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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다 난 움찔했다.
근 10년만에 본 얼굴이지만, 첫눈에 그 아저씨를 알아봤는데,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았던 것이 아니고, 그 아저씨가 워낙에 얼굴 팔릴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
근 10년 전 즈음에 신촌의 술집 우드스탁 토요일밤.
11시도 되기 전에 그 아저씨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사이사이를 누비며 춤을 추었다. 전자기타소리가 바쁜 곡을 배경으로 전자기타줄을 바쁘게 흔드는 흉내를 내는 손가락짓과 이 다리 저다리 번갈아 구십도 각도로 들어올리느라 껑충껑충 뛰고 그에 맞춰 고개도 산란하게 좌우로 흔들며.. 얼추 쉰 쯤 되지 않았을까,당시에.
그걸 매주마다 몇 년을 보았으니 그 얼굴이 잊히나.
가끔 안녕하세요.도 했었고, 맥주잔도 부딪혔던 것 같은데(술김에), 그렇다고 10년 쯤 지난 지금 태연하게 안녕하세요,를 할 수는 없는 사이다. 나는 모르는 척 모드로 돌아서려는데, 내가 움찔하는 것을 정통으로 목격한 이 아저씨는 니가 날 안다면 나도 널 알텐데, 넌 누구냐,는 듯 내가 얼굴을 돌리려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하나.. 우드스탁에서 뵈었잖아요... 요즘도 다니세요?
펭귄 아줌마도 있었다.
그녀도 역시 우드스탁에 매주 홀연히 술 먹으러 와서는 술김이 오르면 발그레한 얼굴로 스르르 일어나, 땅딸한 키 볼록한 배와 어울리는 짧은 스텝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제자리로 빼었다하는 춤을 추었다. 얼추 마흔중반 쯤 되지 않았을까,했다.
그 아줌마와는 안녕하세요,를 가끔 했던가. 맥주잔도 부딪혔던가...
난 갑자기 머리 속에서 그 계산을 하였다. 아줌만 별명도 펭귄이었고, 난 불쌍하다고 느꼈었다.
소설을 물텅 읽은 것이 얼마만.
어쩌자고 나는 우리 조상의 과학살이니, 행복한 수학교실이니, 물방울이 구름이 되어요니,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도감이니 하는 책들만 보고 살았던가 말이다.
폐 속에 무언가 달라진 공기를 가지고 일어나 책을 빌리고 목도리를 친친 감고 나오며 이 느낌을 블로그에 적어야해,하고 컴퓨터실에 앉았는데, 무슨 느낌인가, 그것은.
아편을 진탕 물어댄 느낌.
그 속에 남편은 살고있구나, 문득 진하게 질투가 느껴짐.
그 남자는 내가 자기를 질투하는 것을 알고있다.
아마 그 말초적 충족감으로 그는 글이 안 써진다한들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천박한 인간이나 하는 생각인가..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인간이 있다.
소설가와 소설가가 아닌 자들.
아, 세상의 소설가들은 얼마나 잘났을까.
세상의 소설가가 아닌 자들의 질투를 받으며, 손끝을 아릿아릿하게 하는 말초적 충족감에 오늘도 어디서 나른한 척 담배를 물고 있겠지.
자기의 옆얼굴을 의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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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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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 아저씨와 아줌마는 저도 뵌 적이 있을듯 하네요 -_-;그러고보니... 오래전에 저도, 신촌 빽스테이지에서 서로 말없이 무아지경에
빠져 헤드뱅잉 함께 하던 여자를 바깥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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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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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드스탁이 있는가?? 건 그렇구 넌 도대체 어떻게 사니, 지현아. 생활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은데.. 요즘은 나도 사적으로 공적으로 정신없어 전화도 못했다..부가 정보
KNN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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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아저씨? 펭귄 아줌마는 언젠가 나와 함께 셋이 춤추던 그 아줌마 아닌가? 나 그 아줌마랑 대화한 적도 있어. 꽤 서글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나중에 해줄께.부가 정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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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뱅잉 함께 하던 사람과 바깥에서 마주쳤다니 코메디 영화같군요.애엄마 바쁜거야 새삼.. 니 생일 가까워오는구나, 유영아.
그래, 맞아, 그 아줌마랑 우리가 춤 한 번 같이 췄던 적도 있구나... 얘기도 몇 번 나누었던 것 같아. 기억이 나. 평범한 아줌마길 바랬는데 서글픈 비하인드스토리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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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n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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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이 바로 올라오니 신기한데. 그 아줌마가 무려 7개국어를 한대. 게다가 잘 보면 젊을 때 예뻤을거 같지 않아? 신촌에 그 여자를 모르는 남자가 없었대. 꽤 유명한 의상숍 매니저였다는데. 여하튼 굴곡없는 인생 있겠냐만은. 가끔은 그저 여자가 혼자 마흔 줄 넘어 우드스탁 가는 것 자체가 불쌍한 것으로 비춰지는 걸까, 싶기도 하고..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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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우드스탁... 저도 언젠가 옷깃을 스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 우드스탁보다는 케자르에 자주 갔었는데(시저스라고 불러야하나.. ^^)
케자르에 자리가 없으면 우드스탁에서....
그런데 작년에 여성영화제 갔었는데 판자집인가....하는 집 주인이 케자르 언니더라구요. (닮은 사람인가?) 아무튼 인연이 이렇게 저렇게 이어지는 게 너무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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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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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얼굴은 인상만 기억날 뿐 젊었을 때 이뻤을 것 같았는지까지는 잘...의상숍메니저란 직업은 뭐야? 직업얘기는 못 들었는데, 교회집사인가..뭐 그런 얘기는 들었었던 것 같아. 7개국어라니 대단한데...
씨저스도 들어본 이름 같아요. 어디 있었던 거였죠? 판자집은 이면수 나오는 판자집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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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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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수가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잠깐 앉았다가 나와서요. 여성영화제 뒷풀이를 많이 하더라구요. 올해에 여성영화제 하면 같이 볼까요? ^^부가 정보
knn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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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샤넬 샵 매니저 같은 거 있잖아..꽤 돈있는 분들을 상대하는 뭐 그런. 교회집사가 된것인가. 같은 사람 맞겠지? 하긴 요즘은 다들 교회집사하더라만..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