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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인화하였다.
그 사진들 속엔, 장장 작년 이 맘때의 것들도 들어있었다.
일년치 것들을 모았으니 그만한 돈이 나올만도 하다.
산더미처럼 사진들은 쌓여있고, 그것들을 헤집어 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웠다.
작년의 규민과 올해의 규민에겐 한끗차이라고 할 수 없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과 땅 만큼의 정서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서 자료 화면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집 스캐너는 꽁꽁 싸여 뒷베란다라는 곳에 있다. 몇개월 동안 정말 필요한가 고심하고, 그 후 몇개월 동안 돈을 맞추고, 돈을 맞추기 위해 다른 몇몇 가지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하면서 구입한 복합기는 한동안 반짝하였다가 잭에 이상이 생긴 이후 완전 무용지물이 되어 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최첨단의 현대 테크놀로지는 싫다. 최첨단의 현대테크놀로지는 대개 다기능 다버튼인데, 그 중 얍쌍한 선 하나에만 이상이 생겨도, 오세아니아주의 키위새가 토탈 몇마리의 지렁이를 먹었는지 리얼타임으로 알려줄 것 같던 것들이 당장 올스톱되는 것이다. 플레이, 스톱, 리와인드, 훼스트호워드, 포즈, 이 다섯 단추가 전부인 기계가 훨씬 좋다. 그런 것들은 땅바닥에 몇 번 패대기쳐져도 그냥 어찌어찌 굴러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에후엠투를 고집하는 것이다.
얼마동안 얄따란 디지탈카메라에 눈을 돌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직 이 에후엠투가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니콘에서도 이제 에후엠투는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얘가 늙어죽으면 세상의 한 시대가 정말 최후를 맞는 것 같아 슬플 것이다.
이번에 현상, 인화한 사진들 중에는 규민이 찍은 내 사진이 몇 장있다.
이 사진들이 걸작이다.
엄마가 자기를 찍고 난 후, 자기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내가 들었던 카메라를 자기가 들고 그냥 그대로 셔터를 누른 것인데, 근데 그것들이 걸작인 것이다.
남편은 그 중의 하나를 보고, "어, 이거 영화 포스터 같아."하였다.
역시 사진을 찍을 때는 마음을 비워야한다.
사진이든 뭐든 마음을 비워야한다.
지금 규민은 아빠와 '너 가져'놀이를 하고 있는 중.
보라색 리본 끈 하나를 두고, 서로서로에게 '너 가져'라고 하는, 규민이 만든 놀이인데, 그때마다 새로운 이유를 대어야한다. 예를 들면,
"우리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이런 거 보면 다 물어뜯거든, 그러니까 너 가져."
이렇게..
규민이 벼라별 이유를 다 만들어내며, 능구렁이처럼...
우리 딸내미, 정말 많이 컸다.
다음에 도서관에 갈 때, 규민이 찍은 내 사진, 몇 장 스캔해서 올리겠음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런데, 토요일 아침, 우연히 찾았다.
토요일 밤, 남은 포도주와, 첫맛은 산뜻하나 뒷맛은 고린내가 나는 농주를 마시고 약간 알딸딸한 기분에 아침에 찾은 그것을 들췄다가 아, 괜히 기분만 뒤숭숭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사진, 이 잔인한 사진. 그리고 또 이거
우리, 서로에게 이런 사진 허하기 하자.
가식적인 우리 관계에 이건 너무 무리인가.
그럼 이건.
옛날에 내가 흉내낸다고 오방 난리를 치며 찍었다가 개뿔, 흉내는 커녕 그지발싸개로도 못쓸 사진 하나 찍었던 그 모델도 눈에 띈다.
우리도 누드사진을, 예술을 위해, 서로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위해 허해주는 게 어떨까.
이제부터, 늘 사진기를 들고다니기로 또 새삼 결심했다.
근데 문제는 사진기를 들고다니냐 아니냐가 아니다.
배워야한다.
갑자기 어디서 사진을 배우냐, 하고 인터넷을 열라 뒤지다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여성의 눈으로 사진을 찍기 어쩌구하는 강좌를 기웃했더니 수요일 밤 9시 시보마넌, 한겨레 문화센터 토요일 오전내내 이십마넌, 시간도 안되고 돈도 엄꼬,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오마넌에 나도 비디오저널리스트 어쩌구하는 비디오카메라 촬영 및 편집 강의가 있어 그럼 이거나(더군다나 강의가 끝나면 수강료 오마넌은 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했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맞으려면 하고 광진문화센터를 찾아보니 이건 석달에 사마넌, 강사도 광진구 각종 사진대회 상을 휩쓴 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님. 음, 근데 이건 왜 끌리지 않을까. 결국 돈도 엄꼬 애엄마 주제에 그냥 독학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옛날 보던 책을 꺼내어 그래,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가며 실습해보는거야,하고서는 빛의 성질 어쩌구 카메라 옵스큐라 어쩌구가 나오는 1장만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다가 뻗어 자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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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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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간 고은이 사진 몇 장은 이건 규민이가 보관해얄 것 같은데... 싶은 너무나도 기가 막힌 표정의 규민 사진이 몇 장 있었어. 보면 가져갈까 싶어 사진첩에 꽁꽁 넣어두었지. 다음에 오면 눈요기라도 하쇼.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