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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참가 후기

지난 8월 말에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럽 자살 및 자살행동학회'에 다녀왔다. 자살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햇수로 이제 만 3년째... 혼자 자료 분석만 하다보니, 도대체 전체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더랬다. (소위 mega theory 추종자로서, 전모를 파악해야 속이 시원 ㅡ.ㅡ;;) 학회 프로그램이 다소 미심쩍은데다 (지나치게 임상심리학적 접근처럼 보였음), 지난 6월에도 북미 역학회에 다녀왔고 산적한 일 만빵에... 갈까말까 잠시 고민도 했으나 첫 해외학회 갈생각에 한껏 들떠있는 연구원 샘을 보니 차마 포기하겠다는 말이 안 나왔음 ㅡ.ㅡ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매우 유익한 학회였다고 생각... 역학적 연구설계 부분은 다소 취약해보였지만 생물학적 요인부터 문화적 요인, 임상심리학적 접근과 자살 수단 차단, 자월활동 조직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폭넓게 들을 수 있었음. 참고할만한 문헌들도 많이 파악하고.... 근데 학회가 참 훈훈하더라... 뭐랄까... 엄청난 시련과 자기결정의 시험대 앞에 섰던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들을 떠나보내거나 혹은 붙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포스랄까? 역학회와는 다르게,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 심포지엄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학회원 - 임상의사이자 시인 겸 가수로, 연구자로 엄청 열성적인 활동을 벌여왔고 이번 학회에도 초록을 8개나 냈다던데 -을 위한 추도행사를 하는 거 보고 쫌 놀랐다. 그리고 발표 연제들도, 양적/질적 연구 결과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경험이나 앞으로의 실천 계획 등도 상당히 발표되었다. 그 중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웹 기반 상담프로그램 사례 발표도 있었는데, 이는 글래스고 지역의 위기센터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가 함께 작업해온 것이었다. 발표도, 개발자, 청각 장애인 활동가, 전체 프로그램 매니저가 함께 나와서 했다. 수화통역자도 세 명이 분주하게 그 장애인 활동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또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청각 장애인들이 적막감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하소연할 곳 없음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짠했다. (내 개인적 경험과도 닿아 있기 때문... 오른쪽 귀의 병변이 그리 심하게 진행된 줄 모르고 있던 어느날, 왼쪽 귀를 베개에 대고 누웠는데 갑자기 세상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정말...소스라치게 놀랐었다. 그 적막과 고립이란...) 사진의 발표자는 청각장애인 활동가, 청중석의 첫번째 등 보이는 여인네가 수화통역자 우리 포스터 - 글씨가 너무 많아서 걱정했는데 우리보다 심한 것도 꽤 있더라 ㅎㅎ 중간 비는 세션에 잠깐 구경나간 시내에 있는 최고/최대 헌책방 Caledonian... 구석구석 넓은 데다 헌책방'답게' 꼬불꼬불 2층과 지하실까지, 아주 그윽했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끼리 창문 아래 한줌 해나는 곳에 피어오르는 먼지와 함께 수다떨고 계심.. 거의 영화세트장 같은 분위기였음. 여기서 Joe Haldeman 의 forever 연작(?) 마지막인 forever freedom 샀음. 기대해도 될까? 학회가 토요일 오후에야 끝났고 우리는 시내 관광 차 Necropolis 를 방문했다. 자살 학회 끝에 네크로폴리스라니.... ㅡ.ㅡ 마음이 완전 신산.... 생전의 지위를 나타내는 저 높다랗고 화려한 비석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엊그제 유명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새삼 또 관심이 집중되는 데다, 사실은 어제가 WHO 가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기도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살은 이렇다. 사람이 마음대로 세상에 태어날 자유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세상을 떠날 자유는 있다. 그래서 자살이 부도덕하다거나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다만... 이러한 존재론적 자기 결정이 그 무엇에 의해 떠밀려진 것이라면, 그것이 스스로의 결정인 것 같지만 그저 사회적 힘의 발현일 뿐이라면, 그래서 사회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자기결정의 시험대가 주어진다면 그러한 죽음과 그것을 가져온 질서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것이 지독한 외로움, 혹은 거절당한 손길을 감당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 자기 포기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든 결과의 비가역성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없는 충동의 결과라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개인들의 자기 결정은 존중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의 급속한 자살률 증가로 나타날 때, 사회는, 혹은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복잡하게 얽힌, 그리고 근원이 불분명한 매듭을 잘 보이게 드러내서 풀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거 같다. 연구자로서, 고르디우스처럼 단칼에 쳐서 매듭을 풀어버릴 수야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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