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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 감상문 두 편

내 평생, 영화 하나 보고 감상문 두 개 쓰긴 첨일세... ㅡ.ㅡ 미디어 충청 원고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거짓말처럼 보건의료단체연합의 P 부장님이 전화를 하셔서리... 이미 쓰고 있는 중이라는데도 무조건 또 쓰라니... 그 놈의 대의명분이 뭔지 참... ㅜ.ㅜ 두 개를 다 읽어본 독자라면, 내가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라도 앓고 있는 줄 알게야... 뭐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영화를 보고, 공감을 해 준다면 그냥 감내해야지...ㅡ.ㅡ 0. "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프레시안 2008. 4. 7) 앞선 필자들의 ‘식코’ 감상문들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이다. 오늘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야 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한 체계 안에서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보험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의 청구를 부당하게 기각했노라고 고백하는 의사의 얼굴에 드러난 자괴감, 병원비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좋아라하는 환자 가족에게 보험 지급 거절이라는 청천벽력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전화 상담원의 눈물, 약관 위반을 찾기 위해 저승사자처럼 환자들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추심인의 냉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돈 때문에 환자를 내다버리고는 어쩔 수 없노라고 변명하는 병원 경영진의 피곤한 표정... 한편 90년대의 대대적인 인수합병 전쟁 후 본격적인 ‘영리산업’이 되어버린 보건의료 체계 속에서 고뇌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닥터 솔로몬(Solomon)의 딜레마』(미국 PBS 제작, 2000년)에 잘 그려져 있다. 보스턴의 토박이 솔로몬은 나비넥타이와 깨끗한 흰 가운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이다. 환자들의 평판도 좋아 지역 100대 명의(名醫) 목록에도 빠지지 않는 그였지만, ‘케어그룹(CareGroup)’에 속하고 나서 곤혹스러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부인과 암이 발견되어 상급 병원으로 의뢰가 필요했던 그의 환자는 ‘케어그룹’에 속하지 않은 병원으로 가고 싶어 했다. 안 될 일이다. 보험회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병원은 안 된다고 솔로몬이 이야기하자, 환자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돈 때문에 저를 그리로 보낼 수 없다는 거죠?” 솔로몬은 “네, 그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14년 된 단골 환자와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버렸다. 또 다른 의사, 케어그룹의 진료부장인 닥터 사알(Saal)은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처음에는 의사가 직접 경영진이 되니 든든하다고 좋아하던 동료 의사들이, 이제는 자기를 예전의 보험회사 직원 보듯이 하며 “도대체 그 일을 왜 하고 있냐?”며 비아냥댄다는 것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아픈 이들과 그들 가족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돈만 밝히던 보험회사의 행태를 스스로 반복하고 싶은 의사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캐나다 혹은 쿠바 사람들에 비해 원래 ‘못된’ 사람들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착한 아들딸이고 존경받는 부모이며 따뜻한 이웃이자 동료인 이들이 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저 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인데... 자, 이제 오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차례다. 내 옆 침대에 누워있던 이웃 환자가 어느 날 병원비 때문에 강제로 쫓겨나는 모습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자신이 있는가? 눈물로 애원하는 환자 가족들에게, 약관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릴 자신이 있는가? 단골 환자의 눈을 마주하면서, 계약 조건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내 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료 의사에게 돈! 돈! 돈! 채근할 자신이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나 체계가,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을 괴물로 혹은 천사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나 체계를 선택하고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다. 미국 사회를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서로에게 괴물은 되지 말자.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이었던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하는 그런 괴물은 되지 말자. 무엇을 위해 우리가 그렇게 변해야 하는가?


수다스러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가 드디어 개봉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미국의 황당한 의료보험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국만의 비극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이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경험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병원비를 이유로 환자를 내다 버리고, 일하다 잘린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여야 할지 가격표에 따라 골라야 한다니 말이다. 나 또한 감독 특유의 선정적인 연출 때문에 ‘허걱!’ 하기는 했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미국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엄연한 사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국, 캐나다, 프랑스,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를 지상천국처럼 그린 것은 매우 못마땅하다. 캐나다의 기나긴 대기자 명단 문제는 캐나다 좌파들도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이며, 외국인들이 쿠바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한다. 더구나 미국의 오래된 봉쇄정책 때문에 건물과 장비는 낡았고 의약품은 풍족하지 못하다. 지구 상 어디에도 완벽한 보건의료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마다 나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그러나 미국의 문제는 그 중에서도 단연 특별하다. 몇 가지 간단한 통계를 살펴보자. 가난한 쿠바와 비교당하는 것에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 소위 선진국이라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려 한다. 미국이 연간 보건의료비에 쓰는 돈은 약 1조 7천억 달러, 국민 1인당 평균 6,037 달러 (약 600만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2%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OECD 29개국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평균 2,515 달러에 불과하며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8.7% 밖에 안 된다 (2004년 기준).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데 과연 그 성적은 어떨까? 미국에서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은 약 4천 6백만 명(전체 국민의 약 16%)으로 대한민국 총 인구와 비슷하다 (미국 보건부 2005). 국가 간 건강 수준 비교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 중 하나인 영아 사망률 (출생아 1천 명 중 만 1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영아의 수)을 살펴보면, OECD 평균이 6.1명인데 비해 미국은 7.0명으로 30개국 중 25등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뒤에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멕시코, 터키가 있다 (2002년 기준, OECD Health Data 2007).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물론 건강 수준이 보건의료체계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이 이 지경에 된 데에는 시장 중심의 보건의료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소리다. 오히려 참신함과 기발함에서라면 이러한 미국의 상황을 본받아 보건의료 산업을 ‘선진화’시키겠다는 우리네 ‘참여’ 정부와 그 뒤를 이은 ‘섬기는’ 정부가 단연 앞선다. 그나마 취약한 건강보험 제도를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더욱 튼튼하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어차피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기 힘드니 사보험으로 이를 보완하자는 그 깜찍한 발상 말이다. 그 분들은 미국의 모습이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표준이라는 신심(信心)을 갖고 계신 게 틀림없다. 눈과 귀를 닫고 오로지 시장과 미국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신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나 되는데도 의료보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나, 보험료 부담 때문에 국제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불만, 그 보수적이라는 미국 의사들조차 과반 수 이상이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지한다는 소식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얼마 전에 개봉했던 또 다른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추억의 바가지 머리를 한 살인마가 등장한다. 희생자들은 이유 없는 자신들의 죽음 앞에서 살인마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You don't have to do this!)” 영화 『식코』를 보고 나면 당신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꼭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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