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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듯, 선연한 빛

 

 

1.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많은 것이 변했다 하더라도, 가을이 되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교정만은 그대로여서ㅡ 반가웠다.

 

삼거리 즈음에 이르러서일까.

 

불타는 듯, 선연한 빛에 잠시 넋을 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들고 있던 목도리가 온데간데 없다.

 

아무리 주위를 휘휘 둘러봐도

없다. 사라졌다.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을 뵈 준 대신

그 잎을 떨군 나무가 가져가버렸나 보다ㅡ생각하기로 했다.

 

 

 

 

 

2.

 

오늘은 故정해진 열사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었다.

열사의 한이 아직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보내...

어떻게 묻어...

 

그렇게 보내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한 열사가 몇이던가...

 

대신 나는 코스콤 비정규직 지부 출근투쟁에 결합하기로 했다.

오늘로 단식농성 17일째가 되는 부지부장 동지도 뵐 겸...

 

망루에 올라가 몇마디 인사를 나누고 그러는데

부쩍 수척해진 동지의 바싹 마른 입 안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농성장 바깥으로 보이는 단풍이 너무 곱다고.

 

짙은 안개 때문인지,

오늘따라 농성장 옆 단풍이 더욱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이긴 하더라.

 

그런데 내 눈엔

그 단풍말고도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동지여, 사랑한다"

망루에서 내려와 가까이에서 보다보니

나뭇가지에 묶인 색색의 천쪼가리에 매직으로 쓰인 글씨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너무 곱고 아름답더라...

 

 

 

 

3.

 

몇해전 하루걸러 하루꼴로 열사가 나던 그때, 그때에도 불타는 듯 선연한 빛의 가을 나무 색이 너무나도 고왔는데

 

그땐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감정조차 사치로 여겨지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ㅡ

먼저 가신 열사들의 몫까지 더해서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고 느끼고

고운건 곱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더욱 생기있게, 살아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그렇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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