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리비아를 둘러싼 논쟁점

 

reverie님의 [혁명은 반혁명에 의해 규정된다] 에 관련된 글.

 

경남노동자신문 <호루라기> 준비48호에 실린 <리비아 혁명,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reverie님이 비판하는 글 <혁명은 반혁명에 의해 규정된다>을 트랙백으로 남겼다. reverie님의 비판에 답하며, 리비아를 둘러싼 논쟁점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

 

1. 제국주의 군사개입에 대한 입장

 

"결국 다국적군이 열화우라늄탄을 퍼붓고 있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진보신당이 군사개입을 요구했던 시점에는 저항군이 열세였고 그대로 두면 가다피가 승리할 공산애 매우 컸다"

 

"군사개입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고, 대량살상무기 사용에 대한 단호한 반대, 민간인 보호, 강대국의 이권 폭로 등이 이어져야지, 군사개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저항군보고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 reverie <혁명은 반혁명에 의해 규정된다>

 

reverie님은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당시 상황에서는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다만 그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reverie님 역시 제국주의 군사개입의 긍정적(?) 측면과 그것이 가지는 부정적 측면을 별개의 문제로 본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국주의 군사개입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부정적 측면을 분리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호루라기> 글에서 밝혔듯이 첫째, 제국주의 군사개입과 '또 다른 학살'이라고 표현한 그 부정적 결과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한 몸이며 필연이다. 그 둘을 별개로 보는 것은 머리 속에서는 가능할 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제국주의 군사개입은 리비아 인민의 자기해방의 가능성을 없애 버림으로써 리비아 혁명을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한편에서는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처럼 '주권' 보다 '인권'이 우선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노동당 논평처럼 (누구의?) '주권'을 우선하는 입장이 있다. 전자가 '인권'의 이름으로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정당화 한다면, 후자는 '주권'의 이름으로 카다피 독재를 정당화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에서 중요한 것은 '인권'-'주권'의 대립이 아니라 리비아 인민의 '자기해방'이다. 제국주의 군사개입에 대한 비판 역시 '주권'의 관점이 아니라 리비아 인민의 '자기해방'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제국주의 군사개입은 리비아 뿐만 아니라 아랍 혁명 전체에 반혁명의 움직임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reverie님과 달리 제국주의 군사개입에 반대한다.     

 

 

2. 카다피 독재에 대한 입장

 

reverie님의 글은 카다피 독재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행간을 통해서 reverie님 역시 카다피 독재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짐작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호루라기> 글에서 주로 비판한 것은 카다피를 반제국주에 맞서 싸우는 혁명세력으로 보는 이른바 '자민통' 계열과 김승호 전태일 노동대학 대표의 주장이었다.

 

카다피는 권력 유지를 위해 한편으로는 점점 더 가혹한 탄압을 동원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석유로 벌어들인 돈으로 떡고물을 나눠 주면서 확고한 충성파인 지지세력을 철옹성처럼 꾸렸다. 여기서 카다피의 친인척이 핵심 중 핵심이었다. 둘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은 석유회사와 국영 방송사를 소유하고, 영국에 거주하면서 서방의 거물급 인사들과 두루 접촉했다. 넷째 아들 무타심은 군 사령관이고, 여섯째 아들 카미스는 특수부대 사령관이다. 큰아들 무함마드는 우편과 통신위원회를 관장한다. 다섯째 아들 한니발은 석유 산업에, 셋째 아들 사디는 국영 영화 산업에 관여한다. 딸 아이샤는 사설 금융기관을 소유하고 에너지와 건설에도 이권이 있다. - 김하영, <리비아 혁명, 어떻게 볼 것인가>

 

머라이어 캐리는 2009년 1월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의 초청으로 중남미 카리브해 고급 휴양지인 세인트바르트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 노래 4곡을 부르고 100만 달러를 받았다. 또 ‘섹시디바’ 비욘세는 넷째 아들인 무타심이 주최한 지난해 신년 파티에서 1시간가량 공연을 하고 대가로 200만 달러(약 22억 5600만원)를 챙겼고 어셔도 같은 무대에 섰다.

- <서울신문> 2011. 3. 2

 

여러 자식들이 부와 권력을 나누어 갖고, 그것을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부패한 독재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같은 리비아 사회에 카다피와 그 아들들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됐고 그 결과 리비아 인민들의 삶은 다른 아랍 독재정권 치하의 인민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게 됐다. 이것이 튀니지,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리비아 인민들이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카다피 독재를 반제국주의 혁명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주장의 옳고 그름 이전에 그러한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그들의 세계관 - 반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 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3. 반카다피 세력에 대한 입장

 

"저항군이 갖고 있는 무기는 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은 음해가 아니라 매우 정당하다."

 

"가다피가 독재자라고 해서 저항군이 반드시 민중의 편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가다피가 독재자라는 사실 때문에 저절로 저항군에게 정당성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 reverie, <혁명은 반혁명에 의해 규정된다>

 

이 같은 reverie님의 주장에 동의한다. 카다피 독재에 맞선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반카다피 세력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이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오해다. 이 점에서 <호루라기>의 글이 분명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

 

반카다피 세력 안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친제국주의 왕정을 지향하는 세력 그리고 카다피 정권 아래에서 권력을 누리던 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제국주의와 물밑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앞장서 요구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이들 세력이 현재 반카다피 진영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세력을  단지 카다피와 맞서 싸운다고 지지할 수는 없다. 이 역시 리비아 인민의 '자기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그 답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카다피 독재에 맞선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라는 건 어떤 세력을 지지하고 지원하라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답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답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혁명의 과정 속에서 리비아 인민의 투쟁을 보지 않고, 현재 반카다피 세력의 성격을 이유로 리비아 인민의 투쟁을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나아가 그 투쟁을 제국주의의 계획과 음모로 설명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지금도 미국이 알카에다와 사전조율 후에 리비아에 저항군을 투입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reverie님의 말에도 그런 음모론이 묻어난다.

 

무엇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하는가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커다란 입장차이를 가져온다. 역사는 제국주의의 음모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투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