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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의문점들, 그리고...

 

 

 

열사에 대한 예의란?

 

 

열사가 결국 운명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길 잠시, 

조합원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그것마냥 내질러지는 외마디 비명이 아프게, 검은 밤하늘을 맴돌았다.

 

그리고 지도부는 열사의 시신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기로 방침이 정해졌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열사가 몸에 불이 타오르던 그 순간 외쳤던 "임단협 꼭 승리해야 합니다"의 바로 그 임단투 현장을 버려두고, 거점을 사수하지 못하고, '해산'한다는 것, '퇴각'한다는 것에 다름아니었고.

 

조합원들은 그 방침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거센 반발이 여기저기서 분출했다.

 

그러자 지도부는

"동지들! 지침에 따라주십시오!"

라는 '명령'을 반복했고

 

더불어서, 지침에 따르지 않는 것은 열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몰아갔다.

 

그러나 나는 의아해졌다.

 

열사에 대한 예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열사의 뜻을 받든다는 것이 아닌가?

 

비록 열사의 육신은 서울의 병원에 있지만,

바로 열사의 뜻은 인천의 임단투 현장에 있는 것 아니었던가?

 

열사가 온몸을 불사질러 확보해낸 거점을 결연히 사수하고 반드시 임단투를 승리하는 것,

그리고 인천지역 건설노조 전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국의 비정규직 투쟁으로 상승시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열사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거점을 사수할 그 어떤 입장과 계획도 밝히지 않고

열사가 분신하신 이후로 종일 현장을 사수하다가 연행된 조합원들의 석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도 밝히지 않고

서울로 가야하는 명분에 대한 토론과 설득은 커녕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그대로 자리를 떠나자고 하는 명령,

그것이 어떻게 열사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는지?

 

 

 

 

 

2003년과 2007년. 무엇이 달라진건가?

 

 

2003년 10월 26일, 이용석 열사는 비정규노동자 대회 중 분신을 하셨고

그 불꽃은 결국 근로복지공단 비정규투쟁의 승리를 넘어서 전체 비정규투쟁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당시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하던 대오는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마냥 일시에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거리 곳곳에서 이 치떨리는 현실을 알려냈고, 근로복지공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2007년 10월 27일, 또 한분의 열사가 비정규노동자 대회가 치루어지던 날 분신을 하셨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 대회 및 문화제는 예정대로, 일정에 차질이 없이, 내용과 기조에도 그닥 변화가 없이, 그 대 로 그 자리에서 진행이 되었다.(물론 '결국 열사가 운명하시자' 문화제는 중단되고 병원으로 대오가 이동하기는 하였지만.(만약 운명하시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대로 진행이 되었을텐데-!))

열사의 분신 소식은, 마치 단신뉴스처럼, 집회 중간에 보고되었을 뿐이다.

 

2003년과 2007년, 무엇이 달라진건가?

무엇이 달라졌길래 우리의 태도는 이토록 달라진건가?

 

 

 

 

 

 

비정규투쟁을 '사수'한다는 것?

 

 

집회가 끝나고 문화제가 시작되려는 때에

저녁식사를 하러, 혹은 다른 일정으로 적지 않은 대오가 이탈되었고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여의도 전체에 울려퍼졌다.

 

"동지들!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불만많으시죠? 그래도 자리를 사수해주십시오!"

 

그 말은 아무래도 인천을 가야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동중이던 우리의 뒷통수에도 와서 꽂혔다.

문화제를 그 자리에서 보지 않고 열사가 분신하신 그 현장, 전기원 비정규직 동지들이 연행을 불사하면서 사수 중인 그 현장으로 이동 중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불만세력'이었던가?

의문이다.

 

대체 비정규투쟁의 '사수'란 무엇인지?

의문이다.

 

 

 

 

 

 

비정규열사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누구의 몫인가?

 

 

그렇게 인천으로 향해서 밤을 새고, 아침에 서울로 올라와서 병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그리고 나는 다른 동료들과 헤어져, 반전집회로 향했다.

몹시도 피곤했지만, 반전집회도 비정규직투쟁 못지 않게 중요하기에,

그리고 집회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어제오늘의 일들을 알리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러나ㅡ

반전집회 내내 극심한 혼란과 의아함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사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 반전집회라니!!

 

 

집회가 시작되기 전,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한 동지에게,

비정규열사가 어제 분신하셨고 결국 운명하셨음을 사회자가 알리도록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노무현이가 밖으로는 이라크 민중을 죽이고 있고 안으로는 이처럼 노동자민중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이는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했다.

 

그러나 집회가 한참 진행되어도 영 기미가 없어서 다시 확인을 했더니

좀 그렇다, 라는 것이다.

 

뭐가 '좀 그렇다'라는 것인지?

 

 

 

결국 비정규열사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비정규직들만의 몫인건가?

반전평화가 결국 노동자민중의 손으로 달성되는 것이라 했을때, 거기에 비정규직의 자리는 없는가?

 

 

 

 

 

 

 

 

 

그리고....

 

그러나 답은 결국 바로 그 순간, 그 장소, 그이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다.

 

 

열사가 분신하신 그 자리에서 모두 해산하라는 방침을 따를 수 없었던 전기원분과 조합원들은

결국 그 자리에 남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왜 남은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한 조합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했다.

 

"22900볼트라는 고압전선 사이에 들어가 작업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전류에 감전되어 몸에 불붙은 동료들을 전선 사이에서 꺼내어,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는 일은 부지기수로 겪어 봤지만,

그러나 제 스스로 몸에 불붙인 모습은, 저 처음 봤습니다.

이 자리, 사수합시다.

동지의 유언을 꼭, 지킵시다."

 

열사를 바로 눈 앞에서 잃은 조합원들은

결국 그 누구보다도 열사의 뜻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열사의 뜻을 받아안는다는 것은 무언지, 에 대해

첫번째 의문에 대한 답을

바로 그 순간 그 장소 그이들을 통해 확인하다.

 

 

 

이제는

나머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나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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