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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서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때는 카메라를 사야겠단 생각 밖에 없었다. 가까이 있던 친구는 무슨 회사냐며 그냥 활동하라고 했다. 그래도 난 이미 마음을 정해버렸다. 딱 카메라 살 돈만 벌면 나온다였다. 딱 4개월 일을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때 회사 가는 것을 반대했던 친구가 그냥 더 다니지 그러냐고 했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을 생각하며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나 보다. 그래도 난 과감히 관뒀다. 그렇게 카메라를 사면서 내 삶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일을 하나 맞으면 돈이 조금씩 생기는데 그 돈을 모아서 꼭 장비를 샀다. 마이크, 삼각대, 렌즈, 테이프.... 생활비는 정말 필요한 것만 쪼게서 살았다. 그러다 일도 배우고 돈도 벌자 하면서 방송국에 들어갔다. 운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통장에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오니 당황스러웠다. 돈 쓰는 규모도 커졌다.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서 계속 일할 것도 아니고 잠시 할 건데 돈을 이런식으로 쓰다간 내 생활이 바뀔 것 같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돈이 아니면 안쓰고 다시 저축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방송국 나오면서 산 것이 편집장비, 랩터... 캡쳐카드만 120만원은 족히 했던 것 같다. 이래 저래 금쪽 같이 장만한 편집장비 한 250만원은 넘었던 듯 하다. 정말 금쪽 같이 다뤘다. 바닥에는 한번도 놓지 않고 항상 책상 위에 모셔 놓고 작업했다. 그 주변은 항상 먼지도 털어주고 닦아주고...지금 생각해 보니 유치하다. 바이러스라도 먹을까 인터넷은 물리지도 않고 불편해도 플로피 디스켓 사다 이리 저리 돌리면서 썼다. 왜 그렇지 않나 아무리 후진 것이라도 자기가 선택해서 산 것은 그 분야에서는 최고 같은 생각이 들고 귀하고 귀한 느낌. 내게 장비들은 다 그렇다. 쪼게고 쪼게서 모은 돈으로 장비를 하나둘 산 나로서는 하나 하나가 최고다. 무엇이든 가격대 성능비 최고다. 남들은 그것이 뭐 어쨌다 해도 난 그것이 최고다. 그런데 그 금쪽 같은 컴이 이제는 한물간 컴이 되었다. 아니 랩터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는 캡처를 하는데 필요한 카드가 10만원대이다. 그럼 이제 새로 싼 값에 더 좋은 사양으로 편집장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서글프다. 컴 봐주시는 분이 어제 겨우 컴을 차선책으로 고치시고는 막 쓰는 최근에 얻은 컴을 보시면서 그게 더 좋은 사양이란다. 랩터를 중심으로 편집장비를 사고한 나로서는 서글프다. 마치 그녀석이 한물간 것이 내가 한물간 것 같아 서글프다. 정말 별스럽게 세월이 느껴지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이제 새로운 편집장비를 위해서 통장에 돈을 모으기 시작해야겠다. 아이고...이 끝 없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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