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준비56호> 자유무역협정(FTA), '누구'의 자유인가?

자유무역협정(FTA), ‘누구’의 자유인가?

 

 

흔히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이 말은 “조선말은 ‘주어’를 들어봐야 안다”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광운대 강연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내가” 설립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며 주어가 없으므로 효력이 없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사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란 문자 메시지를 보내 놓고, 나중에 문제가 되자 “내가”라는 주어가 빠진 것이 오해를 일으켰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TA, 미국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 TA)에 있어서도 ‘주어’를 잘 따져봐야 한다. 즉,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할 때의 그 ‘자유’란 과연 누구의 자유인지, 한-미 FTA는 누구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그 ‘자유’의 주어가 미국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본’의 자유다. 한미FTA는 사회공공성을 위한 국가의 정책기능을 빼앗아 버리고 대신 ‘자본’에게 무한한 이윤 추구의 자유를 주려고 하는 협약이다. 그리고 그 자본 안에는 미국의 초국적자본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 등 한국의 재벌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삼성, 현대 등 한국의 독점자본 역시 틈만 나면 정부 규제의 축소와 자본의 무한한 자유를 요구한다.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의 자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본들도 자유의 날개를 달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장 큰 독소조항으로 이야기되는 ‘투자자 국가 제소(ISD)’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한국의 재벌이 외국 자본과 함께 투자를 하고 있다면 외국 자본을 통해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 얼마든지 ISD를 이용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막대한 보상금을 챙길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약값을 내리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싸웠다”고 미국 대사에게 보고한(?) 사람, 한-미 FTA 협상을 주도했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현재는 삼성의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족문제 아닌 계급문제로 볼 수 있어야

 

이렇듯 우리는 한-미 FTA 속 자유의 주어가 ‘자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 FTA를 미국-한국의 민족문제가 아니라 자본-노동의 계급문제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2의 을사늑약’, ‘매국노’, ‘양키고홈’ 같은 말을 주로 하며 한미FTA를 한국-미국의 민족문제로 이야기한다. 그러한 말이 당장에는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잘못된 접근은 잘못된 해결책을 낳는다.

 

우리는 미국에 맞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탐욕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과 사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