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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9호>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지금도 번득이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지금도 번득이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경찰청 보안국은 대학 연합 학술동아리 ‘자본주의연구회’ 회장을 지낸 최아무개씨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하고 회원 9명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2007년 3월 자본주의연구회를 결성한 뒤 이듬해 초 진행한 ‘대안경제캠프’에서 이적성이 뚜렷한 행동강령을 채택해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개적인 대학 학술동아리를 이적단체로 모든 것이 너무하다 싶었는지, ‘자본주의연구회’가 아니라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새 세대 청년 공산주의자 붉은기’가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곧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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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 맞추기, 용두사미 수사

 

그러나 한 달 뒤인 4월 18일 최씨를 구속기소하면서는 ‘새 세대 공산주의자’ 어쩌구 하는 이적단체 혐의는 슬그머니 빠지고 이적 표현물 소지․반포 혐의만 적용됐다. 여기에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와 용산참사 관련 시위에 참여한 혐의가 추가됐고, 심지어 동원예비군훈련을 연기하려고 진단서를 위조한 협의까지 보탰다. 결국, 이른바 ‘의식화 학습’을 한 게 죄의 전부라는 얘긴데, 예비군훈련을 연기한 것까지 기소내용에 보태야 할 만큼 궁색했던 걸 보면 검찰 수사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렇듯 언론을 한번 크게 장식했다가 금방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혀져가는, 혹은 황당하기 짝이 없어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 사건, 그러나 그 국가보안법 때문에 지금 결혼 1주년 기념일에 잡혀 간 한 사람의 가정과 삶이 파괴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일이다.

 

사노련 유죄 판결과 연이은 공안사건

 

특히 이번 ‘자본주의연구회’ 사건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사건에 대해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온 지 한 달 뒤 벌어진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법원은 지난 2월 24일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된 사노련 전 운영위원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8명에 대해 징역 1년 6월-집행유예 2년 등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선전물을 나눠주고 토론회를 개최하고 소책자를 발간한 일에 대해 법원은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같은 사노련 유죄 판결이 공안세력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번엔 대학교 공개 학술동아리마저 이적단체로 잡아가두는 과감함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한 가지 주목되는 부분은 사노련 사건도 그렇고, 자본주의연구회 사건도 그렇고 공통적으로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집회와 용산참사 규탄집회를 기소 내용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적단체 운운하는 국가보안법이 결국 목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중요한 통치수단이다. “양심수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가보안법구속자 수는 2006년 35명, 2007년 39명에서 이명박이 집권한 2008년에는 40명, 그 이듬해 2009년는 70명으로 늘어났으며, 작년 2010년은 130명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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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누구?

 

정치단체와 대학 학술동아리에 대한 국가보안법 사건에 뒤이을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아마도 노동운동일 가능성이 가장 높이 않을까. 1980~90년대 노동운동이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았던 사실은 결코 흘러간 역사가 아니다.

 

흔히 국가보안법을 과거에서 살아돌아온 귀신이나 괴물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한 묘사는 국가보안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그것의 현재성을 간과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번득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가 투쟁으로 폐지시키지 않는 한 결코 죽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1년 5월 4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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