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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8/10
    뒤질레
  2. 2005/08/10
    밤에서 기행
    뒤질레
  3. 2005/08/10
    요즘의 함성
    뒤질레
  4. 2005/08/09
    벅저버저벅저버거
    뒤질레
  5. 2005/08/09
    카우치와 정신?
    뒤질레
  6. 2005/08/09
    존나 웃긴 글
    뒤질레
  7. 2005/08/08
    천국을 불사르자!!
    뒤질레
  8. 2005/08/08
    좆깥다 병신새퀴
    뒤질레
  9. 2005/08/08
    ㅇㅇ
    뒤질레
  10. 2005/08/08
    안녕,
    뒤질레

와이프도 자식도 오로지 음악에만 매진하는 내인생 나에게서 무엇도 빼앗아가지 못하는삶, 그것이 강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와이프 여행가고 고양이들 신경쓰여서 밥주고 고양이만 5식구만 된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지킬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의무도 없어요 쓰러지면 그만이에요 지혼자 죽으면 그만인걸요 자기가 반드시 시켜야할것이 있는 사ㅏㅁ은 강해요 애기를 강한 사자나 애기를 지닌 동물들은 그렇게 강하죠.

 

청소년때는요 때도쓰고 아빠속도 상하게 하고 아빠속도 모르는거같고 일요일에 박치기 해서 꺠우고 그렇게 하는것도 일종의 효도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못된말을해도 밤에 라면끓여주고 재우던가하지 우리엄마가 평생 마음아픈게 집안 어려우면서 누나가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고 혼자살면서 혼자살지않는구나 와이프랑 사는구나 애가 마음아파 해요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불렀지만 엄마 아빠 아버지 이러고 이러고 이러면 되겠느냐? 요새는 아버지는 되겠느냐? 삐딱하게 앉아가지고 진짜 싸가지 없지 발까닭으로 틱틱 밀면서 아버지 아버지는 얘기는 하는데 엄마한테 하는거 생각해 보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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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서 기행

기행기행기행

 

1시간이상 2시간이상 전지역을 돌아서 다리는 아프지 않다. 힘들지 않다.

1주일에 4일정도는 2시간정도를 이렇게 좁은 시가지를 돌아 다닌다.

어제는 위쪽동네까지 그 끝간데 없는 시골까지 갔었고 오토바이질주했을때 갔었던 산과 도심지의 경계선에 있는 어주 어두운 도깨비길가지 걸어갔다. 사람들이 짐을 풀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피서기는 끝났다. 여행은 이제 2개나 남아있다.  도우미들과 MT를 가야하고 BTW에서 패밀리와 어디론지 가야한다. 어딘지는 확실히알지는 못하지만.

 

도배질하러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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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함성

판테라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진 메틀의 신

 

판테라

필립안젤모의 천재적인 보컬기량과 샤우팅이 똥꼬속깊은곳까지 시원시워하게 해주고

귀에 이어폰꽂고 베이스 만빵으로 길을 가면 저절로 고개가 흔들흔들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드뱅으로 이어진다. 거리는 온통 스피디하게 질주하고 참지못하고 함성까지 지를 수밖에 없는 순간~ 잠깐의 공백도 없이 대가리는 무한반복으로 상하운동을 지속해 나간다.

 

유행을 죽이는 앨범

기리기리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앨범. suicide note pt.2는 이번 2달동안 완벽한 카피를 꿈꾸어야 한다.

 

샤우팅과 육성 하울링도 절묘하게 전환된다 cowbow from hell을 처음들었을때 이쪽으로 연습을 꿈꾸었고 그것의 라이브는 샤우팅 스크리밍으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에 공명점이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다. 제시리치가 사라진 killswitch engage의 흑인보깔역시도 이런식의 공명점을 사용하나 필립의 공명점이 더욱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고 어택에 있어서는 가히 역대 메탈보컬중에서 최고의 자리로 군림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war nerve 라이브에서 들을 수 있듯이 매우 강력한 하울링 창법 그것이 코리테일러나 헤잇브리드, 안흥찬식의 끝없고 꽉찬 사운드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그의 주된 창법과 스타일, 판테라가 추구하는것은 80년대 90년대 트래쉬를 계승한것이기 때문이다. 주구장창 밑고끝도 없이 스크리밍이나 하울링이나 그로울링으로 글거주는 다른 음악과는 달리 판테라는 '싱잉'을 주로 한다.

 

유언장 pt.2에서 보여주는 최상히 샤우팅창법은 롭헬포도의 옥타브보다 높게 측정된다. 그의 똥배파워는 호흡곤란에 빠진 하울링 보깔들에게 경이에 가까운 탱크똥맨을 자랑하듯한다. 더블 오버더밍한 부분까지 혼자서 다 불러재끼는 그의 개똥파워 미친 복근과 지금의 허접보깔들이 쓰는 분리된 스크리밍이 아니라 샤우팅과 스크리밍의 날카로운 그 공명점, 이것은 찾는것이 아니라 연습으로 만들어지는것이다.판 테라 첫 녹음 앨범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로우 전환은 오래된 연습으로 가능했음이 밝혀진다.

 

다임백은 죽었고

판테라는 사라졌다.

 

14년의 안젤모는 판테라 그자체였다.

 

이제 들을 수 없는 그의 샤우팅이다.

 

 

다른 보컬같은 경우 양쪽의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있다.

Kill switch의 2집 앨범 지금 활동하는 코어 보컬중에 가장 다이나믹한 테크니션임에도 불구하고 필립에서 볼 수 있는 시원시원한 전환은 없다.

 

오로지 클린과 스크리밍과 하울링(중간파워정도)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노래를 분할시키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연결된 오르가즘은 찾아보기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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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저버저벅저버거

음알

 

문제를 어느쪽에선는 그렇지만 예술활동 그런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심야시간에 영화채널에서 방송해던 음란성이 짙은 그런 영화에 대한 규제 전체적인 분위기로 가게될경우에는 문제가 있을것 같은데요 주제는 최소로 하는게 좋을것이고 그런 논리는 어느 한 부분을 규제하게되면은 다른쪽 차워도 같이 죽는 경우가 있으니

 

공중파 방송의 특성이 있습니다. 일바 영화랑 다르게 전국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제작을 하니까 다른것보다 규제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번건과 관계 없이 카우치와 관계없이 지난해부터 해보니까 이번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빌미로 규젤르 강화하는것은 안맞는다. 그부분은 제가 말하겠습니다.

 

지상파는 아니지만 지상파 음악방송을

 

조금은 생각이 부족했지 않았나? 확실히 보여주긴 했는데 보여준게 잘못보여주었다. 너무 과민반응이다. 새로운 공중파 방송에서 인디문화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첫방송에서 그런 사고가 나서 어쩌면 그 다음주에 다른 밴드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건때문에 노출될 수 없었다. 노출의 기회도 사라졌다는게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페 1050밴드가 있다. 서운규씨 일련의 이런사건을 보시면서 이번일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생각

 

 

저는 궁금한게 어떤 논리와 어떤 이유로 그런 퍼포먼스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논리와 이유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논리와 이유가 있어야되느냐? 예술이야? 외설이냐? 그것을 떠나서 지금의 우리사회 시기가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이 부당한 억압 자기인생을 걸고 쟁취하다시피한 표현의 자유들이 사회분위기가 억압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것이 아닐까?

저항정신 펑크 락 정신 의도로 그런일을했다면 만약에 누군가 그런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사회 음악분야가 아니라 문화예술계 사회전반에 지금의 시기가 어떤시기인지 지금 표현의 자유가 한창 저변으로 확산되고 자리잡고있을 시긴데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디문화권에서 왕따를 당한다?

 

제재 억압으로 인해서 일반 구성원들이 보게될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는 피해가 훨씬 클것이다.

방송과 인디문화의 만남

카페 1050의 연주를 듣고요

부타그립니다.

 

스멜스 라이크 틴스피릿 재주연주다.

 

시퐝

 

Smells Like teen spirit~

 

nirvana

 

자유롭고 발랄한 영혼을 ㅏㄱ진 존재의 향기

 

카페 1050

인디펜던트 음악을 들어봤는데

이런 얘끼를 들으면서 많이 아프시죠?

 

공중파로 ㅅ어공한것이 아니다. 자신의 음악정신을 좀더 깊이있게 공중 나간다 안나간다 차워이 아니라 그런 더넓은 문화적인 저변이 문제는 이번사건이 그나마 그래도 많은대중들에게 인디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버린다. 아쉬운것이다. 이런일로 해서 방송이나 대중들이 인디문화를 문화의 바이러스 차원으로 사고할만큼 문화적 인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들도 붕뜨고 이다.

 

 

인디의 방소문화의 저변 확대

 

인디배드들의 그런 호라동들이 어떤 굉장히 건강한 서브 컬쳐로

문화의 다양성 하위문화로

 

음반판매량을

자긱가 봤다니 인지도가 높은 댄스가수도 그들의 음반판매장이 만장이 안나온다. 7000 8000장이 나온다. 판매량도 비슷하고 인디가 나가더라도 가수랑 시청률이 비슷하게 인디와 주류가 판매량에서 간격이 없어져 버리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인디가 소외된 보호차원에서 접근을했다면 지금 준비가 안되있다. 음반시장자체가 위기를 도랖해야되는 전위역할을 맡아야할수도 모르겠다.

 

존나 종알종알대 시파

 

 

이번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사건이 방송사고가 일어나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 그 과정에 무슨 인디문화에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위문화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것과 규제장치를 마련하겠다. 이번 사건 사고가 네티즌들에 의해서 활자매체를 가진 매체에 의해서 급속하게 과대팽창해서 사건이 확대되는 면이 있는데 규제차원도 이것입니다. 이번 사건 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볼떄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인디의 자기화동을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걱정하는 것은 알몸에 대한것을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d방청객들b

 

수비지않은 길을 가는거 아닙니까>?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우리 사회모두가 단순히 사건에 방향 뿐만이 아니라 강헐ㄴ

 

 

문화적인 표현에자유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송사가 출연한 뮤지션들을 얘비 범죄자로 ㅁ로고 경찰과 검찰이그렇게 몰아가고 네티즌들이 ㅁ로아가고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참 오바 했네 웃어 넘길 줄 알아야한다. 자신에 표현에 자유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통념에 어긋나고 다중에 사람들에 대해서 폭행에 의미가 있었다면 법정에서 그 책임을 물어야 할것이다. 우리사회에 인식은 범죄가 아니라 마음에 들지않더라도 문화적 경험이었다. 내 가 하고싶은것도 보고싶은거솓 아니지만 그런것이었다. 그런 관용을 가졌을 때 인디문화가 발전을 할 것이다. 알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 방송 인디문화에 의미 운명

 

끝날때가 됬습니다.

간단하게 참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때 우리사회는 이런 태도를 벌여줬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사건이 터지면 규제강화에 목소리가 커지는 역사적인 거기에 대한 인식이 문화를 하는 사람들도 좀 인식을 가지고 좀 자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행이 남자니까 보지는 않았는데 올라오면서 휴가에서 ㅇ로라오면서 전화를 했더니 애석하게도 저는 못봤어요 사람이 전화를 하면서 들었는데 만약에 봤다면 대단히 모욕적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성적폭력에 해당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명백히 모욕적이었을것이다. 인디문화 얘기했는데 밴드보다도 더 소수에 문화가 많이있고 사회가 좀더 문화적 관용이 넓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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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와 정신?

가십거리로 보도가 되었을 테지만 이 문제가 왜 터진것인가? 알몸과 관련해서 전문가는 아니고 이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예를 들면 쉰들러 리스트 가스실 목욕하는 장면 체모가 거기 다 나온다. 성폭력적인 행위 이런 얘기는 안한다. 남부군 영화에서 배경이 지리산에서 그것도 보도가 되었죠 남녀 수많은 때로 알몸으로 나왔거든요 뒷모습만 남부군 총 사령관 이 올때 그것보고 모라고하는 사람은 없다. 화제거리는 될지언정. 비판의 소재는 아니다.

 

쉰들러리스트는 얘술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예술의 이유가 없는것같고 확김에 장난치는것같다? 이것은 누군가가 강요하는것이다. 투표에서 51프로가 되면 음란이되는것인가? 다비드상보고 구토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다면 그 작품을 부셔야 되는건가요? 숭고하고 아름다운 노출은 허용되지만 그렇지 않은것은 문제다

 

자신의 육체를 상품화해서 돈을 벌리는 행위가 덜 순수하고 문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사회하고 그 영화에서느 숭고한 영화에서는 허용되고 방송에서는 왜 안되느냐?

영화는 미적인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음악행위에 있어서 알몸으로 춤추는 것이 음악의 창의성 새로움 미적인 완성도에서 필수요소인가? 라는것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옷을 입은채 춤을 추는 행위와 옷을 벗고 춤을 추는 해위가 미적 완서도에 영향을 미치는가?

 

독특한 메시지를 내기 위해서 경찰에 가든지 나는 이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했다 그랬을때는 이해가 되는데 곧바로. 주 시청자 입장에서는 렉시의 노출이라든지 이효리 노출은 기대하고 본다. 이정도 노출은 기대하고 본다. 시청자욕구는 충족시켜준다. 럭스와 카우치의 노출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나에게 서적인 피를 달라 요구하지 않았고 방송에 상관없이 여중생들 카메라에 잡혔지만 왜저럴까 돼게 불편한거죠. 시청자와 방청객에 주권을 침해했다. 여성연예인이 이랬으면 상업적이죠 방송에서 규제를 해야죠. 최소한 시청자는 불쾌하지 않다는것이죠. 카우치같은경우도 자기의 공간 마니아팬들끼리 있었다면 불만이 없었다. 이런점이 없어다.

 

경찰에 들어가니 무서워서 할말을 못했다.

권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저항에 예술이란 의미에서 자기주장을 해온것이 예술적 정통이다.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게 아니라 대중소통 방식의 미숙함이다.

 

시청률이 낮아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했다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든 코너거든요 최문순 젊은사장의 코너로 바뀌면서 느낌대로 프로그램으로 공감얻었던 그동안 문제가 많았다 순위프로그램이라는것이 소개하겠다. 음악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 스스로 일어난 것인데. 지들이 잘못했다. 두친구떄문에 프로그램이 큰 타격 그 측면들에게 문제를 전가하는것인 옳지 못하다. 방송자체를 정리한다는것도 성급한 판단이다. 앞으로 다시 재게될 수도 있겠지만은 제가볼 때는 보완체는 만들어야한다. 신해철씨가 지적했듯이 문제는 생방송에 있다. 자닛잭슨 생방송도 5초를 지연해서 전송하는 방송테크닉 음악프로그램은 확실한 멘트가 아니면 상관할게 없거든요.

 

그 인제 그 부분에 이어서 MBC대응방식은 증거를 수집하고 계속적인 증거자료를 만들어서 음란죄 업무방해죄 그 청년들을 우리는 죄가 없다 이런식으로 그 프로그램을 즉각적으로 폐지해버리는것은 못마땅하다

 

법정제재를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들어야된다. 시청자 사과 관계자 징계 해당프로그램 중징계 음캠같이 전체 징계가 아니라 문제되는 부분만 MBC는 뛰어난 조치를 했다. 사과했다. 방송까지 중단을 시켰다. 심의입장에서 더이상할게 없을정도로 그렇게 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뒷북을 해야한다. 방송중단한다. 말씀드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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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웃긴 글

다음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선데이 나잇 섹스 쇼 II>의 사회자 수 조핸슨이 알려준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전화로 솔직하게 섹스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사회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지식을 알려주고 고민을 풀어준다.
 

 

 

 

 


그 여성이 사회자에게 밝힌 고민은 다음과 같다.
자기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성교시에 사정을 하고는 정액을 먹으라고 요구하는데, 자신은 먹고싶지 않다는 것.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몰라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 여성에게 사회자가 알려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남자친구에게 고기를 끊으라고 충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채식주의자 남성의 정액은 '달콤한 맛'이 나는데, 고기를 먹는 남성의 정액은 '탄 가죽 맛'이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자 수 조핸슨은 그 여성에게 남자친구보고 고기를 그만 먹으라고 하든지 아니면 탄 가죽 맛이 나는 정액을 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채식주의자 남성의 정액 맛이 정말 달콤한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
 
 
 
 
 
 
이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시파 초코렛먹고 사정하면 당도가 올라가냐?
의도적으로 여성의 삼킴 오르가즘을 높이기 위해서 주사기로 잣휘에다가 포도당을 부여하는 시대도 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개인의 성적인 자율권의 넓어지고 국가나 사회폭력이 사적으로 관여하지 않게 됐다.
 
아싸 고도리
 
내 친구는
아파트 계단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자기 안방에서 침대위에서
게다가 성적인 흥분을 더 일으키기 위해서 여자친구 교복까지 입히고 빠구리를 자유롭게 뜬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스와핑관련된 동영상이 떠돌아 다니고 이제 한국사회도 자유로운 성담론이 진행되고 있다.
 
 
주댕이 싸무리고 다시 본론
 
정액의 숙성된 맛을 올리기 위해 한달간 사정 안하면 알콜 도수가 높아진단다. 단백질이 90퍼센트 이상이나 되는 정액이 오랫동안 고환속에서 숙성이 되면 안에 포름데이탈렌이란 물질이 생성되어 미량의 알코올이 발생된다고 한다.
 
우리가 술을 존나 먹으면 소화되지 않은 알콜이 혈액에 녹아들어가 모세혈관에 깊숙히 퍼져나간다. 
 
우리가 술 존나 먹고 꼴았을때 그다음날 일어나 소변을 누었을때 나는 약간의 단내와 거기서 풍기는 미량의 알콜향기가 나듯이 정액에도 알콜끼가 포함된다는 이야기다.
 
 
몸은 하나다.
독립되어 따로움직이지 않는다.
그전날 했던 행동에 신체가 영향받고 그동안 습관처럼 계속되는 건강파괴행동에 모든 신체가 영향을 받는다.
 
운동안하면 페만 쪼그라드는것이 아니라 손과 발에 모세혈관이 축소되어 어쩌면 수족냉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마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서에게 정액을 억지로 먹일수도 없고 그래도 안되지만
꼭 먹어야 된다면
서로의릴레이션쉽을 깊게 하기 위해 정액에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초꼴렛을 먹어서 초코맛을 내게 하던가
우유를 먹어서 단백질의 농도를 높여서 좋은 영양제를 여자친구에게 부여하던가 해야한다.
 
이런 행동으로 서로의 관계가 좋아진다면 더할나위없는 만족할만한 섹스가 될꼬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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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불사르자!!



♪ Heaven Shall Burn ♪

 

 

여름엔 메틀코어가 짱이다!!
유럽과 미국 메틀, 하드코어, 펑크씬에서는 노래하는 사상의 범위가 아주 넓다. 스킨헤드 신나찌 쌟들에서부터 극좌 폭력 혁명을 노래하는 녀석들도 많다. 섹피는 아나키를 노래했고, RATM은 부시의 악의 축에 대항해 정의의 축을 만들었다.  디어사이드는 신을 죽이려했다. 오코너는 주류 미디어에나와 교황을 암살했으며, 핑플은 문명을 싸잡아 엿먹였으며 존레논은 공산주의를 꿈꾸었다. 퍼블릭에너미는 혁명 랩을 완성했다.
지금의 저항음악을 하는 메탈그룹은 극단적 헤비니스라는 초강력 무기를 가지고 음악으로 게릴라전을 펼쳐댔다. 오늘은 천국을 불살라버리는 놈들의 음악이다. 말이 필요없다.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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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지각있는 직접적 행동을 요구하는 하드코어 정신에 충실한 독일 출신의 5인조 밴드. Heaven Shall Burn 은 90년대 중반 독일에서 결성되었다.그들 스스로가 동독 출신으로 통일을 겪어서 인지, 그들 가사는 초기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비판을 통해,팬들이 밴드에 대해 어떤것도 소홀히 할수없게 해주었다.현재 유럽의 메틀코어씬은 Caliban 이나 Destiny 같은 팀들이 강세로서 Lifeforce 패밀리에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 Heaven Shall Burn 도 역시 이곳 출신이다.전세계로의 도약을 위해 Century Media 사와 계약했으며 기존의 멜로딕 데스메틀팬 들과 메틀코어에 새로운 관심을 쏟는 매니아들이 듣기에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밴드이다. 이들의 연주방식은 멜로딕 데쓰메틀적인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워풀한 연주에 스며든 음악적 감수성이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메틀코어는 연주방식에서 헤비메틀에도 깊은 이해를 갖추고있어 자신들의 연주방식을 보다 깊고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에선 하드코어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드코어는 음악을 떠나서 개개인에게 삶의 방식이나 이념까지 제시하는 성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메틀코어 밴드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하드코어에 충실하다. 바로 하드코어의 이념을 따르고 있는 독일출신의 메틀코어 밴드 헤븐 셸 ! 이들은 일부에선 'Vegan Meta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실제로 멤버 전원이 채식주의자이며 4명이 스트레이트 엣지 사상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

첫 미니앨범은 1998년 Deeds Of Revolution Record를 통해 발매되었다. 곧 새로운 기타리스트 Patrick Schleitzer를 가입시켜 최종 라인업을 이루었고, 1999년 역시 같은 레이블에서 Fall of Serenity 와 함께 스플릿 LP를 발매하였다. 2000년에 드디어 밴드는 첫 데뷔앨범 [Asunder]를 Impression Music을 통해 발매하게 되었고, 유럽 외의 지역에선 라이프포스 레코드(Lifeforce Records)가 배급을 맡게되었다. 또한 그들은 같은 독일밴드 칼리반과 함께 스플릿 CD를 완성하고, 스페인, 포르투갈, 스위스, 이탈리아, 베네룩스를 잇는 투어를 감행하였으며, 2001년 겨울 밴드는 곧 다가올 새로운 CD에 들어갈 곡들을 준비하게되었다. 2002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Whatever It May Take]를 발매하여 긍정적인 평가와 더욱 많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깨어있는 현대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헤븐쉘번 식의 사회적 메세지 전달 Antigone

"우리는 설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을 원합 니다." 라고 하는 Heaven Shall Burn 은 밴드 이름에서 부터 큰 의미를 두고 있다.실제로 이 이름은 Marduk 의 트랙이름과 일치하기도 하는데 Heaven Shall Burn 은 " 그것이 우리가 사타닉밴드임을 의미하거나 Marduk 팬이라서는 아니구요.우리가 Heaven 을 사용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 들의 마음속에 만들어내는 잘못된 낙원을 은유해 본것입니다.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해 보는 것을 원했고 그것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 진실인지 찾기를 말이죠.그래서 잘못된 낙원은 불타버려야 했 죠 ! 그것이 Heaven Shall Burn 우리만의 의미입니다 "





가사

The Weapon They Fear lyrics
Words - these words of freedom
A bequest - never to be silenced

In this world of lies, the truth, it means resistance
To make the masses see and sense their needs

He healed so many aching hearts and wounds
And threw back the baseness - back to where it came from

Aspired from the middle of his brothers
Charged this suffering and oppression
One single voice became a storm
His words and melodies - the weapon they fear

Threw back the baseness - back from where it came

Nobody is chosen to suffer
Nobody is destined to rule
Gagged his mouth but not his songs, the songs we sing
Fettered his hands but not the words he wrote
These songs we'll sing!

"Silence and screams are the end of my song." - Victor Jara
빅토르하라를 인용했따. 빅토르 하라는 누군가?


빅토르 하라. 이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우리들 중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땅을 직각으로 파고 들어가면 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의 대륙에서 어느 날 한 가수가 죽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개의 가수들은 늙어 죽거나(요새 우리 저녁 뉴스에는 가끔 잊혀진 옛가수들의 죽음이 나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두 명의 가수가 죽었다. 황금심과 고운봉) 아니면 사고로, 그도 아니면 마약 중독이나 자살로 유명을 달리 한다. 가수가 총맞아 죽었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쉽게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흔하게 들을 수 없는 노래와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사연의 중심에 빅토르 하라가 놓여 있다.

 솔직히 빅토르 하라의 노래를 들은 것은 올해(2001년)초의 일이었다. 그의 음반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물론 정식 라이센스 음반이 나온 것은 아니고, 수입 음반도 최근에서야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노래를 듣기 전부터 그를 좋아했다. 가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영화배우나 탈렌트를 좋아하는 일과는 틀린 일이다. 영화배우나 탈렌트에 대해서는 그들의 연기보다는 그가 풍기는 이미지나 외모를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가 연기한 작품을 하나도 보지 못하더라도 좋아할 수 있지만 가수는 그의 노래를 들어보기 전에 어떤 근거로 좋아할 수 있게 될까?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음성은 들리게 되리라
죽음이 나를 앗아갈 때까지
죽음이 가는 길을 따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민중의 바람」 중에서





빈민촌에서 빅토르 하라









빅토르 하라의 음반들 - 현재까지 국내에 공식적으로 그의 음반이 발매된 적은 없다.
 

 그러고 보니 우연한 기회에 우리들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을 지도 모른다. 예전에 아직 우리나라에서 최루탄 가스 냄새가 가시기 전에  TV에서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혹자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고 합니다만 어쨌든)를 통해서 짧지만 빅토르 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실제로 그가 주인공은 아니고 배우가 대신한) 어떻게 그때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를 TV에서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한 이가 우리나라의 박정희였고, 그가 죽었을 때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한국과 칠레 사이의 우호 증진을 목적으로 그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칠레의 선거 혁명으로 이룩한 짧았던 칠레의 봄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못다핀 꽃 한 송이가 되고 말았다.이 영화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는 쿠데타군의 병사들이 아옌데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끌고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병사들의 총구가 삼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체육관.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아무 말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그곳에서 머리가 덥수룩한 젊은이 하나가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벤세레모스, 벤세레모스(단결하라! 단결하라!)”

 점점 그의 노래 소리는 커가고, 체육관의 모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자 군인들은 그 젊은이를 끌고 나간다. 그가 바로 칠레의 전설적인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였다. 그는 영화처럼 실제로 총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댓가는 양 손목이 부러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 조안 하라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칠레의 어떤 가수. 빅토르 하라는 그렇게 아옌데 정부와 운명을 함께 했다.

누에바 깐시온과 벤세레모스(단결하라!)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앞서 다룬 바 있는 시몬 볼리바르와 살바도르 아옌데, 체 게바라 편을 참고한다면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시온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소위 '제3세계(이제는 무너져버린 용어이지만)'의 음악이 음악학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아들러(Guido Adler), 크리잔더(Karl F. Chrysander), 리만(Hugo Riemann)으로 이어지는 독일의 음악학 전통은 주로 음악이론, 서양음악사, 음악미학으로 대표되는 예술음악, 혹은 악보로 전해지는 음악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여왔고, 그 악곡의 형식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 정작 그 음악을 만들고 향유해왔던  인간에 대한 무관심해왔다. 그후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음악이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향유된다"는 극히 자명한 명제에 대해 음악학자들이 새삼 눈길을 돌리며 제3세계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음악이 새로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누에바 깐시온)'은 "월드 뮤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는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이라는 말은 1969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1회 누에바 깐시온이라는 행사의 이름으로 붙여졌던 것이 그 범위가 점점 더 넓어져 1970년대의 민족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칠레에서의 노래운동은 1960면대 초반 민속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주요활동이었다.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 로욜라(Margot Loyola), 피사로, 파바스 등은  칠레의 변방과 인디오 거주지에서 상당한 양의 노래와 시, 전설, 춤을 채집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단순히 스페인 등 유럽에서 이식되어 온 것이 아니라 인디오들의 문화와도 그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자신들의 뿌리로서 그 문화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의식을 대중에게도 널리 전파하였다.

 이중에서도 빅토르 하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비올레타 파라였다. 파라는 칠레의 평원과 산악지역을 횡단하면서 거기서 흡수한 지식과 대중예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남미 전역에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인근의 변두리 로껜(Loquen)이란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누엘(Manuel)은 소작농이었고, 술주정뱅이였다. 하라의 어머니 아만다(Amanda)는 생계를 위해 온갖 잡일을 해야만했다. 그러나 아버지 마누엘은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구타하곤 했다. 아버지는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다른 지방으로 떠나 버렸고, 하라의 어머니는 홀로 남아 자식들을 키웠다. 그의 어머니는 고된 노동 뒤에도 어린 빅토르에게 기타와 칠레 민요를 들려주었다. 하라는 어머니에게 기타와 칠레 민요를 배웠다. 1950년 3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하라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던져준 상심은 큰 것이었다. 그는 다니던 상업학교를 포기하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앙에 대한 회의로 퇴학당하고 군에 입대한다. 제대한 뒤 다시 로껜으로 돌아온 빅토르 하라는 포크 음악과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무렵 칠레의 전통음악에 대해 공부하던 빅토르 하라는 어느날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게 된다. 빅토르 하라는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며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 그의 데뷔 첫 앨범을 내었고, 곧 칠레 전역의 들끓는 정치적 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노래 운동의 상징인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 운동을 벌여 나가고, 그 와중에서 미국을 등에 업은 자본가들과 군부에 대항하는 사회당과 아옌데의 대통령 선거를 위해 유세에 참여한다. 결국 칠레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에서 민주적 선거에 의해 당선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미국과 군부에 의해 피노체트 군사 구데타가 발생한다.

노래의 가장 좋은 학교는 삶 그 자체다

 비올레타 파라를 만나기 전, 이미 어머니로부터 칠레 민속 음악의 세례를 받고 그 자신이 일찍이 시화 노래와 연극을 사랑한 청년이었던 빅토르 하라는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사라져가는 칠레의 전통민요를 조사하고 채집하는 등의 자각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민요운동의 선구자 비올레타 파라와의 만남은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그는 '쿤쿠멘'이라는 보컬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쿤쿠멘은 전통 민요와 민속춤을 채집하여 그것을 연구, 연주하는 데 주력하는 그룹이었다.

 빅토르 하라는 쿤쿠멘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음반을 취입하고,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연주했다. 하라가 칠레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는 또한 연극 연출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어 그가 처음 연출한「행복 비슷한 그 무엇」이라는 작품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빅토르 하라가 조안 터너를 만난 것은 칠레 대학 연극학과의 연기 동작 강의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만남이었다. 영국출신의 무용가 조안 터너는 전남편인 안무가 파트리시오하와 이혼하고 첫 딸을 낳은 후 매우 상심해 있는 상황이었다. 조안은 빅토르 하라와의 사랑을 통해 결혼에 실패한 상처를 치유받고 칠레와 민중의 상황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빅토르 하라 연보

1935 산티아고에서 50마일 가량 떨어진 론껜의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남
1950 겨울 산베르나르도 시의 속신 수도회 소속 신학교에 입학
1952 3월 신학교에서 퇴학
1956 칠레대학 부설 연극학교에 입학
1958 칠레의 민속, 민요 운동 보컬 그룹 '쿤쿠멘'의 단원이 됨.
1960 10월 영국출신의 무용가 조안과 사랑에 빠짐
1961 12월 칠레 대학교 연극연구소 상임연출가
1962 '쿤쿠멘' 그룹의 민요모음집 『칠레의 음악지도』 출반
1963 민속예술학교 설립
1965 희곡작품 「방랑자」,「술책」을 연출하여 카우폴리칸 상과 비평가 상을 수상. 첫 독집 레코드 『라코시네리타』출반
1969 6월 독집 레코드 『당신의 벌린 손 안에』출반
1971 4월 독집 레코드『평화롭게 살 권리』출반
1973 9월 11일 아옌데 정권 붕괴
1973 9월 14일 실내 체육관 지하실에서 피살




 

 이들의 결합으로 칠레 대학에는 새로운 형태의 무용극과 연극, 음악 공연과 노래공연의 중심이 형성되었다. 빅토르 하라의 연극연출가로서의 특출한 재능과 열정은 제도권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대학 연극연구소의 상임연출가 자리를 얻게 되었고, 1965년에는 가장 훌륭한 연출가들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들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연극 연출 분야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없었다.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그는 제한된 장소에서의 공연이라는 연극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원했다.

 1960년대 중반 칠레는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지배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악착같았던 부르주아 계급이 각성하고 있는 민중을 억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라의 음악도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삶의 뿌리가 뽑힌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사회적 노래로 변모해갔다. 그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게 바치는 노래 <유령>을 비롯해서 앞으로 닥쳐올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예언한 듯한 노래 <군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아옌데와의 만남, 승리 그리고 죽음 - 끝나지 않은 노래

 빅토르 하라는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인민연합의 승리를 위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아옌데 정부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는 민중벽화운동, 민중발레단, 노래운동 등 다양한 방면의 민중문화 운동 세력을 결집시켰다. <벤세레모스>는 하라가 쓴 시를 첫 번째 선거운동극이었다.

 아옌데가 승리하고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 사회주의 정부가 출현했다. 학생들은 문맹퇴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을 교육했고, 예술가들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문화 예술 창조 욕구와 잠재력을 자극할 수 있는여러 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부를 시기한 기득권 세력은 그들에 의해 장악된 언론을 이용해 악의에 찬 여론 조작을 해나갔다. 하라는 1971년말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순회하며 칠레 민중들의 삶의 역사와 고난의 역사를 노래했다. 점증해가는군부의 쿠데타 음모를 경고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열었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배윤경 지음/ 이후/ 2000 -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인 가수이자 칠레의 저항가수였던 빅토르 하라의 일대기와 살바도르 아옌데 그밖에 많은 라틴 아메리카 가수들의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부록으로 빅토르 하라의 노래가 담긴 음반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반드시 사 볼만 한 책이다. 놓치면 아쉬워 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 우석균 지음/ 민음사/ 2000년  - 위의 책이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간략한 통사와 더불어 문화, 예술, 환경 등에 대해서 곽재성, 우석균 두 명의 필자가 재미있게 잘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한 가지 장점을 더 추가하자면 인터넷 시대답게 관련된 사이트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을 꼽으라면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대충대충이 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옥에 티인 셈이고, 라틴 아메리카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 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리란 생각이다.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노동은·김응교 편저/ 민글/ 1993년 - 불멸의 예술가 18인의 삶과 예술을 펼쳐보이는 책이다. 현재는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이라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운 책 중 하나이다.
 

아옌데 정부 역시 미국의 시장 교란과 위협을 극복하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고, 1973년 3월 의회선거에서 아옌데의 인민연합은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민중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은 아옌데의 개혁은 추진력을 얻었고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기 전에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다. 바로 그 투표를 하려고 했던 날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빅토르 하라는 미국과 헨리 키신저(노벨평화상을 받은 바로 그 사람), CIA 그리고 피노체트가 장악한 군부에 의한 쿠데타로 아옌데가 칠레의 모데나 대통령궁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던 바로 그 때 살해당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벌어진 일주일 동안 3만여 명의 칠레 시민이 학살당했다. 그후 피노체트 집권 기간동안 사망자 3천여 명,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 1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최고의 경찰국가답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미국 CIA는 칠레 비밀경찰과 손잡고 양심적 지식인들을 암살하기까지 했다.

 빅토르 하라는 고통받는 칠레 민중을 위해 노래불렀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멈추게 하기 위해 칠레 군부는 그를 때리고, 고문한 뒤 양 손목을 부러뜨리고 죽였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곳 어디에선가는 끊임없이 그의 노래가 불려졌고, 그는 시와 음악이 사람들을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일깨우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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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깥다 병신새퀴

음악의 진행 (추천 0점)
2004-08-20 02:40

제가 초등학교 좋아하던 스타는 룰라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싸바싸바 날개잃은 천사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독점했죠. 룰라에 이어서 노이즈라는 남성 4인조(맞나)가 프로포즈라는 음악으로 활동했었고 녹색지대도 나왔던 해였죠. 김건모다 핑계가 TV에서 많이 나왔던 해.

 

룰라의 테이프를 동네 가판데에서 구입하고 테잎이 늘어져라 2번트랙을 들었습니다. 다른곡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세대 최신가요니, 아니면 x세대 최신가요니, 이런 컴필레이션으로 테입 한장에 20여곡을 담은 테잎을 수집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짜가 테입들이 이천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이천원 달라그러던가 친척네 들어서 받으 용돈으로 그런 것들을 구입했죠. 그런 생활이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계속 됬어요.  룰라에서 부터 서태지의 컴백홈까지의 이어졌던 기간이었죠. 그리고 그 후부터 한국의 가요는 거의 안들었어요. 음악적 공백이었죠. 그리고 한국의 HOT와 젝키가 나오고 활동하던 시기... 저에게 있어 초등학교 5학년은 혁명이었습니다. 그 때 Backstreet boys를 알게 됬던 것이죠. 그때 우연히 bsb의 2집 타이틀은 everybod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아이돌 상품에 관심을 가졌죠. 그래서 6학년때 이르러 1998년에 한국에 스타크래프트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에 33.6k 모뎀으로 저는 외국의 mp3사이트에서 bsb의  n sync나 celindion, britney christinaboyzone, westlife(그 후에), aqua등을 듣게 됬습니다. 그때 한국의 소리바다는 없었고 한국의 mp3사이트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국이나 미국쪽에 포르토사이트와 연계 운영된느 mp3사이트를 집에 64k ISDN모뎀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이트는 앨범단위보다는 UK차트 빌보드 차트, Dutch차트 , 미국차트, 유럽차트 이렇게 여러가지로 세분화된 차트로 구성되어있어서, 저는 그때 빌보드와 UK차트를 달달 외우면서 댕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서는 대단한 것이죠. 그런 생활이 중1 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중1때는 BSB앨범 3집이 5월며칠에 한국에 발매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날짜에 저는 수련회 기간이라 아쉬웠습니다.그리고 여러 차트와 mp3사이트를 전전하며 한국에 음반이 나오기 직전에 boyzone이후에 westlife의 곡들 ,if i let you go, swear it again, i have a dream , season in the sun, flying without wings를 중학교 1학년 내내 들었었는데 11월인가 10월에 그런 westlife의 앨범이 한국에 발매되었습니다. GMV라는 잡지에서 11월 6일인가? 10월 6일인가 외웠다가 이틀이 지나면 시흥 매장에 있겠다 싶어 매장을 2군대를 갔습니다.

westlife 1집 있어요? 물어보면 모두 westlife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발음해도 못알아듣고 앨범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제가 관심있어하던 여자애의 cd - p 에 westlife가 있던게 얼마나 반갑던지...

 

중1이 지나 중2 때는 이제 최신을 달리던 미국과 유럽쪽 상업주의 팝이 아니라 듣기좋은 보통사람이 접하기 어려운 곡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뻑갔던 음악은 Santana와 Eagles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재즈와의 첫만남, 뉴에이지의 섭렵이 시작됬던 기간이었죠. 중2 때와 고2때는 저에게 있어 새로운 음악적 욕망의 분출구 였습니다. 뉴에이지는 유키, 앙드레가뇽, 케빈컨, 조지윈스턴을 들었고, Eagles의 Hotel california는 삼백번도 더 들었습니다. 가사와 해석까지 전부 외워버렸을 정도였죠. 아무리 생각해도 hotel california는 저에게 신비로운 기적의 곡이었습니다. 기타의 앙상블이나 구성, 가사의 알지 못할 신비함등. 사운드가 그리는 호텔의 풍경들 모두가 이색적이면서 새루웠습니다.정말 뻑간것이죠. Thanksgiving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는 소수의 곡들을 반복해서 듣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앙드레가뇽의 un piano su la mer이나 머나먼추억, 정말 귀가 닭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3학년때 올라와 그런 음악적 편력이 초고속 인터넷을 만나더 강해졌습니다. 중3은 중2의 연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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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즈 일기1:재즈까지의 길 (추천 0점)
2004-08-20 02:20

모 태어날 때부터 음악을 접하면서부터 재즈를 알았겠죠. 그런데 재즈를 직접적으로 의식해서 듣게 된것은 Duke Jordan의 앨범을 통해서였어요 그 때 들었던 Everything heppens to me가 중학생이던 저에게 엄청나게 감성적이었어요. 그당시 듣던 뉴에이지나 가요, 팝이 깨워주지 못했던 감성들을 일깨워 준것이죠. 그 한곡만 일년동안 100번도 더 들었던것 같아요. 언제나 PDA와 MP3엔 그 곡이 함게 있었죠. 그리고 제목모를 CF에 삽입되었던 많은 곡들. 지금은 모두 그 이름들을 알죠.

데이브 드루벡의 Tave Tive나 엘라 핏제랄드의 곡이라던가 마일즈 데이비스라던가. 그당시에는 재즈의 한곡한곡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산뜻하고 새롭게 다가 왔어요.

 

그리고 그때는 음반을 살 돈이 없어서 소리바다 채팅방과 온라인에 많이 있는 재즈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고 모았습니다. 처음에 제가 앨범단위로 다운 받았던 음악은 Keith Jarret이었죠. 학교에 my Song을 mp3에 담아갔을 때 그때가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와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재즈와 관계된 책들을 찾아봤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모던재즈계열에서 모달재즈 스타일의 아주 듣기 좋은 곡들, 발라드에 치우쳐서 들었습니다. 아직 비밥이나 하드밥, 스윙은 듣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야들야들하고 끈적끈적하며 듣기 좋은 곡들만 하나하나 골라들었던 것이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와 재즈는 거의 안들었어요. 그때 막 다른 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음악활동에 전념하지 못했죠. 2학년대는 대부분 락이나 팝을 들었어요. 보컬리스트에 대한 꿈 때문에 마이클볼튼이라던지 고전 헤비메틀의 보컬들, 그레헴보넷이나 로니제임스 디오, 한국의 임재범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음악의 르네상스를 맞았습니다. 아트록에 심취해서 거기서 느낄 수 있는 현란한 코드 진행과 새로운 실험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마빡에 딱 새겨놓은 이름은 pink Floyd였습니다 핑크와 더불러 예스나 Gong, 카멜, 제네시스, 르네상스, 레이크 애머슨앤 팔머, 정말 아트록과 프로그레시브씬에서 보여주었던 현란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인 선율과 실험적, 독창적 소리는 18세의 저의 정신을 단단히 잡아 두어서 놓아주질 않았다는 것이죠.

 

이런 음악의 편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가정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에 의한 정보의 폭발로 다른 사람과 의견을 공유하기 쉬우며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죠. 저는 고2때 이미 프로그레시브 정신에 바탕을 둔 음악의 장래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그 모델로 핑크플로이, 사운드의 핵심은 현대적이면서도 헤비하고 컨셉구성을 통해여 주제를 전달하는, 한국의 모델로 next의 1,2,3,4집을 선정했습니다. 5집까지 나왔지만 5집은 저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고3에 올라와 매우 방황했던 작년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가능해지자 저는 재즈를 다시 찾았습니다. 먼저 루이 암스트롱부터 펫메쓰니까지의 재즈사를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음반을 지금 수집하고 있는중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즈 앨범이 40여개 정도 됩니다.

펫메쓰니의  offramp는 들을 떄 마다 프로그레시브해서 아트록으로 구분해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고, 쳇베이커의 불행에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재즈의 시작, 첫단계 였습니다.

 

 

메모장에서 발췌 (추천 0점)
2004-08-31 23:58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뭏든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는 더 생을 사랑한다. 집착ㅎ나다.

남에게 보여서 부끄러운 사랑은 마약밀매상적인 요소가 있다.

대낮을 견딜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전혜린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어딘가에 있는 부정을 방치하면 어디에나 있는 정의가 위협받게 된다.

-Martin Luther King Jr-

 

I disapprove i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당신의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발언할 권리는 죽을 때까지 옹호하겠다.

-Francois Marie A . Voltaire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극우 포리송의 탄원서에 서명을 했던 Chomsky도 같은 말을 하였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주장을 하든지 발언할 권리를 뺃어서는 안된다.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이어 전율을 느꼈다.

 

The Cure for boredom is curiosity

There is no cure for curiosity -Ellen Parr

권태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I never think of the future, it comes soon enought

-Albert Einstein

나는 결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미래는 충분히 일찍 오기 때문이다.

 

No man is free who cannot control himself

-Pythagoras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

 

 

문장을 암기하는 습관이 몸에 베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

메모장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은 외피에 문장이 움직인다.

잔인하게 부서진 시간의 파편을 이제는 알알이 바라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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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LA메틀이 주는 가오와 후까시의 청소년. 감화

 

누구나 락의 시작은 LA메틀이지 않을까?

신해철도 누구나 음악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이야기 소재가 LA메탈이 된다고 했다. 크게 공감한다. 그에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존나 키득키득됬으니 이렇게 완벽한 통찰이 어딨다나ㅑ?

 

재즈를 하든 불르스를 하든지 락을 하든지 국악을 핟느지 워드뮤직을 하든지 뉴에이지를 하든지 퓨전을 하든지 크로스오버를 하든지 누구나 다 청소녀 청소년기때는 LA메탈을 듣는가보다. 크게 스키드 로우 머틀리쿠루 본조지, 건젠로지스, 등 꽃미남 미국 동부 양아치풍의 새퀴들이 들려주는 말랑말랑하고 멜로딕하고 언제나 듣기 편한 LA메탈은 처음의 헤비사운들르 귀에 익히기 위해서는 좋은 아이템이 되고 만다.

 

음악에도 단게가 있다.?!~`

 

 

 

내친구들은 아지고 할로윈이든 스키도로우든그 외에 멜로디라인이 중심 구성으로 된 고음위주의 클린보컬의 음악을 듣고 잇다. 아마추어 락 구인사이트에서도 음악의 순수한 형식미만 강조하는 기타솔로가 들어가있느 에라이 메탈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 지금의 보컬수요에서 그로울링 하우링의 익스트림 보컬의 수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락을 한다? 아니면 메탈을 한다는 아이들도 고전 80년대 음악 카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멜로디에서벗어나지 못하고 고음 클린보컬과 기타솔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처음에 누구나 깔쌈한 보컬과 귀에 화악 꽃치는 멜로리에 감화받는다. 내 새대때는 스트라이퍼가 그랬고 스키도 로우가 그러했다. 아마추어 병신 새머리놈들도 전부 바흐나 스트라이퍼만 따라한다. 고음이 최고고 그 이하는 좆도 부랄도 아니라고 취급해버린다.

 

그런 시절이 있고 이제 단조의 음악이 주는 서긆므이라든지 음울함이라던지를 이해하게 된다.

 

마왕의 이야기는 아주 적절한 비유다.

 

총 몇가지의 비유를 해

ㅆ었지?

 

 

 

음식에 비유했다.

어릴때는 굴의 맛을 모른다.

크면 굴에

떫은맛 쓴맛 이딴것을 이해한단다. 술도 마찬가지란다.

술의 맛을 이해한다.

 

어릴때 나는 순대국의 맛을 몰랐다.

그냥 돈까쓰와 햄버거만 존나 좋았는데

요즘 순대국이든지 곱창전골이라든지 얼큰하게 푹푹 끓여낸것이 밥 푹 마라 먹는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풋고추를 고치장에 푹 찍어먹는 기막힘이란.

 

어릴때 깻잎의 맛을 몰랐다.

이제 고기든 회를 먹을때 깻입에 게다가 통마늘 하나 , 풋고추 하나 싸서 먹으면 기가막힌 맛이 난다. 마을새퀴때문에 눈물을 나도. 어릴때는 깻입ㅍ의 맛을 모른다. 돈까쓰나 좆같은 정크푸트 ㄷ좋아한다.

 

 

 

 

어릴때는 달콤한것을 좋아한다.

 

장조 도, 미 , 솔 로 된 음악을 좋아한다.

불협화음 하면 운다.

 

어릴때는 아이돌음악 좋아했다.

느린 템포의 발라든 ㄴ젖같았다.

룰라를 좋아했다. 댄스음악 REF등을 좋아했따.

장조의 밟은 톤의 음악들

 

그리고 이제 초딩 고학년이 되어서 발라드를 조금씩 듣기 시작했고 중학교과되어서 뉴에이지와 재즈가 주는 서글픔과 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색깔도 어릴때는 원색의 옷을 좋아한다.

빨란 노란 파란

크면 이제 쥐색이라던지 약간 칙칙한 색이 주는 안정감을 마음에 둔다.

 

 

 

어릴때는 모든 삶이 완벽하게만 진행된다.

어릴때 만화 대가리와 몸뚱이가 1대1 비율로 완벽하게 되어있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주인공은 절대 죽지않는 완전한 만화에서

 

어른들의 만화를 보게된다.

아키라가 보여주는 미래의 음울함과 좆같은 회색톤의 고통스러운 분위기

드래곤해드에서 보여준느 인간의 패닉과 집단적 환각과 폭력과 살인

 

이제 이런것ㅇ들을 이해할 수 가 있게된다.

 

 

어린이들의 삶은 완벽하기만하다.

동내 애새끼 대가리 빵구내고 집에 들어와도 집에는 맛있는 뜨끈한 밥이 차려져 있었다.

이제 동내 애새끼 대가리 빵구내면 좆된다.-_-;

 

집에 와도 구박만 존나 듣는다.

 

 

인생이란 이런것이다.

 

라고 개나소나 다 철학자인척하듯

인생에서 모든일들ㅇ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고

언제나 인생의 단계들이 어긋날때 이제 음악도 단계를 거쳐 진화를 시작한다.

 

일레븐 코드니 부슨 세븐 마이나 코드니 하는 프리재즈형식에서부터 DJango등 블루스재즈기타가 주는 음울함들을 이제 이해한다.

재프백의 커즈위 처음 도입부의 반음 내려가는 그 심오함과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불협화음을 인지하고 소화가능하게 됬다는게 이제 다 컸다는 소리인가보다.

 

 

10대
대 아이돌 땐스음악을 좋앟나ㅡㄴ것은 음악의 단계가 거기에 가잇기 때문인것이다. 내가 블루스 듣는다고 아아돌 댄스음악듣는것을 욕할 수는 없다. 아이돌댄스음악은 10대 그들에게는 효용가치가 만빵인 양질의 음식과도 같고 이미 그 단계를 지나친 자에게는 효용가치가 없을테니까.

 

그러나 한 세대가 20대가 아이돌댄스음악을 전부 듣고 있다면 이것은 적색신호다.

그 단계에서 가져야할 것을 가지지 않고 10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맹꽁하긴

 

 

몬얘기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잔/

 

 

시작은 누구나 유스곤 와일드 투헬위더 데블

헤비니스는 이미 80년대 데스에서 완성되었다. 이 이상의 스피드와 기타톤의 중후한 헤비니스는 나와있다.

지금 가장 극단적이라는것은 사운드 자체의 헤비니스가 아니라. 각각 곡의 구성에 있어서 완급조절 과 분배에서 성공하여 느끼는 긴박감에 다름아니다.

 

메틀코어를 사랑한다.

하드코어 펑크정신을 사랑한다.

나의 인생은 락 그 자체다.

 

우호호ㅔ헤ㅗㅔㅗㅔ호ㅔ헤ㅗ호ㅔ호ㅔㅗㅔ호ㅔ호ㅔ헤호ㅔ호ㅔㅗㅔ

 

F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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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ㅇ안옇

 

안녕안녕

 

 

지금 듣는것

 

하나님의 어린양

메틀코어로 분류가되

천국을 불태워 버려

 

mp3에 꼭꼭 처박아 넣어져있다.

음악과 책은 아껴서 구석에 짱박아놓아서 나중에 읽거나 듣는것이 아니다 바로 꺼내 서 바로 들어버리는것이다.

 

듀크조던의 덴마크앨범을 아낀다.

어느땐지는 모르겠지만 재즈가 너무 조아서 1년내내 재즈만 들었다. 재즈를 들으면 가슴은 텅텅터터어 비어서 구녕에서 고독이 새어나왔다. 내방은 재즈로 인테리어했고 소리와 찬바람이 꽉찬 아늑한 개인공간이 되었다. 좋아하는 앨범은 수도 없이 많았고 재즈를 꿈꾸었고 재즈와 함께 잤다. 지난 겨울은 그렇게 재즈로 빛을 내고 있다. 여름은 재즈로 벗어날 수 없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여름의 더워는 재즈의 끈적임과 따쓰함이 도달하면 금세 찜통이 되어서 방안에서 날 훈제가 되어버릴판이다. 메틀코어와 저항적 하드코어가 주는 시원시원한 분노감에 같이 달린다. 기타는 고개를 흔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모슁에 손과 팔을 휘두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깊숙히 단전깊숙히 숨어있는 전율의 신을 소리에 얹혀 놓기만하면된다. 지가 알아서 춤추고 박치고 북치고 생쑈를 벌일테니.

 

6월 4일의 아마쳐 콘썰을 잊지 못한다. 전인류를 싸잡아 욕하는 가사를 때보로 했었고 머리통은 바람만 들어갔고 허리와 모가지는 근육이 뭉쳤다. 땀으로 샤워했고 슬램붙었다가 나가떨어지고 넘어지고 했다. 엔돌핀이 온몸을 감싸고 심장은 천볼트의 전류가 흘렀다. Fucker 쉿 하울링으로 선동에 응할때는 성대마지더 흥분되어있었다. 한번더 그것을 꿈꾸었다. 부산락페만 기달렸다. 신을 죽이는 사람. 바셀린 메탈 엠프앞에 바짝서서 나의 뼈를 뒤흔들고 하늘을 울려줄것을 요구했다. 마음속. 꿈에는 나는 콘서트장에 있었다. 출렁이는 사람의 파도속에서 서핑했다.

 

시간은 지났다. 락페는 뒤안길로 사그라졌다. 태양이 진후에 남는 어둠... 부산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락페 혼자 여행이나 가야지. 돈이라도 빨리 모아서. 이번에 15만원 봉사비로 나오는것으로 5만원을 친구들에게 보내고 10만원으로 2박 3일로 남도로 다녀와야 겠다. 더위도 잊고 속세도 잊고 잠시 시간과 공간적 단절을 시도해봄이다. 쾌적한 기차 쾌적한 하향길은 오히려 속세에 연장선이다. 시간과 공간의 단절없이 업무를 쾌적한 기차에서 한다니 병신같은 새퀴들 그럼 여행은 왜가는데?

 

산도 알아봐야지 이번 가을동안에 있을 산도 알아봐야한다. 산에서 9월 10월 11월 약 3달은 거주하면서 친구먹어야지. 산안에 들어가서 잠시동안 머물르며 지금까지의 생을 정리하고 다음의 불가능한 꿈들을 구체화시켜내는 작업을 해야지. 한손에는 꼬란 한손에는 칼? 아니다 한손에는 자본론 한손에는 펜이다. 가을속에 접합되는 회색지대에서 다리를 나란히 놓고 계곡에 둥둥떠서 소리를 지르기. 맨발로 한손에 책을 잡고 이리저리 사찰을 돌아댕기며 읽기. 물구나무 서서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밟기. 정상까지 15분만에 뛰어갔다오기. 성대가 날아가라 소리지르고 또 지르고해서 성대안에 상처가 덧나고 덧나서 말소리까지 뒤바뀌게 하기. 좋은 음반 20 전부 외어서 내려오리라. 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_ㅇ

 

맹자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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