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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한판

 

 

1.

지난달,

코스콤 비정규지부 단식농성투쟁 하루연대하러(릴레이 단식농성) 망루에 올라 한나절을 보낼 때였다.

 

 

"젤루 큰 어려움이 뭐예요?"

 

한평 남짓한 망루에는 굶은지 아흐레되는 부지부장과 나, 그리고 조합원한분(편의상 '아스테릭스'라고 하겠음^^) 이렇게 세명이 있었는데,

아스테릭스 동지한테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어떻게 조합엔 가입하게 되었느냐, 가입해보니 어떠느냐, 등등...

매우 상투적인^^; 그러나 언제나 궁금했던^^;; 점들.

그러다가, 힘든게 뭐냐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덩치 큰 아스테릭스 동지...한숨을 가만히 내쉬면서 이렇게 말문을 연다.

 

"이제 두달 후면 계란 한 판인데..."

 

오오~~~~~~~~!!!!

알고보니 동갑~!!!

 

반가움에 놀라움을 표했더니,

아스테릭스 동지 또다시 한숨을 가만히 내쉬더니 이런다.

 

"제가...좀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죠..."

 

^^;; 겉모습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내가 놀란거로 생각한 것이었다ㅎㅎㅎ;;;

암튼, 아스테릭스 동지는

계란한판이 되면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일텐데, 파업투쟁이 그때까지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계란한판을 훨씬 넘어 40대 50대 조합원도 있으니, 그런 고민은 크게 내색은 못하지만서도 말이다.

 

 

끝을 바라보면서 하는 싸움은 아닐테니, 끝에 연연해하지는 말자고

또 언제 끝이 오겠느냐 싶을 때, 문득 끝이 오기도 하는 거 아니냐고

힘내자고

나는 그런 말로 응답했다. 역시나 매우 상투적인;; 그러나 진실일 수밖에 없는...

 

 

 

 

 

2.

오늘은,

12월의 첫 날이자 올해를 꼭 한달 남겨둔 날이다.

 

 

요즘 나는 새로운 한 가지를 깨닫는 중이다.

평생 노동자로 일하면서 지루하고 무력한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가를.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두려운 게 뭔지 아나? 겉보기에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적 삶을 견디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밥을 위해 노동 속에 숨죽이며 사는 것이야말로 질기면서도 강하게 인간을 단련시켜주는 모루인 셈이다.

한 순간 불꽃처럼 타다가 사라지는 불나비 같은 인생, 나 역시 이런 신기루 같은 꿈을 꾸고 살았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이제는 신기루가 아닌 진짜 현실이란 꿈을 꾸면서 살고 싶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식은 다음에서야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듯이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이 식은 다음에서야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하지 않더냐?

일상적 삶이 그런 거라면 이제야말로 평생이 걸릴지 모르는 긴 기다림의 출발지점에 선 셈이라고 볼 수 있겠지.

 

 

집회에 다녀와서, 읽던 소설책을 펼쳐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퍽이나 방황하던 주인공이 마음을 다잡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편지속의 이야기는, 마치 날더러 들으라고 쓰여진 것만 같았다.

 

불나비 같은 인생일 줄 알았는데...

한몸 불사를 마음은 진즉 갖추어놓았는데...

 

그러나 막상 현실은,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너무나 지리멸렬하고 또한, 구차했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려면

내가 먼저 자리를 잡아놓아야 할 터,

열심히 살아서 자리를 잡겠노라고 다짐했는데...

 

그러나 막상 나는,

계속 미끄러지는 듯 했고 헤매이고 맴돌고만 있는 듯 했다.

 

 

이게 아닌데...아닌거 같은데...

뭔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에 사실 퍽이나 괴로웠다.

 

그러나 서른을 코 앞에 두고서야

이제야말로 시작,인 것이로구나ㅡ깨닫게 되고 있다.

비로소 시작이니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자괴감 따위 부질없는 것이겠구나ㅡ여유있을 수 있게 되고 있다.

 

마음이 평온하다.

서른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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