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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08
    이런 걸 기뻐야 하는지...(2)
    승규
  2. 2007/03/06
    잘도 열심히 하더니 왠 '쉬어'?(2)
    승규
  3. 2007/02/28
    조금은 기뻐할 일.
    승규
  4. 2007/02/24
    그저께 그리고 어제에는...
    승규
  5. 2007/02/12
    난데없는 강남 땅 휘젓기.(2)
    승규
  6. 2007/02/07
    오랜만에 모교 사이트에 보니...
    승규
  7. 2007/02/06
    이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란...
    승규
  8. 2007/02/01
    어제는 무슨 일이?
    승규
  9. 2007/01/03
    오늘 이것저것 꾸미면서...(2)
    승규
  10. 2007/01/02
    가석방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건만...(2)
    승규

이런 걸 기뻐야 하는지...

오늘 다른 일자리에 갈려고 면접
(알바이라 무슨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만나는 것...)보았고
내일 다른 곳에서 돈벌이를 하려고 갑니다.

바로 혹시 볼까봐 두렵지만...
영통 근처의 모 유업 물류센터에서 포장하는 일하는 것인데
앞선 것보다는 버스는 시내버스를 타야 하고 임금도
세전 80여만이라서 낮긴 하지만...
(4대보험에다 퇴직금 빼면 70여만원...)

앞에서 남성중심 사회에서 일하는 것과 달리
나이 지극한 여성이 대다수 있어서
그나마 마초성이 적은 곳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임금은 적은데 분위기가 좋은지 2,3년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잘 선택한 듯 싶네요.

또한 최대의 약점인 버스를 타도 또 다시 걸어가야 할 듯한
근접성 문제가 있었는데 다행히 현장조사를 한 결과
근방에 버스가 있어 땡 잡은 듯 싶네요.

그 담당자는 오래 다니라고 말을 하는데 뭐 주 5일근무에
9시~18시의 칼퇴근이라서
남은 시간에 활동할 수 있고...
더욱이 월급이 정액제인 이유로 몇일 빠져도
(물론 사전에 예기를 하지만요) 그대로인 것도 좋고요...

하여튼 전 내일 또 다시 첫걸음부터 시작합니다.

여담으로 어제 자작으로 총궐기에 들고 갈 '작은 깃발'을 만들었지요.
바로 검은 색 종이에 흰 펜으로 대충~ 쓴 것이니... 알아서 반겨주실.

또한 위와 관련이 있지만 민노당 당대회에서
개방형 경선제 도입에 대한 '항의'의 근조라벨을 만들었으니
아시죠.

또 회고록을 써야 하는데 참... 난잡한 제 두뇌로 인하여
미루고 있어서 좀 그렇네요.

끝으로 이제 3월인데 왜 눈이 많아 오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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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열심히 하더니 왠 '쉬어'?

앞서 제가 취직을 해서 기분좋게 일을 하였지요.

비록 원료 자체가 얼음덩이라서 좀 무겁고 바삐 움직여서 힘은 들지만,
쉴 틈도 상대적으로 많고 잔업이나 특근에 대하여 선택권을 주고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있어' 있을 만 하었어요.

물론 앞서 몇 개월이지만 일을 하었던 곳이었고,
대다수 직원들이 저를 알고 있어서 비정규직(알바)이지만 좋았는데...

어제 아침에 일터에 들어서니 나이 지극한 모 직원이 날 보더니

'승규! 왜 여기에 왔어? 혹시 연락을 받지 않았어?'

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묻더니
제가 유일한 단점이 제가 일하는 곳이 공장과 약간 떨어진 곳인데
문제는 통근버스가 공장에만 간다는 것이어서
당장으로는 직접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 좀 해결하는 의미에서
공장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니 어쨌든 잘 되는 것
같아서 이런 연락을 받지 않았냐는 것이지요.

결국 그 직원이 연락을 한 후
당장 그 자리에서 있기로 하였는데...

퇴근에 임박할 때 누군가 날 찾는 전화가 와서 받는데...
이딴 말을 하더군요.

'잠시 쉬었으면 하네.'

엥~ 한참 재미있게 일하며 오래 비정규직으로 살며
사야할 걸 고심하던 나에게 왠 쉬어?

즉 지금 공장 내 시설 일부가 공사하고 있어 정규직도 다른 파트로
돌며 하는 상황이라서 부득히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한다는데...

물론 저로선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하였지만...
뭐라 반박할 수가 없어 수용을 당했지요.
그리면서 다른 직원이 조만간 만날꺼라고 위로(?)하며 나갔지요.

다만 오늘 새로 들어온 비정규직(알바)은 다른 곳에 배치하며
잠시라도 일을 하는데 저로선 의심감이 들었지요.

그리더니 오늘 다산에 가던 중 생활정보지를 보다 열이 나더군요.
바로 내가 들어간 그 자리를 뽑는 광고를 보았거든요.

그래서 약간의 기대감이 들었던 저로선 참 분노하게 하였고
어떠한 사유인지 또 다시 뽑는 것이 뭔지 알아내고 싶어서...
내일 아침에 결판 좀 내볼려고 합니다.

어쨌든 저로선 그 자리에 다시 가는지 아니면 다른데
알아봐야 하면서 그 사건에 대한 의혹을 풀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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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기뻐할 일.

...이라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운동을 잠시 접을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누군가 운동=삶 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다음 달부터 무일푼으로 다산에 있었는데

돈벌이를 하게 되었어요.

물론 면접까지 보고 바로 결정한 것이지요.

 

바로 용인 신갈에 있는 녹십자.

그 중 혈액 중 혈장(혈액을 가만 두면 위에 묽은 부분임)을

가지고 알부민이나 응고인자 등등 '혈액제제'를 만들 때

원료(?) 중 샘플 체취하거나 운반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다행히 제가 예전에 잠시 알바로 바로 그 곳에서

비슷한 파트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고 수혈을 해야 함에도

워나 공급 부족이 되어서 일이 없어 시간이 남을 때

가끔 앞서 한 걸 도와준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익숙하긴 한데 그게 5년전이 되었네요.

 

그래서 가끔의 특근이나 파견근무 즉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건 이외에는 주5일근무에 임금이 100만원정도...

4대보험은 기본이고 집 근처에 통근버스를 탈 수 있고

밥도 주니... 누군가 '귀족'이라고 비아냥거리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나름 괜찮습니다.

다만 오래 일해도 소용없다는 걸 빼고는...

 

그리고 면접에서 병역부분를 묻지 않고

예전 경력으로 무조건 오케이이라 말해서 좋았는데...

문제는 실제 일터가 다른 곳인데 버스로 가기가 어려운 곳이어서

조금은 기우뚱하네요.

 

그럼 전 주중에 열심히 현장에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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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그리고 어제에는...

그저께...

 

그 날은 목요일. 즉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목요집회에

병역거부를 주제로 치른다고 하면서

소위 '비밀결사체' 주도로 모 병역거부자가 떡을 준비하면서

그 날 즉 2월 22일에 잡기로 하여서 갈라고 하였는데...

 

요즘 날씨가 좋은 것과 슬 때 없는 밤샘으로 인한

피로감과 '느림의 미학'으로 정말 늦게 출발해서 역시나

늦게 도착을 하였지요.

 

다행히 집회가 중반 쯤이었고

전 뒤에서 바라보며 몇몇 이와 인사를 나눴지요.

 

그러다 출소한 병역거부자들의 인사 출현이 되어서

반의 두려움과 함께 나와서 마아크 대고 인사를 하였는데...

 

아~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허해지는 내 머리속이란...

결국 어쩌할 방법 없이 주절주절 하며 성함을 부르는 걸로

마무리를 하였지요.

 

그런데 집회 끝나고 어느 어르신(보시면 아실 듯)이

우리들에게 민가협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정작 영치금이나 책을 보내는 건 양심수후원회인데

출소 후에는 전혀 우리 쪽에는 고맙다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정말 대놓고 말했는데...

 

물론 제 자신도 미안함이 드네요...

 

그래도 나름 민가협에게 소통해준 고마움이 있었기에

자신있게 말을 했으나 무슨 의도로 극한 서운함을

표현을 하였는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이후 어떻게든 양심수후원회로 가서

훈계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후 성대 근처의 사무실(사실 가정집)에 가서

녹두 뭍힌 떡(뭔지 모르지만 정말 맛있었음)과 과일을

먹으며 민가협 어미니의 조언을 듣으며 앉았지요.

 

그러다가 끝이 나자 각자의 일정인지 아니면

분위기에 대한 부적응인지 모두 나가게 되었고

전 그 떡에 대한 약간의 미련이 있으나...

다른 곳으로 향해 갔지요.

 

그리고 어제...

 

어제는 병역거부자 용석 씨의 외출일이었지요.

다시 말해서 평택대행진 건으로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는 날이었지요.

 

 전 별 일이 없는데도 또 다시 무기력함과 졸음으로

또 다시 제시간에 늦게 그 법정으로 갔지요.

 

그런데 앞서 재판이 많이 있다보니 아직도 시작이 되지 않았고

뭐~ 밖에서 죄인(?)이나 방청객과 대화를 하였지요.

 

그 후 누군가 들어오라고 하였고 법정에 들어서니

앞서 누군가 판사가 바꿨다고 듣었는데 역시 판사가 바꿨군요.

 

우리들은 판사가 바꿔서 기대나 우려함이 들었는데...

역시 어린 사람인 듯한 재소자에게 반말로 대하는 등

저번 판사보다는 좀 격이 떨어진 듯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앞서 공판에서 진행을 많이 하려고 하였으나

불출석한 어느 분의 심문과 변론만 하고 검사가

그 당시 상해입은 의경과 전경의 증인을 요청하였고

이에 판사가 응하면서 심문을 하겠다고 하면서

다음 기일을 3월 22일 오후 3시

수원지법 410호 법정에서 한다고 끝났지요.

 

그런데 검사 쪽에서 증거라고 하면서 대충 40cm 정도의

증거 서류를 제출하였고 그 두 증인이 피고인 중 누구라도 지목할

가능성이 있어서 걱정이 만발하게 하였어요.

 

(특히 용석 씨는 사회자로 나와서 더욱 그 가능성이 높은데

혹시라도 실형이 나오지 않기를 빌 뿐이지요.)

 

그 다음 죄인(?)들과 방청객은 밥 먹으면서 대책회의를

하였지요.

 

아~참 그 날의 경우 앞선 공판보다는 오는 이가 많이 없었고

CO 쪽에는 오리, 여옥 씨만 왔었지요.

 

또한 용석 씨는 제 두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12부로 삭발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는데

이쁜  걸 넣어달라고 하더니 그 결과물은 제가 보기엔

진녹색 군복점퍼(?)인 듯...(미안한 소리인데...)

그래도 따슷하게 입은 듯하게 보였지요.

 

그 후 공석이 남아서 우연치 않게 오리와 면회까지 가게

되었는데, 알 수 없는 어느 교도관의 연락으로

(아마도 용석 씨가 오리 '이모'에게 연락해 달라는 듯.)

버스타서 구치소에 가고 3시 까지 기다리면서 과자 먹으면서

나와 운동관, 병역거부운동 내부, 감옥 쪽에 대한 심대한 대화를 나눴지요.

 

그러다 3시 넘게 면회 신청이 되었고 그 짧은 짧은 10분동안

대화하고 해여졌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대화에 대한 답이 왜 안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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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강남 땅 휘젓기.

어제 아침. 어디 갈 곳이 없기에 푹 자고 있는데

어머니의 이 한마디에 어떻게라도 나가야 했지요.

 

바로 ' 친가 및 외가 쪽 친척들이 온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어린 시절이외에는 이따금 만나도 무슨 할 예기가 없고

활동가이지만 실제 돈벌이 없이 보내고 있어서 취업이나

결혼(이미 비혼으로 살겠다고 각오함) 예기가 나올까바

짜증이 밀려 나왔는데...

 

더욱이 내 자신이 그들의 눈에는 군대 안 가서 감옥을 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으로 비춰질까봐 도저히 방안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날 아침부터 상 좀 내려놓거나 방 청소를 하라고 해서

일어나 이것저것 하다가 얼굴 씻고 바로 나가겠다고 말한 뒤

'하루 가출'을 하였지요.

 

다행히 친척들이 아침 식사를 하려고 올라고 하였으나,

좀 늦게 온다는 전화가 와서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였고

정말 수년만(!)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였지요.

 

결국 아침 9시에 집에 나선 후 걸어서 남문을 거쳐 수원역으로 간 뒤

잠시 어디로 가는지 고심한 후 가까운 곳인 유행의 첨단을 달린다는

'강남'으로 가기로 하였지요.

 

그래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였음에도 먼 거리로 전철 및 지하철을

통해 출소 후의 처음으로 고속터미널역에 내렸습니다.

 

그 다음 S백화점 지하층과 5층을 둘려보고 7호선을 따라

쭉 걸어간 뒤 그 중심인 '청담역'에서 시종에 달리는 듯히 걸어서

삼성역으로 향하였지요.

 

그래서 COEX나 지하 몰 그리고 H백화점를 둘려본 뒤

그 비싼 음식 사이에 가장 저렴한 컵라면 하나으로서 끼니를 채웠지요.

 

그 후 2호선을 타듯이 걸어가서 강남역 거리를 둘려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서 교대역에서 타서 잡으로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잠깐의 휴식 이외에는 거의 서며 걸어가서

왼발등에서 예리한 통증이 나네요. 아후~

 

특히 밤에 집에서 누우며 쉬는데 갑자기 친척 한 분이 전화가 와서

날 찾는데 정말 할 말이 없는데 무슨 알려고 하는지 정말...

좀 그랬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대신 받았는데 왜이리 나의 생각과는

왜국된 말만 하는지 한심함까지 들었고요.

 

결국 쓸 때 없이 하루를 보냈어요.

물론 오랜만에 낮선 거리를 하게 되어서 좋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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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교 사이트에 보니...

먼저 고교 사이트에 대하여 말하지면

기술력이 좋은 건지 홈피는 깔끔하긴 하는데

참 '대학' 배너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조금은 짜증이 나군요.

 

그럼에도 눈에 띄는 건 공지사항에 나온

'2006학년도 대학진학현황'... 그래서 클릭해보니

참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니

소위 명문대도 가긴 진핵하였구나 싶네요.

 

그 목록을 보면 "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아주대, 숭실대, 단국대, 세종대, 숙명대,

상명대, 호서대, 서원대, 한신대, 경기대, 건국대, 백석대,

한라대, 경동대, 호원대, 인하대, 수원대, 강남대, 나사렛대 등등 "... 

 

더욱이 내가 졸업할 때에는 수시 모집이 처음이어서

숙명여대에 진학한 이가 있었고 내가 진학한 대학도 두 명만이

합격받아서 그나마 괞찮다고 부르는 정도이었는데...

 

참 부럽더군요.

물론 '학벌사회'에 징글징글하게 싫어하지만 과거의 어둡고

불운한 시절이 끝이 났는 듯 해서 좋아 보이네요.

 

그럼에도 올해도 S대는 나오지 않았네요.

심지어 농대라도 들어갈라고 기를 썼던 시절을 안 나로선

다음엔 과연 되는 것인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교직원 명단을 보며 아직도 살이있는

선생님(왜 붙여야 하지?)이 있지만 공립학교로 가서

사라진 이도 있어서 언제 찾아가야 할 것인데 싶네요.

 

또한 대학 학과 홈피에도 본 즉

처음엔 모 교수의 정년 퇴임 소식이 보였고

역시나 '취업 이데올로기'에 편승 당해 어디로 취업을 하였는지

학번과 이름(실명으로)을 쫙 보여 주는데...

 

지금 내 자신이 어디라도 밥벌이를 하려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있는 건 물론이고

'취업'에 대해서도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 중 나에게 가장 큰 생각은

지금 당장 모교에 찾아가서 병역거부자이면서

'무임금유노동'의 활동가라는 걸 보여준다면 참 우습겠지요...

 

특히 '빨갱이'라는 걸 안다면 더욱 웃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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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란...

요즘 전 핸드폰(저로선 필요감이 없으나 주변에서 하도 성화쳐서...)등의

마련을 하면서 용돈이라도 벌어야 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요.

 

그러던 중 모 주류회사에서 꺼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비록 숫자는 적지만 잔업 없고 집에서 멀지는 않으면서

특히 요일 및 날짜를 협의해서 그 일정만큼 일할 수가 있어서

활동가에게도 굉장히 땡기는 것이어서 저로선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수감 한 걸 제외해도 몇 년동안 일을 하지 않았던 저는

대인관계이나 의사소통에 약간의 장애(?)가 있고

병역에 대한 '커밍아웃'에 대하여 준비하지 못 하였는지

육체이나 정식으로 힘들다는 건 물론이고 참 두려움이 드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밥벌이를 한다고 마음을 먹긴 하였는데

집에서 같이 서식하는 '참새'도 밖에 안 나가려고 해서

내가 일꺼리를 보여주며 제발 취업해라고 말을 하였음에도

정작 내 자신은 알바라도 하려는 걸 못하는지...

 

이 무기력의 때인가?

 

차라리 로또나 당첨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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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무슨 일이?

어제는 좀 바쁜 나날을 보냈지요.


먼저 그저께 수원구치소에 가서 용석 씨 추가접견을 시도를 하였는데
직원이 횟수 초과로 매정히 거부당해 돌아가는데...

집에 들어서니 서식하고 있는 '참새'(친누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돼지(나)! 수원구치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이어리 찾아가라고 하더라고...'

 

처음엔 하도 그러한 걸로 겁주며 놀렸던 적이 있어
무시하였는데 들고 갔던 백팩 안에서 뒤져보니
오~ 내 자신이 왜 이러지... 없네?

 

그렇습니다. 제 다이어리가 구치소 민원실에 두고 왔고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있다가 밤 늦게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분실 자체를 '난 정말 몰랐었네~'라고...

 

참 그 다이어리엔 중요한 것이 있어서
언제나 유무를 확인하는데 앞서 지갑을 통째로 날아가 버린 때가
언제쯤인데, 20대 말에 접어들은 지금 서서히 '건망증'이
걸리고 있으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간' 나 자신에 우울해 지네요.

 

그래서 어제 또 구치소에 가서 다이어리를 되찾았고,
이참에 지갑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직원이 말하더군요.

 

지금도 그 지갑이 잃어버린 걸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참새'가
나의 기억감퇴에 대하여 나('새'니까...)와 같다고 놀리는데... 휴~

그 후 국가인권위로 갔는데 고민을 하게 되었죠.


바로 활동보조인 총력집회이냐 아니면 유엔 자유권규약 토론회이냐...
원래 집회 참석을 위해 온 것이었는데, 토론회에서 병역거부 관련 부분이
있어서 여차저차해서 토론회로 선회하여서 갔죠.

 

지금 춥다보니 역시 같은 단체의 활동가도 거기로 갔더군요.
이 토론회에서는 발제 → 관련부서 입장 → 토론 순이었는데
전 국방부 관계자도 있어서 그 분의 말을 귀담어보니...

 

역시 올 3월중에 병역거부의 인정유무에 대한 검토 완료이나
6월중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펙트'는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국방일보 1월 30일자에서 대통령이 군부대에 방문하면서
“군 복무제도 변경은 꼭 필요한 것으로 청년 인적자원 활용 측면에서
학제 개편과 함께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군 복무제도가 합리화될 것”과
“청년 인적자원 활용과 병역 의무 형평성을 위해
복무 기간을 포함한 군 복무제도 개편과 학제 개편,
복지·봉사근무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해서 이 사안에 대하여
뭔가 보고를 한 듯 싶다고 그 관계자가 추측하였지요.

 

또한 그 관계자의 개인적 입장인지 아니면 홍영일 님의 언질을 받았는지
발표 중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명명을 자주 하여서 저로선
뭔가 좋은 일이 나올 듯 싶은데 절 모르겠군요.

 

그 후에도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듣을 것이 없고
그 집회에 가야 해서 나갔고, 인권위 앞부터 동화면세점 앞까지

행진에 동행하였지요.

 

그럼에도 장애인 투쟁에 처음으로 가서 몇몇 활동가의 안면이 있어
같이 갔음에도 이 알 수 없는 낮설음이 느꼈지요.

 

그리고 스스로 소수의 길을 선택한 한 사람으로서
활동보조인제도에 관련하여 가장 큰 수혜를 줄 수 있는 집단에 속함에도
이제야 (보잘 것 없지만...) 연대를 하였다는 것에 미안함이 드네요.

 

심지어 어떤 장애관련 활동가가 사회복무제과 관련하여
탈시설화를 요구하는 입장과 달리 역행할 수 있다는 의문을 제시한 적이
있어서 뭔가 오해를 풀어야 할 필요성이 느꼈거든요.

 

하여튼 이것저것 생각하며 천천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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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것저것 꾸미면서...

어제 그때그때마다 수감기록을 써야 하건만

청소를 비롯해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제 대충 쓴 글로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오늘 시내 모대학에서 이 타자질을 하고 있는데

이달이 만기라 돈 벌어야 해서 일자리 있나 알아보면서

제 집 좀 꾸미면서 특히 앞에 목표처럼

십여년 냉전중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전세라도 어떻게든 벌어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예상으로 3년 정도 걸릴 것 같고

임금의 반(최소 50만원)을 적립식펀드이라도 부어서

집값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것이 우선이다면 다산과의 작별은 피할 수 없듯이라서

좀 그렇네요.

 

그럼에도 제 자신도 절박하기에 해야만 하는데

이 나에 대한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것이 정말 싫다.

 

그리고 잡담이지만 전 지금 언론이나 사이트에 보면

짜증이 막 나면서 직접 간부들이나 그 쪽 사람들을 보면

더 짜증이 막 나오는 민노당 당원인데...

 

이번해 당직선거도 있어서

저도 우파들이 득실거리는 이 수원에서 한번(여러번 해야 하지만...)

'평등'의 딴죽을 걸고자 대의원에 출마할려고 합니다.

 

물론 중앙위원이나 중앙당대의원으로 출마를 하고 싶으나

아직 경륜이 모자른 것이라 하향지원으로 경기도당 대의원으로

나서기로 마음먹었고 이미 출마서류를 다운 받아 어느정도 작성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선 후보 추천 문제도 있어서

지금이라도 대응을 해야 하는데 참 반응이 없어서 좀 답답하네요.

 

다욱이 저의 경우에도 18명이상의 후보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 인원이 있을련지...

더구더나 낙선도 우려될 수가 있기도 하고요.

 

솔직히 저로선 하나에 집중을 하고 싶지만

쪽수가 없어서 가끔 외도만 하면 되기에 출마를 하려고 해요.

 

그럼 여러 걱정을 안고서 내일 북한인권에 관련한

내부 세미나가 있어 사무실에 가고 꼭 수감기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재소자에 대한 걸로 외전 써볼라고 하는데...

 

* 덧말

 

: 최근 중앙당 당게에서 '상근자 노조'에 대한 막글이

올라오는데 전 한나라나 열우도 있는 노조에 대하여 왜 딴죽을

내는지 이해가 안가면서 당연히 대찬성입니다.

 

물론 '행인'님의 전진에 박수를 주고 싶은데 그 날 갈 수가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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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건만...

오늘 사무실에 도착하니 옆자리에 편지 뭉치가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봉투를 보니 '~우체국 사서함 ○호-○○○○'...
이른바 징역편지 즉 행형시설에서 수감 당한 재소자에서 보내는 편지이지요.

 

그런데 제 추측이지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매년 출감하는 '감옥인권' 시리즈를
보고 여기로 보내는 것 같은데, 아직도 옛 주소로 되어 있어서
소인에 찍힌 날짜가 거의 두 달 되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이러한 '민원'에 어떻게든 답해보려고 다른 분이
하나씩 뜯어보았는데 대부분이 참 제가 있는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이라는
명칭과 혼동이 되어선지 무슨 진정서 같은 내용이더군요.

 

그러던 중 그 다른 이가 저에게 한 편지를 보는데
글을 읽으니 보내는 이가 과거에 삼청교육대에 끌고 가버려
상당한 장애를 입혀 지금도 고통스럽게 지냈는데
다행히 이와 관련한 보상위원회에서 보상금이 나왔는데
본인으로선 그동안 의료비용으로 들은 금액과는 텃 없이 모자란 것이더군요.

 

그래서 국가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1심에서 각하(기각도 아닌...) 결정이 나와 항소중이다고 하면서
장황스럽지만 이 소송에 좀 도와달라는 듯한 글이었고,
제가 그 편지에 있는 사건번호를 통해 조회하니 지금도 계류중인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 요청에 쉽게 받을 수는 없는 듯하고
결국 삼청교육대과 관련하는 활동가에게 전달하자는 결론을 하였은데...
이 알 수 없는 씁쓸함이라...

 

그러선지 '사람' 이달호를 보니
광주교도소에 있는 어느 분이 박래군 씨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실렸는데
감정적인 판단으로 내린 징벌이나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하여
구제를 해야 하건만 그저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형식적인 반응뿐이며,
'재소자'(법정용어는 '수용자/收容者'이지만 이 용어가 시혜적인 어감이 있어서
저로선 싫어함)에게는 엄연한 시민임에도 소측에선
이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 이런 구절에는 나도 대단히 동감!
특히 내가 있는 교도소가 대상이 만 20~25세이다보니 공식석상에도
교도관이 반말로 대하니까... -

 

또한 행형시설 내 최대의 악법인 '집필사전허가제'로 인한
원하지 않던 낙인찍힌 것(문제수), 언제나 골치아픈 의료권까지
종합적으로 지금이야 권리구제가 확대되어 인권침해의 정도가
약해졌다고 반문하여도 교정이 아닌 관리에 치중하는 당국의 현실에
'아직 멀었다'다는 답뿐인 듯 느껐습니다.

 

참 제가 지난주 앞선 글의 주인공인 용석씨와
영등포교도소에 있는 김성환 위원장과 병역거부자인 영진 씨까지
아주 행형시설을 왔다 갔다 왔습니다.

 

그 중 이후에 구속당하는 노동자 등의 양심수를 위해
이따금 단식투쟁을 하며 교도소측과 지속적인 사보타주를 하는 김 위원장을
보며 제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음에도 현실에서 여러
어러움이 느낀다는 것에 미안함이 들었고 이 삼성에 치졸한 법정 탄압으로
억울하게 약 2년간 징역살이에 있다는 것에 화가 났었지요.

 

그럼에도 '바쁜데 왜 왔어?'라는 첫 물음에도 반가움이 들었고
현 시국에서 소외 된 듯하다고 보았건만 매달 면회 횟수가 채워지면서
지율 스님도 찾아 왔다고 말을 하였지요.

 

그리고 제가 있는 단체 사람들이나 문정현 신분님, 김지태 이장님의
안부를 여쭙기도 하였지요. 참 직접 안부를 묻지 못하고 한 사람 걸쳐서
안부를 전해야 하는 그 심정... 저도 그러 했기에 만날 수 있다면
전해드리 겠다고 답했지요.

 

또한 영진 씨의 경우 어머니와 전쟁없는세상에 있는 모 님과 함께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눴는데, 저로선 그 시간동안
모자간의 '깨소금' 냄새가 진하게 나니 눈부터 시작해서 허리 통증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다는 병을 다 당했던 영진 씨가 모습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 아무리 외부용이더라도 이런건 쉽지가 않는데... -
안심이 들고 모자 사이에 나는 이 '깨소금' 냄새에 왠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첫 대면이라 시간상 다른 분과 대화하다 몇 마디 나눈 정도이지만
하여튼 두 번의 좌절 끝에 성사가 되어서 좋았는데...
지금 출역을 하며 적응을 하고 있는데 앞서 공황장애 때문에
소측에서 수시로 작업취소를 시도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다 내면의 선을 넘어 버렸던 이에게
아니 또다시 간섭을 하는 저 행정을 보며 악 화가 났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전하였지요.

 

물론 시간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마이크가 꺼지는 그
안타까움은 느껐음에도 수시로 손짓을 하는 저 모자의 애잔함이...

 

그리면서 이제 2007년이 되었는데 참 제 자신은
아직 경찰의 부름 없이 무사히 보내고 있지만 참 여러 갇힌 벗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동거는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다시 말해 전 아직도 '갇혀저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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