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애기들입니다.'에 해당되는 글 4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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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캐너 고장 2007/01/05
- 그래... 20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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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 (3) 20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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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007/01/03
- 1월 3일 수요일 흐림 2007/01/03
- 6.25 노래 2007/01/02
조낸 행복한 인생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블로깅이나 와우를 하고
손에서 1m 거리안에 있는 책들을 꺼내 중간중간 읽어주고
키보드에 얹혀있는 손 바로 옆에는 냥들의 귀여운 자태.
청소도 안하고 밥도 잘 안하고,
설겆이는 김상이 직접 하시오, 라고 개토가 먹은 밥그릇을 남겨두는
굉장한 인생이다.
인생의 황금기랄까.
이런 인생을 꿈꾸어 왔던 거잖아...
아마도 1월안에 이 행복은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이 즐겨야지...
만렙 찍어야지...
허거....글쓰고 나서 오늘 포스트한 글 수를 확인했는데, 7개다.......................
일곱개.
뭐 대단한 내용은 없으나 대략 1시간에 한번꼴로 올리고도 더 한 셈이다.
아주 신이 났구만...
여차 저차 하여
안팎으로 대대적인 변화를 줄 마음으로
블로그 이름도 바꾸고 블로그 이미지도 바꾸고 설명글도 바꾸고
기타 등등 바꾸려고 했는데,
스캐너가 고장났다.
사실 스캐너는 고장난지 이주일이 넘었다.
언제 산건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6살은 넘은 것 같은데
스캐너 나이 6살이면 늙은건가?
고치는 비용보다 사는게 쌀거라는 조언을 AS센터 아저씨한테 듣기는 했는데,
잠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무난한 스캐너 하나 사려면 10만원쯤 필요한 것 같다.
현 시점의 개토에게는 10만원이 무지 무지 큰 돈이다.
다음주부터 잘 하면 돈을 벌지도 모르지만,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고...
흠......
일단 디카로 어떻게든 개겨보고...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이 나를 인정하는가
내가 그들을 인정하는가
너는 아주 넓은 의미에서 좌파인가
좌파가 아니라면 이곳에 있을 수 없는 건가
명확하게 적으로 판명되지는 않지만 거북한 '너'라는 존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나는 그들의 저항을 지지하지만, 나 스스로가 그들의 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
나는 좌파이고 동시에 좌파가 아니며
아나키스트이기 때문에 아나키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결코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나역시 결코 그들중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인데
몇년이라는 시간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숫자일 뿐이다.
좌파라고 스스로를 이름짓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텍스트에 빠져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진보블로그에 올라온 글들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텍스트를 맹신하는가 혹은
남들이 다 읽은 텍스트를 읽지 못할까봐 안달인가, 혹은 텍스트에서 답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에 대해 강박증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은밀하게 '텍스트의 즐거움'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순수한' 텍스트의 즐거움은 우파의 것이어서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옳은 것과 옳지않은 것, 좌파와 우파)
그들은 모든 텍스트에서 '좌파적 상상력'이라는 불가능한 장치로
(좌파적 상상력이란 불가능하다. 좌파적인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어서
그 어떤 상상도 좌파적 강령에 의거하므로 그것든 결코 상상력일 수가 없다.)
텍스트에서 도덕적 근거들을 걸러내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여송연을 피웠듯이,
그들은 그런 텍스트의 여과과정에서 나오는 불순물들을
오히려 즐기고 있으며
어쩌면 그들 대다수는 민중들보다 더 많이 즐길 기회를 가지고 있다.
한편, 과연 '순수한' 텍스트의 즐거움은 우파의 것인가?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좌파가 '중성적인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파의 손에 들어가버렸을 뿐이다.
[즐거움은 오성과 감성의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표류이자 동시에 혁명적이며 비사회적인 그 무엇으로 어떤 집단이나 심적 상태, 개인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중성적인 그 무엇? 텍스트의 즐거움이 파렴치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중 우파 중에서 -]
최근 좌파들은 그 즐거움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고
그 즐거움을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권력을 가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문학적인 어떤 텍스트도 정치적일 수 없다.
정치적이게 되는 순간 문학적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용기를 얻기 위해 바르트를 읽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결국은 어떤 나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웠을지 모르나 나 자신에게는 굉장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너무나 지지부진 하여 나는 그 싸움의 중간에 끼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몇년씩이나 넋놓고 있어야 했다.
나는 차라리 몇번씩이나 나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93년 이후에 10년이 넘게 스스로 확신해 왔던 많은 것들을 외면해야 한다.
손에 닿고 만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그들과 함께 살고 노래하고 밥을 먹고 만져주고 울고 싸우는 것.
나는 그것이 가장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게는 이 삶이다.
나는 막연하지만 확실하게, 두가지 삶을 동시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가치관과 도덕이 처음부터 없었던 곳으로 간다.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서도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춤을 추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지난 12월은 복잡한 시기였다.
나는 나자신을 꼬깃꼬깃 접어 두꺼운 백과사전밑에 쑤셔넣고
납작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이 팝콘 터지듯이 연속적이거나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12월이 되자,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보고싶던 친구가 백과사전안으로 손을 넣어 내 팔을 잡아끌었고
블로그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납작했는데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생활을 허용해주는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12월은,
내 납작해진 두 어깨에 따듯한 두 손을 얹어 더운 공기로 어깨를 부풀리고는
등을 살짝 밀었다.
자,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야.
어깨에 넣어진 바람이 너무 가벼워서
나는 날아갈까봐 나를 꼭 쥐었다.
꿈에 초코를 데리고 공산당 대회에 갔는데,
나를 빼고는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다.
다들 친철했지만
나는 조금 불편했다.
대회시작이 많이 늦어져 다과를 하는 도중에
나와 친한 친구가 하나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초코가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울어버리면 초코를 못찾을것 같아서
울지않고 가슴을 여미고 바람을 바로 맞으며 온 도시를 다 헤매고 돌아다녔다.
초코야, 초코야, 백번 쯤 불렀을 때
초코가 어떤 골목에서 나타났다.
평소처럼 천진난만, 장난가득, 무슨일 있어? 하는 얼굴로.
하지만, 초코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열심히 달려 왔다는 걸, 난 알고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오던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의겨레
뜬금없지만,
초등학교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진짜 원수에 대한 의분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서,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보았다.
나도 나름 반항적이라면 반항적인 아이였는데,
해마다 6.25 시즌에 TV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가 그렇게 강렬한 감동을 주었던 걸 보면
매체가 해내는 세뇌의 역할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주먹을 꼭쥐고 TV를 바라보면서 소리없이 적들에 대한 분노를 꾸역꾸역 배출했던 나.
북한의 나쁜 놈들을 진짜 로보트를 개발해서 꼭 무찌르고 말겠다고 다짐했었다.
가사에 대해 전혀 심의과정이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완곡한 표현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생 날고기의 느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
자극적이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이 싫었고 전쟁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했고
그 원인이 북한이라고 끝도 없이 전해듣는 과정에서
나의 분노는 모두 북한을 향해 조준되었던 것이다.
6.25 노래를 들으며 무릎꿇고 눈물흘리던 내 안의 분노는
사실 북한에 대한 미움만으로 생성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로도 풀어질 수 없는 내 안의 부모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를
노골적이고 잔혹한 가사를 통해 자극하면서 분노의 근원보다 분노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고
국가가 원하는 가상의 적을 미워하도록 만드는 속임수.
분노를 마음대로 표출하지 못하게, 그리고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출될 수 없게,
더 고상하고 거대하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표출되도록 조정하는 속임수.
거기에 속았던 내가 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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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하여도 12시간 내에는 갈 것 같은데요.;;
나비님 말씀에 한표 ^^;
왜 궁금한지가... 정말 궁금하여요. ㅜ.ㅜ
예, 저도 궁금하네요. 왜 궁금한지가??
12시간 참아볼까나
navi / 흠...과연 그럴까요?
에밀리오 / 흠...과연....?
리, 아침 / 대략 결과가 나오면 따로 이유를 써드리기로 약속하죠.
지각생 / 그냥 투표해주시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