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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설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책꽂이앞을 서성거리다,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를 빼어들었다.
남편은 별로라고 했었지만, 나는 원래 김연수를 좋아해서인지,
이 여행책이 좋다.
그 책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겨우 이것뿐인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
나는 앙코르와트에서의 그 느낌을 무어라하면 좋을지....
골목 안에 박힌 음식점을 간신히 간신히 찾아가는 중.
엄마는, 내가 나가있을께,했다.
뭘 나와 다 찾았는데, 금방 갈테니까 그냥 앉아계셔,했지만,
몇 시간 만에 도착하게된 목적지를 앞에 두고
엄마가 앞에 나와 있으면 왠지 더 좋을 거 같다.
엄마가 날 기다렸다는..
엄마가 날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싶다는..
나도 엄마 보기를 기다렸다는..
나도 엄마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싶다는..
저 골목 모퉁이를 돌면 원하던 그 음식점 간판을 단 출입구가 바로 보일것이다,라고 점찍은 그 모퉁이.
그 모퉁이를 돌자마자, 과연 엄마가 서성이고 있다.
짧은 곱슬머리, 회색의.
목이 드러나보이는 모자달린 티셔츠(그러나 캐주얼분위기는 아니고, 점잖은 분위기의 후드티?).
그리고 몸뻬지만 헐렁해서 몸뻬인지 넓은 건지 헛갈리는 바지.
그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끼고.
내가 이 쪽 모퉁이를 돌지, 음식점 출입구를 가운데 두고 저끝 모퉁이를 돌지 몰라 이 모퉁이 저 모퉁이 양 쪽을 다 살피는 모양새. 몸은 내 쪽 모퉁이에 가깝게 두고 고개는 저 쪽 모퉁이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뒷통수를 먼저 봤다.
그리고 엄마가 날 봤다.
엄마의 그 짜증스러운 찡그린 얼굴.
흉내를 내보았지만, 안된다.
경이로울 지경이다. 어떻게 그렇게 좁게 미간을 붙일 수가 있을까.
그 표정이 싫어 엄마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주름살이 굳어 박히면 밉상이라고. 얼굴 좀 펴.
내가 늦게 온 게 짜증스러워서 저러는 걸까....
=======
엄마 뒤통수를 보면서 그 표정을 상상하였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엄마의 뒤통수를 뒷자리에 앉아 보면서.
지금 또 그 좁은 미간을 하고 있지 않을까....
=======
며칠 동안 전화를 걸면, 발신자 번호가 찍히는 아빠의 집 전화, 반드시 아빠가 받았다.
엄마는?하지 않아도 옆에서 바꾸라고 하던 엄마의 인기척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엄마의 그게 싫어.
그러지 않으면 안돼?
왜그래?
설겆이를 하며 엄마와 대화편 시나리도를 열 편도 넘게 쓴다.
오늘밤,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일 서울 오신대?하고 물었더니, 드디어 오늘, 엄마가 전화를 건네달랜다, 옆에서.
엄마, 엄마, 내가 미안해, 사실은 내가 미안해.
라고 말할 뻔 했다.
그랬으면 눈물이 덜컥 나왔을 것이다.
그랬으면 난 챙피할 것이다.
엄마 앞에서 엄마 때문에 우는 것이 난 왠지 챙피하다.
엄마,엄마, 큰엄마가 주신 동부 말야, 그거 아빠네 냉동실에 그냥 두고 왔거든.
그거 가져오느라 고생하지 말고 거기서 그냥 드시라고해.
응.응.그래.나도너한테 무슨 할 말이 있었는데..그래.응.그거였나보다,나도. 냉동실에 동부보고.
어젯밤 첫 눈이 내렸어.
너도 봤니?
까만 밤에 흰 눈은 너무 추웠어.
너도 추웠지?
친구가 딸을 낳았어.
친구는 하나도 닮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친구가 안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인지
전혀 알아 볼 수 없었을거라, 그 아가는 엄청 낯설었는데,
그런데도 말이야,
그 장면은 몹시도 뭉클하였지.
무언가가 뭉클,하였어.
가슴안에서.
아아, 그것은 철딱서니 없는 나의 인생 전반, 그것의 한 상징이 보내오는 메시지였어. 그 전반이 끝났다고.
이제 확실한 후반이라고.
그녀, 나의 철딱서니 없던 스물의 상징.
너의 둘째 출산을 축하한다.
우리의 철딱서니 없던 스물도 이젠 영원히 안녕.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선언하는 거지. 공식적으로 뭐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내 내면에다가. 나는 이제부터 투잡이라고. 학교 일도 하고, 소설도 쓰고."
"어젯저녁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한 묘사 잠깐 ...............) 내가 그 때 뒤돌아 있었잖아, 책꽂이 쪽 보면서. 그 때 내가 책들 보고 있었어. 필사할 책을 고르느라고. 그리고 당신에게 이 심정을 말해주고 싶었는데, 규민이가 있어서 말 못했지. 규민이가 또 우리끼리만 얘기한다고 할까봐. 그래서 참고 참다가 지금 얘기하는거야."
내면 선언에 이어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어 남편의 대답.
"어... 어젯밤 꿈에 말이야, 당신이 옆으로 앉아가지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가지고는 내 쪽으로 보지는 않고 뭔가를 손으로 하고 있었던가, 아무튼 나한테 눈길도 안 주고 하던 일에만 눈을 주면서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말이야, 됐어. 그러더라구. 그래서 내가, 어디? 하면서 생각해봤는데, 신춘문예도 다 지났고, 작가의 상도 지났고, 다 지났는데, 어디 됐다는 걸까, 하면서 중앙일보? 중앙일보 문예상이 지금 때거든. 그거 상금도 많아. 그래서 내가 중앙일보?하고 물었더니, 당신이 여전히 내 쪽은 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엉, 그러대. 그래서 내가 상금도 꽤 받았겠네?했더니, 여전히 심드렁하게 그럴걸,그러대. 그런 꿈을 꿨어, 어제."
10년 한솥밥을 먹었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걸까.
난 글 쓰겠다,의 ㄱ 도 말 한 적 없었다.
(물론 글 써서 좋겠다, 나도 하고 싶은데, 뭐 이런 타령 나부랭이는 늘상 했지만.)
"아, 오늘 아침 되기 전에 간밤에 내 영혼이 당신에게 말해주었나!"
아무튼 이로써, 나는 주변인에게 또 선언합니다. 빈말이 되지 않도록.
소설가가 되겠다는 얘기는, 쪽팔려서 아니고요-이 나이에 무슨... 이란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남편은 그게 무슨 나이랑 상관있냐고 할 수 있다고 자기는 나이 생각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용기를 주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냥 무작정 쓰고 싶어요.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하고 싶은 것입니다.
김연수가 <여행할 권리>란 책을 냈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세살 아이를 데리고 라오스를 간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또 친구 하나는 곧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또 친구 하나는 여행기 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나한텐 오즈의 마법사의 에머랄드시 쯤 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가려면 먼저 미친듯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날 마녀 위로 떨어뜨려주어야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어찌 된게 손목이 저리고 다리가 아퍼,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건 사양이다.
샘많고 질투많은 내가 무지 부러워 배아퍼마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느날 갑자기, 여기는 보스턴입니다,란 글을 써오는 작자들이었다.
어느날 김연수도 영국의 이층버스 운운하는 글을 써왔고, 황석영은 빠리가 어쩌구(북한에도 다녀온 황석영씨야....)하고, 그리고 공선옥은 무슨 낭송회라고 어디라고 했더라... 심지어(?) 김영하는......
나는 배 아퍼죽는 것이다.
남미문학포럼에 참가 차 아르헨티나에서 반년 쯤 살아야만 되지는 않을까,란 생각이, 남편이 처음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머리 한 쪽에서 삐죽하고 나왔었다고 한다면 나도 섹스 앤 더 시티를 욕할 것도 아니다(옛날에 블로그에서 욕한 적 있었음)(비디오 씨리즈 줄창 빌려보다가).
그런데 가만.
친구의 곧 여행계획이란 문자를 보며, 회오리바람이 불어야하는데, 불을까도 사실 무서워..를 웅얼거리고 있다가... 그런데 가만..
내가 지금 막 여행에 돌아온 차 아니었던가.
앉아있는 식탁 의자 5시 방향, 2미터 떨어진 곳에 방수 잠바와 싸파리 모자가 펼쳐져 널부러져있고, 그 옆 등산배낭이 각각의 지퍼가 3분의2 쯤 벌여진 채 있다. 안의 물건은 이미 냄새를 풍기려하고 있지만 정작 꺼내어지려면 그 상태로 최소 이틀은 더 기다려야하는 이 장면은, 바로 두어시간 전에 동서울 터미널 착 고속버스에서 물먹은 솜 같은 두뇌를 깨워 일으켰던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부여에서 막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이 여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내가 그토록 배아퍼마지않았던, 내 돈으로 간 여행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떠났던...으흐.
우리반 아이들 하고 6학년 아이들하고 6월 첫 주, 공주와 부여에 다녀왔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백제 유적지를 가본 것이다.
솔직히 나는 공주와 부여에 처음이었다. 엄마 아빠 둘다가 공주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예산 출신이면서.
이번 여행에서는 역사 유적지를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그게 무엇인지를 느꼈다는 것.
예전엔 일부러 상상을 했었어야했던 것이, 첫날 공주박물관에 들어가 무령왕릉 속 유물을 둘러보다가, 무령왕의 왕비가 평소 몸에 지니고 다녔었다는 엄지 손톱만한 동자상을 보는데, 비단 치맛자락 속 어딘가에서 저 동자상을 만지작거렸을 왕비의 손가락이 문득 떠오르며 애잔한 느낌이 스쳐가 이상하였다. 혹 내가 전생에 저 왕비?
박물관에서 그러하였던 것이, 실제로 무령왕릉을 가보니 더 하였다. 입구조차 막혀있고 그저 둥그런 봉분의 외형을 볼 뿐인데 마음이 쓸쓸하였다. 나이를 먹은 걸까.
부여에서 그 애잔하고 쓸쓸한 느낌은 더 했다. 백마강과 낙화암. 말로만 들었던 삼천궁녀가 꽃처럼 떨어졌던 낙화암. 그 위에 서니, 그 여자들의 진분홍 치마자락과 눈물과 가늘게 떨리는 눈썹과 손끝이 바람 속에 울리는 듯 하다. 애잔하고 애잔하도다. 내가 시인이라면 그여인들을 위하여 시를 한 편 올리겠건만.
아무래도 패망한 나라의 애절한 기운이 서려있는가보다. 그러나 그 기운이 쓸쓸할지언정 아름다웠다.
백제는 실로 눈 높은 예술수준을 갖고 있어서 그런가. 모든 쓸쓸한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나도 인생의 가을색이어서 그런가.
정림사라는 절터에 남아있는 백제의 석탑이 하나 있는데,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고 한다. 정림사라는 절은 죄다 깡그리 타버려서 남아있는 것 하나 없는데 이것만 돌로 만들어져 남아있다. 사진으로 보면 익숙한 석탑이다. 뭐라 더 표현할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는 그저 익숙한, 석탑.
그걸 가까이서 보니, 돌을 고르고 평평하게 깎는 것으로도 모자라 끝자락을 처마끝처럼 살짝 구부려 올린 백제 예술인들이 까탈스럽다.
그런데 한 바퀴 돌아보고, 이 쪽에 서서 보고, 저 쪽에 서서 보는데, 건축물에 있어 당연한 명제겠지만, 너무나 균형적이다. 층마다 각각 정확한 비례로 줄어들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그 시절에 돌로 저토록 정확한 비율을 구사하며 깎아 얹었다니.
정림사지 박물관에 들어가 본 오층석탑의 설명의 그림에는,
..쓰려고 하니까 너무 어렵다.
찍어온 걸 올려야겠다.
나는 가서 사진 하나도 안 찍고, 이거 한 장 찍었다.
그 탑이 실제로 얼마나 아름다운 기하학적 균형을 갖추고 있는가. 이걸 돌로 만들었다니, 그리스 신전이 따로 없다. 건축물도 감동을 준다고 하는 걸 알겠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무르익은 5학년이 되면, 5학년이라는 특성; 동심과 동심을 벗어남의 조화에 맞는 과목으로 그리스를 배운다. 그리스에서는 신과 인간, 예술과 이성이 (5학년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그리스 기하학을 함께 배우는데. 그리스도 그리스지만, 백제의 기하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닌데, 났다.
암튼....
백제여행기를 이리하여 쓴다.
나는 내가 보고 싶던 평화를 다 보았네.
사슴 한 마리, 목초지와 시냇물,
눈을 감으면,
사슴은 내 팔 안에 잠들고,
사냥꾼은 저 먼 곳,
자기 아이들 곁에 잠드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네> 부분
나는 푸른 하늘을 만든 모든 하늘빛 입자들을 사랑한다. 그 하늘빛 속에서 말(馬)들은 유영하고. 나는 우리 어머니의 작은 것들, 가령 어머니가 닭장에 가려고 아침 첫 현관문을 열 때 그분 옷에서 풍기던 커피의 향기를 사랑한다. 나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들판을 사랑하고, 우리 감옥 간수의 아이들을 사랑하며, 저 멀리 가판에 진열된 잡지도 사랑한다. 나는 우리에겐 없는 그 장소에 대해 스무편의 풍자적인 시를 썼다. 나의 자유란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작은 감옥을 더 늘려 내 노래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문은 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서는 걸어 나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불행하기도 그곳은 낙원이었다>
바닷가에 한 소녀가 있고,
그 소녀에겐 가족이 있고,
그 가족에겐 집이 있고,
그 집엔 창문 두개와 현관문 하나.
바다에는 게임을 시작한 군함이 있고,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에게 조준하여,
넷, 다섯, 일곱, 모래 위에 투하하네.
소녀는 연기의 가호로 살아남네,
어떤 천상의 가호가 소려는 구하러 온 듯이.
소녀는 비명을 질렀네, 아빠, 아빠, 집으로 가요, 바다엔 안돼요.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네.
그는 거기 부재의 고통 속에 누눠있네,
부재의 고통 속 그림자에 휩싸인 채.
소녀의 손바닥엔 피가, 하늘의 구름에도 피가,
소녀의 비명은 저 멀리, 저 높이 바닷가로 날아가네.
소녀는 막막한 밤에도 비명을 지르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고,
폭격기가 돌아와 두개의 창문과 현관문 하나짜리 집을 부수어
소녀는 쓸모없어진 이 흉보를 전해줄 영원한 비명이 되었네.
-<소녀/비명>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여성적인 날이,
메타포는 투명하고 존재는 꽉 찬.
다이아몬드와 눈부시게 흐르는 성가 행렬,
가벼운 그림자와 더불어.
아무도 느끼지 못하리라, 자살이나 작별의 욕망을.
.............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여성적인 날이,
율동 속에 노래하듯, 인사와 악보 속에 푸르게 빛나듯.
과거 밖에서는 모든 게 여성적이 되리니.
바위의 가슴에서 물이 플러내리리.
먼지도, 가뭄도, 패배도 없이.
-<또다른 날은 올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이어줄 공동체의 끈은 바로 이런 시적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종결짓고 대지에 뿔리내리기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보다 가족과 친구, 나무와 바람, 가축과 논밭은 같은 민중들의 일상의 평화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기억하려는 시적 저항이 우선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만약 견고한 서구 제국주의가 무너진다면 결국 이런 일상의 작은 평화에 대한 염원으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
다르위시는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자유와 독립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묶어줄 공통의 끈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떨어져나가면 누구나 쉽게 뿌리뽑히기 때문이다. 한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광풍 앞에서 서로를 단단히 묶어줄 끈은 바로 자기가 태어난 땅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려는 저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향수라 부르든, 애국심이라 부르든, 혹은 민족주의라 부르든 추상적인 명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류가 처음부터 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 나아가 집요하게 나누고, 가두고, 분열시키려는 힘에 온 몸을 다 바쳐 저항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아름다움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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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시란 그렇군요.
처음으로 깨달은 것 같아요.
일요일에 술먹고 싸웠다.
내가 싸웠다는 것은 아니고 같이 술먹던 부부가 싸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와 내 남편이 싸웠다는 것은 아니다.
잠깐만 당신 얘기 좀 해, 하고 둘은 따로 나가더니 약 십오분 후, 남자가 들어와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유감스럽지만 여기서 파해야겠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곧이어 여자는 눈물로 번들칠한 얼굴로 들어와 남자에게 단발마같은 싸늘한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무랄 것도 없었다.
저것과 아주 흡사한 풍경을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이 연출, 출현하였던가.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내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 가슴이 얼마나 불칠, 불난리질 하고 있을것인가.
가엾기도 하다. 그러나, 하는 수 있으랴.
부부란 모름지기 싸우며 정드는, 혹은 깊어지는 사이인 것을.
싸우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다.
싸우라, 다만 잘 화해하라.
문제는 다음이었다.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넣은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친 남자는 다섯살 먹은 딸래미를 다른 한 쪽 어깨에 기대게끔 안으며 신발에 발을 꾸겨넣었다. 기분 드러운 중일 것이다. 안다. 그 기분. 그런데 기분 더럽다고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 그 남자는 나의 남편에게 다짜고짜, 당신 그러면 안돼,하였다.
뭘?
너(너?) 아까 그랬잖아.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그런 말 하면 되는거야?
어랍쇼.. 그런데 당황은 내가 하고, 남편은 태연하다.
그래, 그래, 미안해, 맞아맞아, 그 남자의 어깨까지 토닥토닥 다독인다.
당신, 그러지마, 내가 정신 말짱할 때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당신. 그리고 이거 치워(자기 어깨위 남편 손을 손가락질한다.)
이 남자, 심했다. 열등의식이 심한 건가. 피해의식이 심한 건가.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소니 다짜고짜 이 무슨 시비인가.
그것도 애들 옆에서.
나는 당황하고 황당하고 불쾌하여 입에 거품을 물었다.
구르르륵구르르륵..
내 입의 거품을 치우며 남편은 손짓한다. 그만 말하고 보내자는 손짓.
남자는 아이를 안고 나간다.
나가면서도, 너, 너, 너를 그만두지 않는다.
남자의 아내는 그리고는 집을 나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간 남자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니 책임이야,를 떠들어댔다.
이번에는 우리가 싸웠다.
남편은 이 드러운 똥바가지를 뒤집어 썼는데, 위로하기는 커녕 왜 화를 내냐고 내게 화를 냈고,
나는 내 기분도 더러운 판인데다, 당신을 위로할 마음이 백배하나, 표현을 잘 못 했을 뿐이며, 내가 화난 대상은 그 남자인데 그걸 이해 못 하냐고 화를 냈다.
아... 가슴에 불칠, 불난리질이 일어나고 있다.
이 무슨 짓인가.
내 얘길 저렇게도 못 알아먹는 저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싸움은 감정의 광란이요, 심혼의 피폐요, 인생의 낙오이니, 누가 싸움의 효용을 얘기했던가.
이놈의 악다구질은 지긋지긋하다.
여자는 월요일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고나니 그동안 맺혀있었던 게 어느 정도 해소되기까지 해서 좋았다고 까지 했다고 한다.
얼씨구..
그리고 오늘(3일째다).
나는 말했다.
당신 말 다 알겠어. 그리고 백분 이해해. 그렇지만 나의 심정은 이렇다구............................
남편은 말했다.
결국 내가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당사자이잖아. 그런데 당신이 그걸 알아주기 보다는 당신 얘길 자꾸 하는 게 서글펐어. 당신도 그랬잖아. 당신이 힘든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논리적으로 그걸 이해하면서,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잖아. 그럴 때는 오직, 단지, 그러니까, 그야말로, 바로, 가슴으로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만이 필요한거야.
그 때 나는 알았다.
그래, 그것이다.
넌 그렇니? 난 이래.라는 설명이 아니라, 지금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이의 가슴을, 그야말로 그 가슴을 같이 느끼고 위로하는 것.
바로 그것이 늘, 내가, 당신이, 우리가, 인간이 갈구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
설명, 이해, 의사소통이 아니라, 그 앞단계, 가슴으로서의 공감.
(그 후에 설명, 이해, 의사소통이란 의식적, 논리적, 사회적, 세련된 방식이 있는 것일테다.)
남편은 말했다.
난 사실 처음부터 너무나 당황스럽고, 놀랐고, 화가 났어.
그런데 단지 규민이와 쫑쫑이(그집 딸, 가명)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때문에, 만약 여기서 내가 내 감정대로 행동하면 이 아이들이 크게 상처받거나 충격받을 수도 있다는 염려때문에, 나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누르고 모든 걸 모래로 덮듯 덮어버리려 했던 거야. 어른인 내가 가져가겠다고. 어른들끼리의 문제니 아이들이 없는 어른끼리 가져가야한다고. 이건 사실 크게 칭찬받아야할 용기있는 행동 아니야?
난 남편의 그 의연한 태도에 남편의 감정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했던 것이었다.
듣고보니 그렇다.
그것은 과연 높이 칭찬받아야 마땅할 의연하고 용기있고 대단하고 멋진 행동이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당신 두애들 데리고 잠깐 비켜줘,하고 대판 싸우는 게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인제, 우리, 곰탕 같은 거 먹으면 안된다요.
왜애?
몰라? 광우병 걸린 소고기 때문에 먹으면 안돼.
맞어. 먹으면 안돼. 다 안돼. 밖에서 사먹는 건 다 안돼.
어떻게 너 인제? 닭꼬치도 떡꼬치도 다 먹으면 안된대. 알아? 젤리도 먹으면 안된대.
왜애?
젤리 만드는 것 중에 소고기로 만드는 거 있대.
그래, 이제 초코파이도 먹으면 안된대.
다행이다, 난 초코파이 싫어하는데. 난 몽쉘통통.
초코파이도 먹으면 안되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안돼.
그래서 난 이제부터 집에서만 아이스크림 먹기로 했어. 엄마가 한살림에서 시켜준대.
아잇, 이명박대통령 때문에 진짜.
이명박대통령은 왜 그래요?
그럼 우리 이제부터 풍물갈 때 다른 길로 돌아가야겠다. 거기로 가면 다 먹고 싶잖아.
이명박이 아니라 이맹박이야.
그게 무슨 대통령이야. 먹을 거 다 못 먹게하고.
그러면 자기는 뭘 먹을까?
아이씨, 이맹박대통령 때문에 정말.
대통령이 뭐 그래, 국민을 잘 살게 해줘야되는데, 이렇게 다 못 먹게 하니.
이, 맹빡이야.
(여기서 잠시 밥만 먹던 내가 입을 엶; 얘들아, 대통령도 그만하라고 하는 방법이 있다.)
(일제히 내게로 고개 돌림) 네? 뭐요?뭐요?
너희들 국회의원 알지?
(여기저기서) 네.네.
국회의원의 삼분의 이가 대통령 그만두라고 하면 돼.
오. 그러면 우리동네 문*진 국회의원을 찾아가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뭔데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서 나왔는데, 지금 한나라당이 국회의원의 거의 반이거든.
아이씨....
거의 반이라고 했죠, 선생님?
그러니까 십분의 사쯤? 백분의 사십구?
그럼 할 수도 있겠네.
동네의 국회의원을 다 찾아가는거야..
우리반 정치토론 결론.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당사자 규민이도 그렇고 몹시 떨리고 떨렸습니다.
사실 규민이는 이 빠지는 일=진짜 큰 언니가 되는 일,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언제 이 빠지냐고 종종 묻고 굳건히 박혀있는 이를 흔들린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막상 진짜로 이가 흔들리고 그리고 드디어 뺄 때가 되니, 몸을 뒤로 빼더군요.
첫니인 만큼 엄마가 빼주겠다고 나서자, 당사자인 규민이도 용기를 내어 입을 벌리는데, 남편은 3미터 쯤 뒤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를 빽 지릅니다(인성이가 보면 무식하다 했겠습니다.). "아~~ 하지마, 하지마, 선생님한테 해달라고 해, 선생님한테 해달라고 해."
아무튼 작은 보석같은 이가 빠졌습니다. 규민이는 그것을 보석상자에 넣었구요. (제대로 지붕만 있으면 제대로 올려보고도 싶었는데..) 주위어른들은 케익을 마련하고 촛불을 켜서 축하해주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내심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는가 서운합니다. 영화처럼 규민이가 엄마 나 책 읽어줘,하고 걸어오는 장면 있고 컷, 하더니 그 다음엔 스무살된 여인이 긴 머리 휘날리며 고개를 돌리고 엄마,하면서 웃고 있는 장면 나올까 겁납니다.
유치를 뺀다는 것을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성장의 큰 획으로 본답니다. 저 옛날, 아가가 아장아장 걸으며 '순이도 밥 먹는대.'하고 입을 딱 벌리고, '순이도 학교갈래.'하고 가방을 들고 나서다가, '나도 밥 먹을래, 나도 학교 갈래,'하며 '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도 아이에게는 혁명같은 일이라고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론에서는 인생을 7년 주기로 나눈다고 하는데(이런 이론은 이곳저곳에서 들어본 것 같아요. 전에 돌멩이가 국선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고 하던데.. 실제로 제 인생을 돌이켜봐도 7년 비스꾸리한 주기로 전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첫 7년, 0세부터 7세까지는 몸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업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몸 안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스스로 내보내고 그만한 단단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유치를 갈고 영구치를 내는 일을, 아이가 몸을 만드는 과업을 어느 정도 완성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때부터 아이는 지적 작업을 시작해도 가능하다고 해석합니다. 그 전에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하는 지적 작업은 아이의 몸을 만드는 과업에 방해가 되고, 결국 충실한 몸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합니다. (아이에게 현대생활방식이 주는 여러가지 예민한 요소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아이의 유치가는 시기가 무지 빨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에 대한 연구는 또 다르게 진행돼야겠지요.)
..등의 이야기를 발도르프 교육론을 공부하면서 들은 풍월인데, 사실 7년 주기에서도 느꼈듯이, 굳이 발도르프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곰곰히 살펴보면 무엇이든 적절한 시기와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엉치 밑 쯤에서 갖고 있던 차에 발도르프 교육론이란 것이 맞장구를 쳐주는 것 같았습니다.
발도르프 교육론에서의 핵심은 성장 단계에 맞춘 교육인데, 이때 성장이란 인간 보편적 성장과 개개인 특별한 성장을 다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현대 교육이 인간과 인생을 망치고 있는 바로 그 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쟁, 혹은 경쟁력이 핵심인 현대 교육에서는 남들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빨리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성장이니 개개인의 성장이니 하는 것은????? 실종?????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인생 전반을 보아서) 그 시기에 맞는 것을 결국 받아들이고 느끼고 깨닫게 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내 속에서 아직 내 것이 아닌 것을 주변에서 던져주어 받게 되면 그것은 내 겉의 헛개비로만 남습니다. 인생은 결국 살다살다보며 내내 그것들을 풀어내고 품어내고 치루는 과정 같습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을 수업시간에 만나면서, 저는 종종 이런 느낌을 받는답니다. "아, 이 아이들은 지금 그들의 인생 전면을 가지고 여기에 있구나."
학교에 다녔던 그 무수한 나날들, 그 시절에 나도 내 인생 전면을 가지고 순간순간을 살았다면...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무지 부럽습니다.
헤..결국 우리 학교 자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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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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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ㅜㅜ 1년만이네요ㅜ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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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는 백년도 더 지난 것같아요. 너무나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부가 정보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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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도 안닮은 우리딸. 다행일까?딸이란 걸 알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내 힘들었던, 네 말대로 하자면 철딱서니 없던 이십대가 생각나서. 이 아이도 나 같을까봐.
이젠 나도 딸이 있어 행복하다. 나를 하나도 안닮은 내 딸도 또 철딱서니 없는 십대, 혹은 이십대를 보내겠지만 최대한 그 애 옆에 있어줄 거야.
건 그렇고..
일부러 만들 생각은 없지만.. 생기면 낳는다, 세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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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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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꼭 소설써서 보여줘야해. 기다리고 있다고.가까이 보니까 오히려 아쉽네.... 내 마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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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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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핑님, 하루님, 저도 너무나 반가워요.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종종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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