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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육만칠천사백원 어치

현상, 인화하였다.

 

그 사진들 속엔, 장장 작년 이 맘때의 것들도 들어있었다.

일년치 것들을 모았으니 그만한 돈이 나올만도 하다.

산더미처럼 사진들은 쌓여있고, 그것들을 헤집어 보는 것은 참으로 보람차고 즐거웠다.

 

작년의 규민과 올해의 규민에겐 한끗차이라고 할 수 없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하늘과 땅 만큼의 정서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서 자료 화면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집 스캐너는 꽁꽁 싸여 뒷베란다라는 곳에 있다. 몇개월 동안 정말 필요한가 고심하고, 그 후 몇개월 동안 돈을 맞추고, 돈을 맞추기 위해 다른 몇몇 가지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하면서 구입한 복합기는 한동안 반짝하였다가 잭에 이상이 생긴 이후 완전 무용지물이 되어 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최첨단의 현대 테크놀로지는 싫다. 최첨단의 현대테크놀로지는 대개 다기능 다버튼인데, 그 중 얍쌍한 선 하나에만 이상이 생겨도, 오세아니아주의 키위새가 토탈 몇마리의 지렁이를 먹었는지 리얼타임으로 알려줄 것 같던 것들이 당장 올스톱되는 것이다. 플레이, 스톱, 리와인드, 훼스트호워드, 포즈, 이 다섯 단추가 전부인 기계가 훨씬 좋다. 그런 것들은 땅바닥에 몇 번 패대기쳐져도 그냥 어찌어찌 굴러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에후엠투를 고집하는 것이다.

얼마동안 얄따란 디지탈카메라에 눈을 돌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직 이 에후엠투가 나와 함께 오래오래 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니콘에서도 이제 에후엠투는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얘가 늙어죽으면 세상의 한 시대가 정말 최후를 맞는 것 같아 슬플 것이다.

 

이번에 현상, 인화한 사진들 중에는 규민이 찍은 내 사진이 몇 장있다.

이 사진들이 걸작이다.

엄마가 자기를 찍고 난 후, 자기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내가 들었던 카메라를 자기가 들고 그냥 그대로 셔터를 누른 것인데, 근데 그것들이 걸작인 것이다.

남편은 그 중의 하나를 보고, "어, 이거 영화 포스터 같아."하였다.

역시 사진을 찍을 때는 마음을 비워야한다.

사진이든 뭐든 마음을 비워야한다.

지금 규민은 아빠와 '너 가져'놀이를 하고 있는 중.

보라색 리본 끈 하나를 두고, 서로서로에게 '너 가져'라고 하는, 규민이 만든 놀이인데, 그때마다 새로운 이유를 대어야한다. 예를 들면,

"우리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이런 거 보면 다 물어뜯거든, 그러니까 너 가져."

이렇게..

규민이 벼라별 이유를 다 만들어내며, 능구렁이처럼...

우리 딸내미, 정말 많이 컸다.

 

다음에 도서관에 갈 때, 규민이 찍은 내 사진, 몇 장 스캔해서 올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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