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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

 

"그녀에 따르면 세계란 마음 깊은 곳에서 병을 앓고 있는 자신에게 창을 겨누고 서 있는, 다른 나라 말을 쓰는 흉악한 사병들과 같았다. 어쩌면 그녀가 앓고 있을 병이라는 것은 실어증과 같은 것이리라. 의사소통이란 애당초 버린 지 오래이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돌보지 않으면 곧 자신은 그 흉악한 세계에 점령 당하고 말 것이라는 절박감이 그녀에게는 확고했다." <카르타필루스> 中

 

 실어증인 사람들의 자살률이 0%에 가깝다고 하는데,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말할 거리도 없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자살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소통이란 게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 아닐까.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1970년 <성의 변증법>의 마지막에는 "이제 우리는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다시 창조할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가능한 것은 그 지식을 통하여 자살하는 것, 망각이 뒤따르는 지구상의 지옥을 창조하는 것이다."는 문구가 있단다.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이 발딛고 있는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지식으로 나와 혹은 타인과 소통하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될까. 망각이 가능하여 지옥이더라도 계속해서 숨쉬며 살 수 있다면 모르지만, 망각-내 기억에서, 내 몸뚱아리에서 뿌리까지 파내어 모두 없었던 일로 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에, 어쩌면 선택지는 매우 좁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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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에서 아침을>, 닐 조단

 

오늘 몸이 어엄청 안좋은데

아무래도 최근에 무리한듯(무리할 수밖에 없지만,, 무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_-)

어제도 미쳤다고 영화를 봐버렸다.

어뜨케, 이 순간 미치도록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걸 즐겨야지 모.

몸 한테는 좀 미안하지만!(좀 많이 미안하지만..)

 

 

-

 

플루토에서 아침을 스틸 사진 어린 시절 총 싸움

 

플루토에서 아침을 스틸 사진 어린 시절

 

 

 

<플루토에서 아침을(Breakfast on Pluto)>, 닐 조단, 2005

킬리언 머피, 리암 닐슨

 

 

-심각하고 무거운 '척' 하는 것들은 주변에 널려있었지만

사실 그냥 친구에게 보낼 편지 봉투에 써넣을 주소 하나 찾는 게 필요했던,

자신을 자신으로 제대로 봐줄 관계가 필요했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을지라도, 어느덧 그 웃음들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겠지. 

고마워요.

 



 

http://cafe.naver.com/onpluto/ 에서 구해옴

 

일단 영화내 수록곡 리스트구요(그 엔딩크레딧 마지막쯤에 나오는...)

 

“Sugar Baby Love”—The Rubettes
“Ghost Riders in the Sky”—(instrm'l; production)
“Les Girls film score”—Cole Porter  
“The Quiet Man film score”—Victor Young
“You're Such a Good Looking Woman”—Joe Dolan
“Breakfast on Pluto”—Don Partridge
“Me & My Arrow”—Harry Nilsson
“You're Breaking My Heart”—Harry Nilsson
“Running Bear”—Gavin Friday (production)
“Wig Wam Bam”—Gavin Friday (production)
“Honey”—Bobby Goldsboro
“Sand”—Gavin Friday (production)
“Me & Mrs Jones”—Billy Paul
“Fuck the British Army”—Paddy's Irish Clan
“Everyday”—Slade
“The Moonbeam Song”—Harry Nilsson
“Chirpy Chirpy Cheep Cheep  Middle of the Road  
“The Wombling Song”—The Wombles
“Freelance Fiend”—Leafhound
“Tell Me What you Want”—Jimmy Ruffin
“Feelings”—Morris Albert
“Smoke Gets in Your Eyes”—Billy Livesey
“Windmills of your Mind”—Dusty Springfield
“Caravan”—Santo and Johnny
“Children of the Revolution”—T-Rex
“No More White Horses”—T2
“For The Good Times”—Kris Kristofferson
“Dream World”—Don Downing
“For What It's Worth”—Buffalo Springfield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  Jerry Vale
“Suede Flares”—library music
“Makes You Blind”—The Glitter Band
“Rock Your Baby”—George McCrae
“In the Rain”—The Dramatics
“Madame George”—Van Morrison
“Cypress Avenue”—Van Morrison
“Various Cues”—Anna Jordan (production)
“Fly Robin Fly”—Silver Convention
“How Much is That Doggy”—Patti Page
“Handel's Zadok the Priest”—Huddersfield Choral Society  

 

 

 

 

정식 발매된 OST목록은 아래

 

 

 

  1.  Sugar Baby Love - The Rubettes
  2.  You're Breaking My Heart - Harry Nilsson
  3.  Breakfast On Pluto - Don Partridge
  4.  Me And My Arrow - Harry Nilsson
  5.  Honey - Bobby Goldsboro
  6.  Caravan - Santo & Johnny
  7.  Feelings - Morris Albert
  8.  The Windmills Of Your Mind - Dusty Springfield
  9.  Sand - Gavin Friday
  10.  Wig Wam Bam - Gavin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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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4월,

 

 

잔인한 4월이라고 하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해.

그만큼 치열할 수 있는 기회가 가득한 4월이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들도,

찾아보면 언제나 치열할 수 있지만, 4월은 특히 기회가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당신이 아프고, 힘들고, 눈물 흘린만큼

(물론 그걸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들이 더 있겠지만)

그것만큼 당신이 살아있다는 거, 당신이 무언가 하고 있고 말하고 있고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있어요 반드시.

 

언제든 투정부리고 짜증내고 분노하고

그리고 같이 웃자. 함께 살자. (<-이런 말이 무서워진지는 꽤 오래야. 가벼이 하는 말 아니라구!)

 

나도 보고 당신도 보고 우리도 보면서

그렇게 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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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어른이 된다는 게 만약,

자기 행위에 대한 명쾌한 정당화가 가능해지고

마음은 아파도, 고민은 필요없는 면죄부들이 줄지어 늘어나는 거라면

어른이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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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고뇌,

레이님의 [[테스트] 자아검색] 에 관련된 글.

 

 

운명론자, 회의론자, 결정론자.. -> 고로 은둔형.

이런 느낌. 하하하하.

 

 

 

 

 

당신은 무언가 미묘한 정신적 두려움이 항시 의심과 불안을 야기시키는데, 이것은 마음속에 무언가 고통과 죄의식을 감춘 내향적이고 고독한 은둔자 타입의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당신은 내부의 강력한 규율과 예민함을 계발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두려움, 의심, 그리고 자신감의 결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전의 삶에서 저질러진 나쁜 행위들에 대해 제한을 가하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당신은 운명지워졌다고 생각하고 사회로부터 은둔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 내부의 강한 규율은 당신의 과거 삶에 대한 부채를 상환하고자 하는 태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길에 서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밖으로 끄집어 내지 않으면 만성적인 질병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내면의 두려움이나 불안감에서 가급적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당신은 고독을 사랑하는 편이며, 일반 대중과 접촉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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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늘

'장애해방가'를 들을 수 있다면,

엠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서

3년 전, 2년 전,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노동으로 일어설 기회마저 빼앗긴 형제'가 아니라,

'동지'로 부르는 걸 들을 수 있을까?

 

문제인건 알겠는데

바꾸는건 어찌 그리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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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노체>, 구스 반 산트

 

말라노체

 

 

말라노체

 

 

 

 

말라노체, Bad Night, Mala Noche, 1985, 구스 반 산트

 

 

뺀질대는 월트, 철없는 죠니, 불쌍한 로베르토.

어쩜 좋아. 좋아, 이 사람들.

 

- 코코펀 이달의 운세에 충격받으며 종로를 걷던 4월 14일 저녁, 스폰지하우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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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자>와 뒷담화에서,

 

 

*

 

이리가라이에 대한 집담회가 끝나고 나서

알 수 없는 흥분과 끈적한 충만함,

그리고 나로 시작해서 지구 맞은 편까지 뚫어낼 듯한 공허함에 사로잡혀서,

 

 

단대에서 진행하는 420 교양 자리에 가기로 했다.

(언제든지) 보고 싶은 얼굴들도 있고

<버스를 타자> 영상물을 본다고 하기에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거의 기울고 있었지만

집담회 후의 공허함이 한 몫한 것도 틀림없다.

 

 

새내기 때 보고, 2학년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본 영상인데.

새터에선 기억이 거의 없고 새내기 때엔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엔, 그냥 '거리'란 걸 두고 보고 싶었다.

이전과 좀 '다른' 것들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정말 나는 뻘쭘해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4월실천단장이 후배이고,

기껏해야 보이는 같은 학번이라고는 단대 학생회를 하는 사람과

그를 벗어난 둘, 셋 정도의 사람들인,

'새내기에 초점이 맞춰진 듯한'

이런 자리에 참여한다는 게 '내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제쳐두고라도

어쩐지 자리가 불편하다.

 

집담회부터 같이 있던 언니를 꼬셔서

-언니한테 쪼꼼 미안했지만 언니랑 같이 있으면 내가 덜 불편할까봐-

같이 가서 영상물 시작을 기다렸다.

 

("언니, 새내기가 삼수를 해도 내가 언니란 사실이 실감이 잘 안나.."

"받아들여..")

 

 



 

영상물은, 모처럼 보게 되는 익숙한 얼굴들이 새삼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뜨끔뜨끔했다.

 

다소 이전보단 담담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

이전에 이 영상물을 봤던 때 이후에

내가 겪었던 어떤 경험들과 이 영상물이 너무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큭

 

 

어쨌든,

그래도 같이 보는 언니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건

가까스로 벗어나서 영상물을 봤다.

 

 

그냥

비단 이 영상물에만 국한되는 생각들은 아니지만,

전경들, 경찰들과의 몸싸움 장면들.. '끌려가고' '맞고' '때리는' 그런 장면들..

은 정말 혼란스럽다.

나오면 일부러 고개를 돌리거나,

그럴 필요 있나 하는 생각에 보려고 하다가도 너무 깝깝하다.

이걸 왜 보여줘야만 하나. 보여줘야 한다면 이유는 뭐고, 어느 정도의 길이가 '적당'한가.

그 상황에서도 어떤 장면들을 담아야 하는 건가.

새삼 저상버스를 처음 타게 되는 분의 환한 미소를 담은 장면이 더 소중하게 와닿는건..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을까 없을까..

 

수많은 집회에서의 발언 장면과 공무원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성별을 시각/청각적인 정보(외모, 목소리..등)로 파악하면서

괜시리 한숨이 나오고, 어쩌다 등장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더욱 눈이 가는 건 뭐..

 

딴 소리지만 대체 행정부에서 면담은 왜 있는건지.. 보여주기식이 아닌 면담들이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정말..

 

*

 

영상물을 보고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문득 궁금해져서

몇십분만 앉아있으려던 것이

 

조금씩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타이밍을 못잡기도 했지만

나름 재미있기도 해서 마칠 때까지 있어버렸다.

 

어쩌면 영상물을 본 것보다 더 .. 날 흔들어놓은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새내기들이 느끼는 듯한 발화의 압박과,

내가 보기에 마찬가지로 어떤 2학년들에게서 느껴지는 발화의 의무에 대한 압박이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

나 역시 포섭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3학년들에겐 '이젠 발화 자체의 의무에 대한 압박보단 자기 위치를 통해 스스로를 더 객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내가 나에게도 하는 그런-기대를 눈치껏 보내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다 나누고 난 다음에,

내가 있던 조에서 사회를 봤던,

sh씨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그게 계속 떠오른다.

대체 뭐가 미안했을까... 하는... 미안하다고 말한 그게 더 미안한 건가 하는.. 그런.

 

 

 

 

 

-

 

 

포스트 쓰는 거 어렵다.

글 쓰는 거 어렵다.

내 생각을 하는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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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아는데.

 

4월 30일과 5월 1일에 시험이 연속으로 잡혀버렸다.

4월 30일은 별 무리 없지만(?)

5월 1일 오전이 참 애매해서,  

혹시나 바꿀 수는 없을까, 따로 시험 볼 순 없을까 해서

선생님에게 슬쩍 물어보았는데,

내가 가고 싶은 게 있다고 말을 하자,

 

"학생에겐 공부가 제일 우선이어야지!"

라고 하시며 단칼에 내 말을 잘라버리셨다.

 

공부를 하기 싫은 게 아니고-무려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고 있는 요즘인데..-

나도 지금은 그게 우선이어야 할 것도 같은 마음은 들지만,

그게 잘 안되는 걸 어떡하라고오요@_@!!!

 

라고 짜증이 뭉클뭉클 온 몸을 감싸고 돌았지만..

 

선생님의 그런 명쾌한 말이 내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걸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건지.

 

마구 헷갈리니까

나한테 짜증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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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영원한,

 

*

 

도서관 안에서 노트북을 켜서 검색을 하다가,

블로그의 음악이 스피커로 쩌렁쩌렁 흘러나와서 당황하며 음소거시켰다.

나도 모르게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다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거 원, 죄송해라.

 

 

*

 

검색했던 것은 최승자의 <내 청춘의 영원한> 이란 詩다.

최근의, 지금의 내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 같아서 이 시가 떠올랐는데 

전문을 외우고 있진 않으므로

네이버의 도움을 받았다.

 

 

*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문득 모든 것이 두려워진다. 내 주위를 둘러싼 나와 관계한 모든 것들이. 내 세계가..

요즘 계속해서 '어서 빨리 늙고 싶다, 지금보다 더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상으로, 심정적으로, 늙고 싶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생각해보니,

지금이 괴로워서가 아닐까.

 

'바로 지금'들을 마주하지 못하고,

여기서 더 늙었을 때를, 혹은 여기서 더 젊었을 때를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지금의 괴로움을 스스로 쓰다듬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니,

어쩐지 서글펐다.

 

군대나, 해외 유학이나, 시험이나, 학생회나, 휴학이나..

무언가가 결정된 듯이 보이는(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그 모두든 그 모두가 아니든 상관없이, 내게 그렇게 보이는)

어떤 류의 상황들이 부러웠다.

내 상황과 타인의 상황을 단절시킨 채 마냥 부러워 하면서 외로워하고,

그 부러워하는 내가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성찰도 없는 게 안타까워서,

또 다른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외로웠다.

 

누군가는 내게,.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고. 네가 쉰다는 것에 어떤 말을 던질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있잖아,

난 지금 내가 '무엇을' 그만두고 쉬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조금 더 마주해야 할 때인 거 같아.

 

아자아자!!!!!
어쨌든 난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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