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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1
    계란한판(6)
    로젤루핀
  2. 2007/11/15
    불타는 듯, 선연한 빛(1)
    로젤루핀
  3. 2007/10/29
    몇가지 의문점들, 그리고...(3)
    로젤루핀

계란한판

 

 

1.

지난달,

코스콤 비정규지부 단식농성투쟁 하루연대하러(릴레이 단식농성) 망루에 올라 한나절을 보낼 때였다.

 

 

"젤루 큰 어려움이 뭐예요?"

 

한평 남짓한 망루에는 굶은지 아흐레되는 부지부장과 나, 그리고 조합원한분(편의상 '아스테릭스'라고 하겠음^^) 이렇게 세명이 있었는데,

아스테릭스 동지한테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조합엔 가입하게 되었느냐, 가입해보니 어떠느냐, 등등...

매우 상투적인^^; 그러나 언제나 궁금했던^^;; 점들.

그러다가, 힘든게 뭐냐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덩치 큰 아스테릭스 동지...한숨을 가만히 내쉬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이제 두달 후면 계란 한 판인데..."

 

오오~~~~~~~~!!!!

알고보니 동갑~!!!

 

반가움에 놀라움을 표했더니,

아스테릭스 동지 또다시 한숨을 가만히 내쉬더니 이런다.

 

"제가...좀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죠..."

 

^^;; 겉모습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내가 놀란거로 생각한 것이었다ㅎㅎㅎ;;;

암튼, 아스테릭스 동지는

계란한판이 되면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일텐데, 파업투쟁이 그때까지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계란한판을 훨씬 넘어 40대 50대 조합원도 있으니, 그런 고민은 크게 내색은 못하지만서도 말이다.

 

 

끝을 바라보면서 하는 싸움은 아닐테니, 끝에 연연해하지는 말자고

또 언제 끝이 오겠느냐 싶을 때, 문득 끝이 오기도 하는 거 아니냐고

힘내자고

나는 그런 말로 응답했다. 역시나 매우 상투적인;; 그러나 진실일 수밖에 없는...

 

 

 

 

 

2.

오늘은,

12월의 첫 날이자 올해를 꼭 한달 남겨둔 날이다.

 

 

요즘 나는 새로운 한 가지를 깨닫는 중이다.

평생 노동자로 일하면서 지루하고 무력한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가를.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두려운 게 뭔지 아나? 겉보기에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적 삶을 견디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밥을 위해 노동 속에 숨죽이며 사는 것이야말로 질기면서도 강하게 인간을 단련시켜주는 모루인 셈이다.

한 순간 불꽃처럼 타다가 사라지는 불나비 같은 인생, 나 역시 이런 신기루 같은 꿈을 꾸고 살았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이제는 신기루가 아닌 진짜 현실이란 꿈을 꾸면서 살고 싶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식은 다음에서야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듯이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이 식은 다음에서야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더냐?

일상적 삶이 그런 거라면 이제야말로 평생이 걸릴지 모르는 긴 기다림의 출발지점에 선 셈이라고 볼 수 있겠지.

 

 

집회에 다녀와서, 읽던 소설책을 펼쳐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퍽이나 방황하던 주인공이 마음을 다잡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편지속의 이야기는, 마치 날더러 들으라고 쓰여진 것만 같았다.

 

불나비 같은 인생일 줄 알았는데...

한몸 불사를 마음은 진즉 갖추어놓았는데...

 

그러나 막상 현실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너무나 지리멸렬하고 또한, 구차했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려면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놓아야 할 터,

열심히 살아서 자리를 잡겠노라고 다짐했는데...

 

그러나 막상 나는,

계속 미끄러지는 듯 했고 헤매이고 맴돌고만 있는 듯 했다.

 

 

이게 아닌데...아닌거 같은데...

뭔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에 사실 퍽이나 괴로웠다.

 

그러나 서른을 코 앞에 두고서야

이제야말로 시작,인 것이로구나ㅡ깨닫게 되고 있다.

비로소 시작이니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자괴감 따위 부질없는 것이겠구나ㅡ여유있을 수 있게 되고 있다.

 

마음이 평온하다.

서른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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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듯, 선연한 빛

 

 

1.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하더라도, 가을이 되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교정만은 그대로여서ㅡ 반가웠다.

 

삼거리 즈음에 이르러서일까.

 

불타는 듯, 선연한 빛에 잠시 넋을 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들고 있던 목도리가 온데간데 없다.

 

아무리 주위를 휘휘 둘러봐도

없다. 사라졌다.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을 뵈 준 대신

그 잎을 떨군 나무가 가져가버렸나 보다ㅡ생각하기로 했다.

 

 

 

 

 

2.

 

오늘은 故정해진 열사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었다.

열사의 한이 아직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보내...

어떻게 묻어...

 

그렇게 보내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한 열사가 몇이던가...

 

대신 나는 코스콤 비정규직 지부 출근투쟁에 결합하기로 했다.

오늘로 단식농성 17일째가 되는 부지부장 동지도 뵐 겸...

 

망루에 올라가 몇마디 인사를 나누고 그러는데

부쩍 수척해진 동지의 바싹 마른 입 안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농성장 바깥으로 보이는 단풍이 너무 곱다고.

 

짙은 안개 때문인지,

오늘따라 농성장 옆 단풍이 더욱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이긴 하더라.

 

그런데 내 눈엔

그 단풍말고도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동지여, 사랑한다"

망루에서 내려와 가까이에서 보다보니

나뭇가지에 묶인 색색의 천쪼가리에 매직으로 쓰인 글씨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너무 곱고 아름답더라...

 

 

 

 

3.

 

몇해전 하루걸러 하루꼴로 열사가 나던 그때, 그때에도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의 가을 나무 색이 너무나도 고왔는데

 

그땐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감정조차 사치로 여겨지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ㅡ

먼저 가신 열사들의 몫까지 더해서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느끼고

고운건 곱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더욱 생기있게, 살아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그렇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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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의문점들, 그리고...

 

 

 

열사에 대한 예의란?

 

 

열사가 결국 운명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길 잠시, 

조합원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그것마냥 내질러지는 외마디 비명이 아프게, 검은 밤하늘을 맴돌았다.

 

그리고 지도부는 열사의 시신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기로 방침이 정해졌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열사가 몸에 불이 타오르던 그 순간 외쳤던 "임단협 꼭 승리해야 합니다"의 바로 그 임단투 현장을 버려두고, 거점을 사수하지 못하고, '해산'한다는 것, '퇴각'한다는 것에 다름아니었고.

 

조합원들은 그 방침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거센 반발이 여기저기서 분출했다.

 

그러자 지도부는

"동지들! 지침에 따라주십시오!"

라는 '명령'을 반복했고

 

더불어서, 지침에 따르지 않는 것은 열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몰아갔다.

 

그러나 나는 의아해졌다.

 

열사에 대한 예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열사의 뜻을 받든다는 것이 아닌가?

 

비록 열사의 육신은 서울의 병원에 있지만,

바로 열사의 뜻은 인천의 임단투 현장에 있는 것 아니었던가?

 

열사가 온몸을 불사질러 확보해낸 거점을 결연히 사수하고 반드시 임단투를 승리하는 것,

그리고 인천지역 건설노조 전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국의 비정규직 투쟁으로 상승시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열사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거점을 사수할 그 어떤 입장과 계획도 밝히지 않고

열사가 분신하신 이후로 종일 현장을 사수하다가 연행된 조합원들의 석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도 밝히지 않고

서울로 가야하는 명분에 대한 토론과 설득은 커녕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떠나자고 하는 명령,

그것이 어떻게 열사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는지?

 

 

 

 

 

2003년과 2007년. 무엇이 달라진건가?

 

 

2003년 10월 26일, 이용석 열사는 비정규노동자 대회 중 분신을 하셨고

그 불꽃은 결국 근로복지공단 비정규투쟁의 승리를 넘어서 전체 비정규투쟁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하던 대오는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마냥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거리 곳곳에서 이 치떨리는 현실을 알려냈고, 근로복지공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2007년 10월 27일, 또 한분의 열사가 비정규노동자 대회가 치루어지던 날 분신을 하셨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 및 문화제는 예정대로, 일정에 차질이 없이, 내용과 기조에도 그닥 변화가 없이, 그 대 로 그 자리에서 진행이 되었다.(물론 '결국 열사가 운명하시자' 문화제는 중단되고 병원으로 대오가 이동하기는 하였지만.(만약 운명하시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대로 진행이 되었을텐데-!))

열사의 분신 소식은, 마치 단신뉴스처럼, 집회 중간에 보고되었을 뿐이다.

 

2003년과 2007년, 무엇이 달라진건가?

무엇이 달라졌길래 우리의 태도는 이토록 달라진건가?

 

 

 

 

 

 

비정규투쟁을 '사수'한다는 것?

 

 

집회가 끝나고 문화제가 시작되려는 때에

저녁식사를 하러, 혹은 다른 일정으로 적지 않은 대오가 이탈되었고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여의도 전체에 울려퍼졌다.

 

"동지들!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불만많으시죠? 그래도 자리를 사수해주십시오!"

 

그 말은 아무래도 인천을 가야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동중이던 우리의 뒷통수에도 와서 꽂혔다.

문화제를 그 자리에서 보지 않고 열사가 분신하신 그 현장, 전기원 비정규직 동지들이 연행을 불사하면서 사수 중인 그 현장으로 이동 중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불만세력'이었던가?

의문이다.

 

대체 비정규투쟁의 '사수'란 무엇인지?

의문이다.

 

 

 

 

 

 

비정규열사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누구의 몫인가?

 

 

그렇게 인천으로 향해서 밤을 새고, 아침에 서울로 올라와서 병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그리고 나는 다른 동료들과 헤어져, 반전집회로 향했다.

몹시도 피곤했지만, 반전집회도 비정규직투쟁 못지 않게 중요하기에,

그리고 집회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어제오늘의 일들을 알리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러나ㅡ

반전집회 내내 극심한 혼란과 의아함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 반전집회라니!!

 

 

집회가 시작되기 전,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한 동지에게,

비정규열사가 어제 분신하셨고 결국 운명하셨음을 사회자가 알리도록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노무현이가 밖으로는 이라크 민중을 죽이고 있고 안으로는 이처럼 노동자민중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이는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했다.

 

그러나 집회가 한참 진행되어도 영 기미가 없어서 다시 확인을 했더니

좀 그렇다, 라는 것이다.

 

뭐가 '좀 그렇다'라는 것인지?

 

 

 

결국 비정규열사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비정규직들만의 몫인건가?

반전평화가 결국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달성되는 것이라 했을때, 거기에 비정규직의 자리는 없는가?

 

 

 

 

 

 

 

 

 

그리고....

 

그러나 답은 결국 바로 그 순간, 그 장소, 그이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다.

 

 

열사가 분신하신 그 자리에서 모두 해산하라는 방침을 따를 수 없었던 전기원분과 조합원들은

결국 그 자리에 남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왜 남은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한 조합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했다.

 

"22900볼트라는 고압전선 사이에 들어가 작업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전류에 감전되어 몸에 불붙은 동료들을 전선 사이에서 꺼내어,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는 일은 부지기수로 겪어 봤지만,

그러나 제 스스로 몸에 불붙인 모습은, 저 처음 봤습니다.

이 자리, 사수합시다.

동지의 유언을 꼭, 지킵시다."

 

열사를 바로 눈 앞에서 잃은 조합원들은

결국 그 누구보다도 열사의 뜻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열사의 뜻을 받아안는다는 것은 무언지, 에 대해

첫번째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그 순간 그 장소 그이들을 통해 확인하다.

 

 

 

이제는

나머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나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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