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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진실 [노동의 종말]

 

#.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노동의 종말] 민음사 2005년 (개정판)

 

 

아마도 이 책이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리프킨의 책은 원제와 무관하게 각종 종말 ("육식의 종말" - beyond beef, "소유의 종말" - the age of access)을 이름표로 달게 된 것 같다. 이건 홉스봄의 제국/혁명/극단의 시대 3부작이 인기를 끌며 자서전격인 'interesting times'마저 [미완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일게다. 전작의 명성에 묻어가는 출판계 관행..... ㅡ.ㅡ

 

눈부신 생산력의 향상 속에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의 양이 줄어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앙드레 고르 보다는 훨씬 비관적인 진단을 하고 있다. 앙드레 고르가 지긋지긋한 노동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강조했다면, 리프킨은 그 높아진 생산력을 감당할 수 있는 구매력의 쇠퇴로부터 비롯되는 딜레마와 잉여노동 (아니, 잉여인간)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예상보다 책이 두꺼워서 깜딱 놀랐다.  생산, 노동의 문제만 다룬 줄 알았는데, 문화적/사회적 함의와 역사적 고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망라'하고 있었다. 논문이 아닌 책의 장점이다.

 

초판이 처음 출판된 것이 1996년이라니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다.  아마 97년쯤, 포레스테의 [경제적 공포]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처음 접했고, 당시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오랜동안 나몰라라 하다가 최근 노동/고용과 관련된 건강문제를 고민하며 다시 관심을....

 

책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신기한 내용들도 무진장 많다 (특히 농업 부문의 자동화, 기계화!) 

그런데 전체 본문을 다 읽고 나면, '도대체 우짜면 좋다는 말인가' 절로 탄식이 나온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10년간 고민을 발전시켜, 40여쪽에 이르는 개정판 서문을 추가했다.

더더욱 암울해진 현실과 (미국의 경기하락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기술하고 있다.

- 수소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소위 녹색 에너지, 환경 관련 일자리)

- 노동 시간의 단축과 일자리 공유

- 제 3섹터에서의 일자리, 사회적 자산의 창출

- 유사 통화 (이를테면 대안화폐)의 활용

이는 본문 제 5부에서 제시했던 소위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계약과 사회적 경제 논의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논거도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만한데...

이러한 변화를 추동할 '주체'와 '정치성'의 문제가 분명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단적으로 이런 거다.

마지막 단락.....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의 여부는 문명화가 제 3차 산업혁명의 바퀴를 따라갈 후기 시장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도대체 "우리"란 누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이해관계??? 

 

대안들이 대단히 기술적(!)이고, 건조하게 나열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미국적!!!),

노동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슬프지만 진실'을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성장이데올로기, 생산력 중심주의의 환상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온 용어 이야기 중 기록해두려다 까먹었던 것!

 

consume - 최초의 소비라는 단어는 소모하다, 박탈하다는 뜻을 의미했다... 그래서 결핵 같은 '소모성 질환'을 cunsumption disorder 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옛날 결핵 문헌에서 이런 표현을 발견하고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ㅜ.ㅜ) 하지만 이러한 소비가 20세기를 지나며 어느 덧 악덕에서 미덕으로 전환되었다는 아이러니.... .

 

worn-out, break-down, overload, burn-out, shut-down 같은 표현들이 사실을 기계들한테나 쓰던 용어들이었는데, 노동자 스스로의 피로나 지침, 과부하 등을 나타내고자 할 때도 쓰게 되었다는 사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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