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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에 의한 [빈집]과 기형도를 위한 빈집

나는돌 님 덕분에 시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다시 보아도.... 내가 이 시를 접했던 것은 김현의 평론집에서. 물론 김현 사후의 일.. 세상을 떠난 시인과, 그의 죽음을 슬퍼한 평론가의 또다른 죽음 뒤에 그렇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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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기형도의 '빈집'을 위하여

 

그는 사랑을 잃었네
사랑을 잃고 봉분 하나를 그는 얻었다 하네
익명의 소문들이 그의 생애를 지우는 동안
슬픔이 창궐한 전등불 아래서
사람들은 경악의 얼굴로 술을 마셨네
아름다운 기억들이 술잔에 가득 넘쳤네
시린 별빛 아래서 이별을 고하는 동안
어떤 편안한 잠이 그의 곁에 와 누웠네
아무도 그의 사랑 찾아주지 못했네

그가 잃은 사랑 눈 먼 자의 슬픔으로 떠돌 때
사람들은 새끼처럼 꼬여 칼잠을 자고
꿈속 어느 갈피 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네
그가 찍은 삶의 구두점이
동행 없는 모습으로 텅 빈 거리를 헤매고
안개가 그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네
아무도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그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했네

 

-전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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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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