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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병일기
재활치료는 운동과 마사지 주사 등의 방법으로 한다
오늘은 주사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통증부위 엑스레이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주사를 맞는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온갖 진상을 다 떨었다
재활 교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듯 자비없이 주사를 놓았다
암환자에게는 산정특례제도가 적용된다
산정특례란 중증질환으로 확진받은 자가 등록절차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경우 본인부담률을 10%로 경감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림프절전이여부를 검사하느라 림프조직을 떼어낸 후 시작된 통증인데
이게 산정특례적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왜왜 안 되냐고 따지고 싶지만 기력이 없다
오늘 그래서 병원비로 꽤 큰 지출을 한 것이다
이 주사는 리도카인염산염수화물,
마취제에 해당한다
수술한 쪽 팔이 올라가지 않아서
만세를 못하니, 옷을 입고 벗을 때 너무나 불편하다
그와중에
핸드폰 액정이 깨진 채로 지내다 재활치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삼성as센터에 갔는데,
액정을 교체하면 수리비가 28만원이라고 하더니, 파손부위가 크지 않아 무상으로 서비스를 받았다
세상에,
뭐 이렇게 훈훈하지?
절묘한 행운들이 이렇게 대놓고 온다
그동안 내가 헤아리지 못한 신의 조화가 얼마나 많았을까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신의 조화였을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얼굴도 한번 본적 없는, 앞으로도 마주칠 인연이 없을 누군가들이 나를 위해 어디선가 살아있어 주고
나 역시 그들을 위해 살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노잼인 글을 쓰냐면,
이렇게 밝고 선한 마음을 찾으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런다
나중에 보려고
내가 이렇게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걸 나중에 보려고 그러는 거다
"조직검사 결과 암으로 나왔네요"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보다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보다도 먼저,
가슴에 쿵 하고 뭔가 내려앉는 것이다
그때 선택해야지
같이 내려앉을 건지,
일어서서 맞설 건지
그와중에 내가 보살펴야 할 가족이 없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도움주신 아버지어머니언니오빠형님스승님친구들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희망이 되겠습니다)
팔을 절대로 쓰지 말라고 해서 당분간 재활운동은 못하겠다
갱년기증상(열이 갑자기 화르르 올라서 땀이 줄줄 흐름, 폐경이 됨)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며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타목시펜, 오메가3, 비타민D를 먹고 있고
어제부터 고함량비타민C인 메가도스를 먹고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기를
며칠내로 숲속에 잠깐이라도 가야겠다
나무에게 가야겠다
오늘의 기도
나의 선택이 언제나 당신의 뜻과 조화롭기를
나처럼 외롭고 쓸쓸한 별들의 슬픔을 잘 듣는 사람이 되기를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며 제가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경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힘겨운 고통 속에서도 고마워하고 세상과 연결되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며
제가 배워야할 삶의 자세를 가슴 속에 새겨봤습니다.
Chaewon Shin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그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지만
그분의 힘겨움이 혼자만의 고통이지 않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2
예쁜이 산책을 시켜주러 갔더니 새끼를 낳았더군요.
막 출산을 끝냈는지 개집 안에는 양수가 흘러있었고 예쁜이는 기운이 없어보였습니다.
저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해서 먹을 것을 갖다 줬는데도 먹지를 않았습니다.
개집 주변에 문제될 것이 없는지를 살펴보고 나서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고는 돌아왔습니다.
작년 가을에 첫 출산을 하고나서 얼마 전까지도 강아지들과 지냈었는데
그 강아지들이 다 떠나고 나서 한 달 만에 또 다른 강아지들이 태어난 겁니다.
강아지들도 문제지만 예쁜이가 이런 상태로 지내면 계속 임신과 출산을 반복할 텐데 그게 더 걱정입니다.
매일 같이 산책을 하면서 정서적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고, 뼈만 있던 녀석이 살도 많이 쪘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외부에 방치돼 있는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예쁜이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엄연히 주인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에 누군가가 동물학대로 신고를 했나봅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시골사람인 주인은 “개집도 있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식입니다.
사람이 인정이 없거나 모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시켜주고 멋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지 체크하는 것뿐입니다.
주인도 주인 나름대로의 고민과 사정이 있을 테니 그것까지 참견할 필요는 없고,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주위에서 안타까워하고 신경써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게라도 행복해지길 바래봅니다.
3
예쁜이가 새끼를 낳은 다음날
먹을 것을 갖다 줬더니 살며시 나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계란 프라이를 잘 먹을 수 있게 집어주려고 했는데 평소와 달리 예민하게 입질을 하더군요.
저와 산책하는 사랑이를 발견한 예쁜이는 집밖으로 나와서 마구 짖어대기도 했습니다.
사랑이가 혹시나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었죠.
그 다음날
예쁜이를 찾아갔더니 집 입구에 검은 천이 쳐져 있었습니다.
새끼들 때문에 예민해진 예쁜이를 위해 누군가가 가림막을 설치해준 것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예쁜이를 불렀더니 저를 알아본 예쁜이는 집 밖으로 나와서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예쁜이 집안에는 포근한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가 예쁜이와 새끼들을 위해 마음을 썼더군요.
밥그릇에는 미역국과 통조림 같은 정성스러운 음식들도 담겨있었습니다.
이날도 예쁜이는 가볍게 산책을 하고는 얼른 새끼들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예쁜이 집 주변에 있던 밥그릇들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습니다.
너무 지저분해서 “날 풀리면 한번 씻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저보다 먼저 행동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집안에서 새끼들을 돌보던 예쁜이는 제가 부르자 살며시 나와서 산책을 즐겼습니다.
예쁜이를 볼 때마다 이런저런 걱정들이 들기는 하지만
주위에서 이렇게 조용히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은 푸근해집니다.
예쁜이는 이 동네의 온기를 측정하는 온도계가 됐습니다.
(백건우의 ‘Chopin: Nocturne No. 1 in B flat minor, Op. 9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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