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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8호> 리비아 혁명,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리비아 혁명,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혁명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옮겨 붙었을 때 상황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튀니지,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한편엔 생존권과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리비아 인민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년 독재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독재자 카다피가 있었다. 투쟁의 불길은 곧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였다. 인민들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외치는 카다피의 연설은 미치광이 폭군의 마지막 발악처럼 느껴졌고, 결국 카다피는 ‘암살 또는 자살’로 최후를 맞으리라는 예측에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어느새 전세가 역전돼 카다피 군대가 맹공을 퍼붓고, 반카다피군이 차츰 궁지에 몰리자 상황은 조금씩 복잡해져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카다피에 의한 대량학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자 리비아를 바라보는 입장은 한국 진보진영 안에서 판이하게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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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학살을 요구한 진보신당

 

진보진영 일부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지지하고 요구했다. 진보신당은 3월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제사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즉각 취해야할 것이다.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통해 지금이라도 카다피군의 전투기를 묶어놓는 것은 물론, 수세에 몰린 시위대에 대한 무기 지원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인권보호를 주권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다”며 “리비아 공습은 옳았다”고 주장했다.

 

* 진보신당, <리비아 사태,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 시급히 이뤄져야>

* 이대근 칼럼, <리비아 공습은 옳았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리비아 공습의 현실은 어떠한가?

 

첫째, 리비아 공습이 리비아 민중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낯 뜨거운 거짓말이다. 리비아에 방사능 열화우라늄탄을 퍼붓는 폭격기들에게 리비아 민중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 서방의 군사개입은 그들 각각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다.

 

둘째, 리비아 폭격은 결과적으로도 학살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장기간의 또 다른 학살을 낳는다. 지금 당장 발생할 학살의 가능성을 없앴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앞으로 장기적으로 벌어질 리비아 민중에 대한 학살의 시작일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이라크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시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시간대에서 보자면, 개입은 개입하지 않았다면 벌어졌을 학살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간대에서 봤을 때도 과연 그럴까? 단기적인 견지에서 사담 후세인이 저지르는 학살을 막고자,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10년에 걸쳐 전쟁이 치러진 결과 학살당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줄었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고 비판한다.

 

* 메데아 벤자민 외, <이라크 전쟁 8년을 돌아보며>

* 이매뉴얼 월러스틴, <리비아를 둘러싼 거대한 난맥상>

 

이러한 비판에 대해 군사개입을 지지하는 측은 “공습의 수준과 방법이 적절했는지 비판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그러나 개입 결정이 정당한가의 문제와는 별개이다”(이대근)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군사개입과 과도한 공습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 몸이며 필연이다. 

 

* 까밀로, <비행금지구역이 학살을 멈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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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 혁명 중심지 벵가지에 내걸린 구호.  “외국 개입 반대, 리비아 인민은 스스로 할 수 있다.”  

 

군사개입이 왜곡시킨 아랍혁명

 

셋째, 제국주의 군사개입은 리비아 혁명을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이제 리비아에서 인민이 스스로의 투쟁으로 독재자를 내쫓고 해방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러므로 설령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제국주의의 입김에 좌우되는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국주의가 가장 원하는 결과다. 그리고 리비아 민중들은 얼굴만 바뀐 또 다른 독재정권 밑에서 고통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전세가 역전되 반카다피군이 궁지에 몰리자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승리하고 건재를 과시하면 아랍혁명이 주춤하게 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카다피 정권 붕괴로 아랍혁명이 더욱 불붙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군사개입으로 아랍혁명이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들불처럼 일어난 아랍혁명 앞에서 제국주의는 겉으로 표정관리에 힘쓰며 그것이 더 크게 폭발하지 않도록 진화에 애써왔다. 그래서 튀니지에서, 이집트에서 때로은 독재자의 퇴진을 압박하는 제스춰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리비아 외에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투쟁이 진행 중인 곳은 모두 친미적인 정권들이이다. 그곳의 독재자들에게 리비아에 대한 제국주의 군사개입은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고 그만큼 민중탄압과 학살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카다피, 반제국주의 투사?

 

한편,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진보진영의 또다른 일부는 리비아 인민의 투쟁을 제국주의의 계략에 의한 것으로 매도하고, 반대로 카다피를 반제국주의 투사인 양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소위 ‘자민통’ 노선을 가진 사람들과 전태일 노동대학 김승호 대표가 그런 경우다. ('자민통' 노선이 리비아 혁명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은 <마르크스21>  제9호(2011년 봄)에 실린 김하영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 김하영,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승호, <제국주의의 리비아 침략과 반혁명 기도는 실패할 것이다>

 

이들은 반카다피 세력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거나, 친제국주의 왕정을 지향하는 세력이거나, 카다피 정권 아래에서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튀니지, 이집트와 달리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가 급격히 무장투쟁과 내전으로 나아간 것은 제국주의의 계획된 조종과 음모였다고 말한다. 또한 제국주의 언론의 거짓 선전으로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반카다피군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일정부분 사실이다. 또한 그 배후에 제국주의가 개입하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제국주의의 계략과 음모로 보는 것은 역사를 자의적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튀니지, 이집트 인민의 투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리비아 인민의 투쟁과 요구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이들은 “더 규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와 피지배 식민지와의 모순과 대립”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카다피는 등장할 때부터 이 모순의 한쪽 편에 선 혁명세력이었다.(김승호)” 그로인해 이들의 눈에는 독재자 카다피의 억압에 저항하는 인민의 투쟁은 보이지 않고,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카다피와 리비아 민중”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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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연대하라, 카다피 독재에 맞서 투쟁하라

 

카다피 독재에 맞선 리비아 혁명은 인권을 가장한 제국주의의 군사 침략으로 그 미래가 불투명하고 밝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리비아 혁명의 새로운 돌파구는 “지금으로선 아마 어려운 일이겠지만, 제2차 아랍 반란이 원기를 되살려 그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뒤흔드는 일일 것이다.(월러스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카다피를 반제국주의 투사나 혁명세력이라 칭하고 카다피를 리비아 민중과 한 편으로 보아선 안 된다. 물론 카다피 축출과 리비아 인민의 생명을 위해(?) 제국주의와 손잡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사실, 아랍혁명과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카다피 독재에 맞선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2011년 4월 11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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