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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신문들

한겨레가 17주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 동안 매일마다 제2의 창간 어쩌구하는 걸 봐왔었는데, 어제 신문을 들추니 겹겹이 신문이 한사발 들어있고 묵직한 게, 아 오늘 얘네 기념일이구나, 싶었다.

 

누가 그랬더라, 홍세화씨가 그랬나, 한겨레 보는 사람들은 민감하다고. 조선/동아/중앙일보는 뭐라 지랄을 해도 독자들이 그러려니 하지만, 한겨레 보는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하고 신문을 끊기도 한다고. 그럴 것 같다. 나도 김규항씨 인터뷰 나왔을때, 참다못해 "이런 식이라면 보지 않는 게 낫겠다"라고 한겨레에 전화해서 성질을 부렸었다. 

하지만, 한달에 만이천원이 어디냐, 이 돈이라도 아끼기 위해 신문을 끊자, 하는 와중에도 끊지 못했던 건, 한겨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종이로 된 신문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책을 들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역시 신문이 최고다. 화장실에 앉아서 보는 신문의 맛은, 어제의 나를 배설하고, 오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물리적, 정신적, 최고의 카타르시스 행위인 것이다. 어린 규민도 이미 그것을 알고 화장실에 앉아있으면 옆에 있는 신문부터 허벅지 위에 펼쳐놓는다. (그러면서 만화를 찾는다.)

 

묵직한 17주년 기념 신문 앞에서 나도 한겨레를 나름 축하해주는 마음을 가졌다. 한겨레가 아니면 사실 볼 신문이 없다. 우리 엄마네서 가끔 보는 동아일보는 매번 제 일면부터 숨을 콱 틀어놓는다. 오늘은 또 뭐래더라, 미국 압박하는 게 무슨 유행인가,라는 게 그 신문 수석논설의 칼럼 제목이었다. 몇달 전, 고등학생 대상의 쉽게 설명하는 시사문제 어쩌구 하는 기사에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이야기하며, 그야말로 농산물 내주는 대신 핸드폰 더 많이 잘 팔아 자유주의 선진국 되는 훌륭한 경제협정,이란 논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소릴 하고 있길래, 이걸 보는 고등학생들은 정말 어떤 생각을 할까, 잠시 생각했다가 한숨이 땅이 꺼지도록 나오는 바람에 엄마네 구들장이 금 갔던 적이 있었다. 고대생들이 이건희 명예철학박사수여에 반대집회 했다고, 폭력이 어떻고 하는 건 또 어떻고...  아무튼, 한겨레는 17주년을 맞아 대단한 결심을 한 듯 보인다. 인쇄체도 바꾸고, 구성도 바꾸고, 로고도 바꿀 것이란다. 미래에는 우주로 휴가여행을 가고, 설겆이 청소 로봇이 집안일은 도맡고,하는 알 수 없는 기사가 들어있는 경제엔진 업그레이드 섹션 때문에 이런 결연한 한겨레의 의지가 좀 못미덥지만... 그래도 그간 재미있었던 한겨레만의 기사들을 생각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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