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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술먹고 싸웠다.
내가 싸웠다는 것은 아니고 같이 술먹던 부부가 싸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와 내 남편이 싸웠다는 것은 아니다.
잠깐만 당신 얘기 좀 해, 하고 둘은 따로 나가더니 약 십오분 후, 남자가 들어와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유감스럽지만 여기서 파해야겠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곧이어 여자는 눈물로 번들칠한 얼굴로 들어와 남자에게 단발마같은 싸늘한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무랄 것도 없었다.
저것과 아주 흡사한 풍경을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이 연출, 출현하였던가.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내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 가슴이 얼마나 불칠, 불난리질 하고 있을것인가.
가엾기도 하다. 그러나, 하는 수 있으랴.
부부란 모름지기 싸우며 정드는, 혹은 깊어지는 사이인 것을.
싸우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다.
싸우라, 다만 잘 화해하라.
문제는 다음이었다.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넣은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친 남자는 다섯살 먹은 딸래미를 다른 한 쪽 어깨에 기대게끔 안으며 신발에 발을 꾸겨넣었다. 기분 드러운 중일 것이다. 안다. 그 기분. 그런데 기분 더럽다고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 그 남자는 나의 남편에게 다짜고짜, 당신 그러면 안돼,하였다.
뭘?
너(너?) 아까 그랬잖아.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그런 말 하면 되는거야?
어랍쇼.. 그런데 당황은 내가 하고, 남편은 태연하다.
그래, 그래, 미안해, 맞아맞아, 그 남자의 어깨까지 토닥토닥 다독인다.
당신, 그러지마, 내가 정신 말짱할 때 다시 한 번 말하겠는데, 당신. 그리고 이거 치워(자기 어깨위 남편 손을 손가락질한다.)
이 남자, 심했다. 열등의식이 심한 건가. 피해의식이 심한 건가.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소니 다짜고짜 이 무슨 시비인가.
그것도 애들 옆에서.
나는 당황하고 황당하고 불쾌하여 입에 거품을 물었다.
구르르륵구르르륵..
내 입의 거품을 치우며 남편은 손짓한다. 그만 말하고 보내자는 손짓.
남자는 아이를 안고 나간다.
나가면서도, 너, 너, 너를 그만두지 않는다.
남자의 아내는 그리고는 집을 나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간 남자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니 책임이야,를 떠들어댔다.
이번에는 우리가 싸웠다.
남편은 이 드러운 똥바가지를 뒤집어 썼는데, 위로하기는 커녕 왜 화를 내냐고 내게 화를 냈고,
나는 내 기분도 더러운 판인데다, 당신을 위로할 마음이 백배하나, 표현을 잘 못 했을 뿐이며, 내가 화난 대상은 그 남자인데 그걸 이해 못 하냐고 화를 냈다.
아... 가슴에 불칠, 불난리질이 일어나고 있다.
이 무슨 짓인가.
내 얘길 저렇게도 못 알아먹는 저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싸움은 감정의 광란이요, 심혼의 피폐요, 인생의 낙오이니, 누가 싸움의 효용을 얘기했던가.
이놈의 악다구질은 지긋지긋하다.
여자는 월요일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고나니 그동안 맺혀있었던 게 어느 정도 해소되기까지 해서 좋았다고 까지 했다고 한다.
얼씨구..
그리고 오늘(3일째다).
나는 말했다.
당신 말 다 알겠어. 그리고 백분 이해해. 그렇지만 나의 심정은 이렇다구............................
남편은 말했다.
결국 내가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당사자이잖아. 그런데 당신이 그걸 알아주기 보다는 당신 얘길 자꾸 하는 게 서글펐어. 당신도 그랬잖아. 당신이 힘든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논리적으로 그걸 이해하면서, 당시의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잖아. 그럴 때는 오직, 단지, 그러니까, 그야말로, 바로, 가슴으로 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만이 필요한거야.
그 때 나는 알았다.
그래, 그것이다.
넌 그렇니? 난 이래.라는 설명이 아니라, 지금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이의 가슴을, 그야말로 그 가슴을 같이 느끼고 위로하는 것.
바로 그것이 늘, 내가, 당신이, 우리가, 인간이 갈구하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
설명, 이해, 의사소통이 아니라, 그 앞단계, 가슴으로서의 공감.
(그 후에 설명, 이해, 의사소통이란 의식적, 논리적, 사회적, 세련된 방식이 있는 것일테다.)
남편은 말했다.
난 사실 처음부터 너무나 당황스럽고, 놀랐고, 화가 났어.
그런데 단지 규민이와 쫑쫑이(그집 딸, 가명)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때문에, 만약 여기서 내가 내 감정대로 행동하면 이 아이들이 크게 상처받거나 충격받을 수도 있다는 염려때문에, 나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누르고 모든 걸 모래로 덮듯 덮어버리려 했던 거야. 어른인 내가 가져가겠다고. 어른들끼리의 문제니 아이들이 없는 어른끼리 가져가야한다고. 이건 사실 크게 칭찬받아야할 용기있는 행동 아니야?
난 남편의 그 의연한 태도에 남편의 감정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했던 것이었다.
듣고보니 그렇다.
그것은 과연 높이 칭찬받아야 마땅할 의연하고 용기있고 대단하고 멋진 행동이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당신 두애들 데리고 잠깐 비켜줘,하고 대판 싸우는 게 나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댓글 목록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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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함께 칭찬하고 싶어요. ^^ 멋있네요~~(이유님처럼 행동했을 것같고 이유님에게 깊이 공감하는 1인)부가 정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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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푼이처럼 남편 칭찬한다고 안하고 공감해주시다니, 하루님도 멋져요.부가 정보
미나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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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 놀랍습니다.본인의 사적 생활을 본인의 의사로 공개하는 것은 뭐라 할 것이 아닙니다만,
부부가 눈물 흘리며 싸웠다거나,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타인의 지극히 사적 영역의 사건을 포함하는 글을 쓰면서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인 자녀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제가 당사자라면, 이유님의 남편께 했던 비이성적인 행동에 따른 죄송한 마음과는 별개로, 제 사생활의 공개와 제가 누구인지 추정의 단서인 제 딸의 이름을 공개한 사실 자체에 상당히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자녀의 이름을 지우거나 가명을 사용하는게 좋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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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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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밭님 의견에 따라 가명으로 바꿧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