 두 명이 예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책입니다.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런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두 신학자의 상반된 입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커스 보그는 역사적 실제 인물로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고, 톰 라이트는 신앙의 대상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의 입장을 단순히 보수나 진보로 구분하기 어려운 깊이와 내적 성찰이 있습니다. 사회주의자에게 예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에스페란토, 아나키즘 그리고 평화 (선인, 2006년판) : 문화제국주의를 넘어서 세계 사람들이 우애를 바탕으로 소통하길 원해서 만들어진 언어가 에스페란토어입니다. 에스페란토어의 사상적 기반인 아나키즘이 어떻게 이 땅에 들어오게 됐고, 현재의 흐름은 어떤지에 대해 쉽게 정리한 책입니다. 너무 개괄적이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제가 책을 보내드렸더니 이 책을 쓴 안종수씨가 고맙다면서 저에게 보내주신 책입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이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이 책은 원래 제 책이 아니기에 다시 다른 분에게 드려야 하겠지요.


곰들의 434일 (메이데이, 2008년판) :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한 모범적인 투쟁이라고 얘기되는 뉴코아노동조합의 투쟁은 말도 많은 합의서와 함께 끝났습니다. 일부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 투쟁에 대한 얘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당당하게 그들을 비판하기 어려워서일까요? 아니면 끝난 투쟁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서일까요? 아무튼, 이 책을 쓴 권미정씨는 그 투쟁을 애정 어린 눈길로 차분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투쟁들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기획된 책이어서 그런지 기획서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한길사, 2008년판) :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마술피리 이야기가 지어낸 동화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흥미를 주는 책입니다. 아베 긴야라는 독일 중세사에 정통한 일본 학자가 쓴 책입니다. 중세 독일의 역사적 상황, 민중의 생활사 등을 중심으로 꼼꼼히 자료들을 살펴보고 정리했습니다. 학자다운 치밀함이 돋보이지만, 동화가 난도질당해 분석되고 나니까 즐거움과 감동이 없어져버리더군요.


역사비평 2009년 겨울호 (역사비평사, 2009년판) : ‘불통시대에 돌아본 소통의 리더십’이라는 특집을 통해 조선시대 소통의 리더십을 살린 역사적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기독교 사회에 대한 비판적 글들,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현재와 소통하기 위한 역사학자들의 시도와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획의도가 강해서 그런지 글들이 급하게 쓰여졌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사랑하라, 희망없이 (민음사, 2008년판) : 윤영수의 소설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갑니다. 윤영수의 첫 소설집인 이 책은 냉탕입니다. 제목 그대로 희망 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냉탕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몸이 굳어지지만, 가만히 있으면 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나옵니다. 이 소설의 그런 냉탕입니다. 첫 소설집이라서 그런지 그 후에 나온 소설들보다는 읽는 것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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