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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힘

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 엄마와 시를 전공했지만 전혀 시적으로 살지 않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유니.

그래서 표현력이 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20개월을 전후로 말을 배우기 시작해서 33개월이 된 요즘 "오늘은 너무 슬퍼서 우유를 한 잔 더 마셔야겠어~!"와 같는 말로 엄마 아빠를 깜짝 놀래키는 딸내미.

100일 무렵부터 마눌님이 일주일에 이틀 일을 시작했다. 누구 말대로 아이 등에 센서가 달려 있는 모양인지, 20층 아파트를 두세 번 오르락 내리락 해서 겨우 잠이 든 아이는 눕히기 무섭게 눈을 반짝 뜨고 울기 시작했고 200mm 우유의 3분의 1인 내 옷에, 3분의 1은 잠자리에 토하기 일쑤였다.  
 

어떤 이는 아이를 키우며 베란다에서 던져버리고 싶었던 욕망을 억눌렀던 때가 하루이틀이 아니라고 자백하기도 했지만 소심한 나는 일주일에 이틀이었던 그 육아의 나날, 침대 메트리스 아무리 속이 상해도 10cm 높이에서 낙하시키는 걸로 분을 삭혀야 했다.  


아이도 힘들었지만 못지 않게 나도 힘들었던 그 2개월 정도의 나날이 지나자 둘 다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애기띠에서 고난이도의 포대기 업기를 성공했던 어느 한낮. '진주난봉가'를 자장가 삼아 들려주고, 아이를 배위에 올려놓고 네 시간 가까이 같이 낮잠을 자다 눈을 뜬 해거름. 스케줄에 맞춰 아이를 재우는데 성공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베란다에서 피웠던 담배 한 모금.  


작년 9월,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이 아닌 하루, 그것도 겨우 두세 시간 정도 아이를 내가 볼 따름이지만 육아는 아직도 서툴고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제 석달 뒤에 다시 둘째가 태어나고... 


마눌님의 둘째 임신소식을 접하고 잠시 우울했다. 여성들이 출산의 고통을 잊듯이 나도 그 시절, 그 전쟁 같던 이틀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날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둘째 벼리가 나오면 이틀이 아니라 삼일을 내가 맡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관계는 존재를 변화시킨다. 그게 새삼 놀랍다. 그런데 그 변화는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이랬던 아이가 30여 개월 만에... 

  
... 이렇게 되듯이...  또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4.19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의 간악한
신념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이 아닐 거다

<1967.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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