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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 라디카

라디카씨가 어제 출국했다.

14년 만에 네팔에 돌아가는 것이다.

기분이 어떨까?

2살때 놓고온 아들을 16살이 되서야 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비행기에 올라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참 궁금하다.

 

나는 좀 철이 덜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여전히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인지도 모른다.

친구, 혹은 인간관계는 그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남녀관계던, 어떤 사회적으로 차이가 나는 관계이던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통을 한다. 그게 없으면 난 그만 그 관계가 지속되야 하는 이유를 모르고 힘들어 하다 어느순간 잊어서 날 보호하는 쪽으로 향하곤 했다.

 

이주작업을 하면서도 난 감독과 이주노동자의 관계보다는 친구, 동지의 관계이길 바랬다. 어느측면 그런 면도 있지만 가끔 현실적이지 못한 나에게 이주노동자들의 자신의 상황에 맞게 현실적인 결정을 내릴때는 찔끔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던지 조금씩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조건과 그것에 기반한 결정들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면 할 수록 시혜적인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참 싫었다. 그런 행동이 그동안 이주노동 운동안에서 주류를 차지했고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주체적이지 못한 운동에 대해 비판하며 일어났는데 난 조금씩 그런 모습이 되어간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더욱 강박적으로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관성은 무섭다. 가끔 이주노동자들은 나에게 시혜적인 자세를 취해주길 바랬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찔끔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 친구가 아니라 동지가 아니라 그저 퍼주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참 뭐랄까. 고갈된다는 느낌. 관계 안에서 고갈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 만큼 외로운 일이 있을까?

 

그럴때 라디카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내가 여성적 이슈 때문에 이주노동자들과 이견이 있어서 힘들어 할때 같이 의견을 나눴다. 여성이어서 그랬을까? 억압적인 사회를 경험해서 그랬을까? 언니와는 참 쉽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고 같이 욕(?)도 하면서 답답함을 풀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가끔은 버거웠던 분위기를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참 아쉬운 것은 언니의 삶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몇 단편적으로 담은 것은 있지만 그녀의 그 에너지를 담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언니의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은 이주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이주의 경험을 종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 특유의 에너지로 하나 하나 겪어낸 것을 보면 참 감동적일 때가 있다.  

 

지금 바램이 있다면

그녀가 본국에 돌아가 아들을 만나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정을 맘껏 나누고

그리고 그동안 그녀를 이래저래 힘들게 했던 엄마와도 단판을 짓고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그리고 긍정하길....

 

그리고 한 이년쯤 이후에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녀, 샤말, 비두, 나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친구였는지,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 지 등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마 그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계속된다2>가 되지 않을까?

 

언니, 그때까지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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