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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총파업,
‘월가를 점령하라’와 노동자계급 투쟁의 결합
하나의 불씨는 작아 보이지만 결국은 온산을 불살라버린다. 시작은 미약했다. 9월 초, 캐나다 뱅쿠버 소재의 조직인 ‘adbusters media foundation’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제목의 시위를 9월 17일에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날 시위에 수만 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백 명의 시위참가자들이 모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몇 주도 되지 않아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은 전세계를 뒤흔드는 운동이 되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결합하는 점거운동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점점 더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결합되고 있다. 가장 결정적 계기는 10월 5일이었다. 이날 ‘월가를 점령하라’시위대와 조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다. 총 15개 노동조합 조직에서 참여한 2만 명이 대규모 시위를 진행하였다.
뉴욕의 노동자들은 10월 14일 점거운동에 대한 경찰의 탄압을 분쇄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경찰이 이날 오후 6시에 리버티 광장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하자, 노동조합은 조직 노동자에게 오후 5시까지 광장에 모이라는 지침을 내렸고, 십만 명의 대오가 타임스퀘어에 집결하여 경찰의 광장 철거를 무산시켰다.
이와 함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위해 ‘노동연락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노동자투쟁에 결합하고 있다. 다른 도시의 점거운동 역시 ‘노동연락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다.
▲“공교육을 보호하고 방어하자!”, 도시 총파업에 적극 결합한 교사노동자
소더비 경매장 하역노동자 해고에 맞선 투쟁
소더비 경매장은 지난해만 7억7400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연금을 없애고 이곳에서 일하는 43명의 운수노동자를 해고한 뒤, 이 업무를 외주화하려고 하였다. 이에 맞서 화물운송 산별노조인 ‘팀스터’ 814지회는 점거 시위자들과 함께 소더비 경매 방해, 이사진이 경영하는 레스토랑 타격 등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버라이즌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
버라이즌은 미국의 거대 통신회사로 버라이즌 노동조합은 이미 8월, 임단협 개악에 맞서 두 주간 파업을 한 바 있다. 버라이즌은 2010년 한해에만 100억 달러의 이윤을 냈지만, 노동자들에게 10억 달러 규모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10월 20일, 월가의 시위자들은 버라이즌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여 함께 투쟁하였다.
점거운동과 교육문제, 노동자들이 나서고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은 점거운동의 가장 열성적인 참여자들이었다. 뉴욕의 교사, 학부모들은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교육체계, 공교육의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여 10월 5일의 집회에 대거 참여하였다. 리버티 광장의 점거시위자들이 총회를 열어 10월 25일, 뉴욕의 “교육부를 점령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11월 2일 도시 총파업을 알리는 포스터. 오클랜드는 미국에서 5번째로 물동량이 많은 항구로, 7천여 명의 도시 총파업 참가자들은 항구 폐쇄를 시도했다.
11월 2일 오클랜드 도시 총파업
10월 24, 25일을 기해 미국의 자본가계급은 점거운동에 대한 대대적 탄압으로 돌입하였다. 탄압과 함께 거대한 저항도 시작되었다. 경찰의 침탈을 받은 각지에서는 긴급집회 등이 개최되고 경찰의 탄압을 규탄하는 저항이 조직되었다.
오클랜드는 이 저항의 중심이 되었다. 25일 오후 대대적인 거리시위가 전개되었고,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 고무총으로 잔인한 탄압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평화운동에 매진하던 참전용사인 스콧 올슨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10월 26일, 오클랜드의 점거시위 참가자들은 시청 앞 오스카 그랜드 프라자를 재점거한 후, 총회를 열어 1,484 대 46으로 11월 2일 오클랜드 도시총파업을 결의하였다. 1946년 도시총파업의 경험을 가진 오클랜드가 이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교사, 항만노동자, 보건노동자 등 무수한 지역의 조직노동자들이 도시 총파업을 조직하고 지지하였다. 공교육의 붕괴에 직면한 교사노동자들은 지역과 학생들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미 이라크전에 반대하여 항만을 봉쇄하는 투쟁을 한 바 있는 항만노동자들은 이 파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은 집집을 돌아다니며 선전물을 나누어지고 참여를 호소했다. 노동조합의 파업, 집회 참여 등의 결의를 끌어내기 위해 피켓라인이 형성되었다. 지역의 모든 노동조합이 투쟁에 호응하였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파업 당일 거리에 나오기로 결의하였다. 학생들은 피켓을 들어, “학생은 노동자계급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것”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11월 2일 오클랜드 총파업은 노동자계급의 대대적 참여와 지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도시 총파업은 새로운 투쟁방식이 되었고, 점거운동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고 있다. 댈라스의 점거운동은 오클랜드의 길을 따라, 11월 30일 도시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죽음을” “모든 것을 점령하라” “총파업!” 오클랜드 도시 총파업 때 내걸린 현수막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미국의 점거운동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점거운동의 곳곳에서 시기 시기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점거운동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기층에서부터 살아나고 있으며, 99%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에 있음을 자각해가고 있다. 제국의 그늘 밑에서 무기력하게 신음하던 신민이었던 미국의 노동자계급이 전진하고 있다. 그들은 한 달 만에 전세계적인 운동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제는 미국 노동자계급의 전진에 대해서 한국 노동자들 역시 답할 때이다.●
- 황정규 (노동해방실천연대(준) 조직위원장)
<오클랜드 도시 총파업 사진 보기>
http://www.mercurynews.com/top-stories/ci_1924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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