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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3호>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넘지 못한 건 정몽구가 아니라 이경훈과 박유기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넘지 못한 건

정몽구가 아니라 이경훈과 박유기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산 1공장 점거농성 투쟁이 25일 만인 지난 12월 9일 끝났다. 비록 시트사업부 동성기업의 폐업으로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번 투쟁은 지난 7월 대법원 판결 이후 불법파견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비정규직이 새롭게 노동조합에 대거 가입하는 등 달라진 상황 속에서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를 전면에 내건 투쟁이었다.

 

그래서 점거농성 조합원들은 쟁대위 회의와 조합원 토론을 통해 ‘정규직화에 대한 성과 있는 합의 없이 농성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해서 결정하고 투쟁의 고비마다 스스로 한 결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현대차지부 이경훈 위원장이 압박하고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이 설득한 4가지 안을 수용하고 농성을 풀었다.

 

불법파견인 제조업 사내하청 문제를 매우 중요한 사회 현안으로 만들고, 비록 자본은 ‘협의’라 주장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현대차 자본과 테이블에 마주앉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피어린 이번 투쟁의 성과다. 그러나 이번 투쟁의 목표인 정규직화와 관련해서는 뚜렷이 얻어낸 것이 없고, 이후에도 쉽게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점 역시 사실이다. 자본의 무자비판 폭력에 맞서 라인을 점거하고 생산을 멈추기 위해 피터지게 싸운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 앞에는 여전히 힘들고 지난한 투쟁이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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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농성을 끝내고 농성장을 나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 (사진=연합뉴스)

 

자본 이전에 놓인 두 개의 장벽

 

2000년 노동조합을 만들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장기투쟁인 517일 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한국통신비정규직노동조합의 싸움을 담은 <이중의 적>이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적(敵)’이란 말은 실제 규정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은유적 표현이지만,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은 분명 함께 가야하는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거대한 자본의 힘과 폭력에 꺾이지 않으려면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가 절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을 극복하지 않는 한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었다. 때론 정규직 노동조합의 연대가 없어서 투쟁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때론 정규직 노동조합을 극복하지 못해 투쟁이 사그라지기도 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25일 동안의 점거농성 투쟁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비정규직투쟁 역시 이전의 비정규직투쟁이 가진 이 같은 역사와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투쟁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차이와 갈등은 분명해졌고, 결국 농성을 푸는 과정에서는 우월한 힘을 가진 정규직 노동조합의 입장이 관철되었다.

 

그런데 극복해야할 대상은 정규직 노동조합뿐이었을까?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앞에 놓인 또 하나의 장벽은 금속노조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 노동조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금속노조는 매우 중요한 열쇠를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화 쟁취’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가기 위한 열쇠가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투쟁의 중요한 순간마다 비정규직지회가 스스로의 결정을 포기하고, 정규직 노동조합이라는 장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이 넘어서지 못한 것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아니라 이경훈 현대차지부장과 박유기 금속노조위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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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아름다운 연대’라는 이름의 횡포

 

정규직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은 말끝마다 ‘아름다운 연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연대란 1공장 농성장을 사측의 침탈로부터 지켜주는 것, 하루에 단 한 끼 농성장으로 밥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딱 그것이었다.

 

현대차지부는 애초부터 이번 투쟁의 내용을 폐업한 시트사업부 동성기업 고용승계 문제로 국한해서 규정했다. 또한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문제는 금속노조가 해결해야할 일이지 자신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담아 마련한 자신들의 안을 비정규직지회가 수용하고 농성을 해제할 것을 줄기차게 압박했다. 금속노조 총파업 결정에 반대했고,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파업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리고 결국 원하던 바를 얻어냈다.

 

더욱이 현대차지부는 농성장 주변과 공장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힘을 가지고 투쟁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했다. 농성중인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지부장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농성장 밖으로 쫓아냈다. 투쟁에 연대하여 실무적인 부분을 지원하며 함께 농성해왔던 울산연대노조 조합원을 ‘외부세력’ 운운하며 폭행해서 내쫓기까지 했다. 심지어 투쟁의 당사자이자 3주체 논의의 한 구성원인 현대차 아산 비정규직지회 지회장마저 농성 해제에 반대하는 의견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출입시키지 않고 3주체회의에서 배제하려고 하였다. 이 같은 현대차지부의 행태는 한마디로 힘을 가진 자의 횡포였다.

 

그런데, 이경훈 지부장과 현대차지부의 이 같은 횡포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적으로 말해, “이경훈 집행부가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이미 전부터 알고 있던 일 아니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경훈 집행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금방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즉 이경훈 집행부는 이번 투쟁을 하는 데 있어 변수(變數)가 아니라 이미 고정된 상수(常數)였다. 그러므로 이경훈 집행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 현실의 결과와는 다른 행동이 가능했던 요인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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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뉴시스)

 

금속노조, 당사자인가 중재자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투쟁의 목표와 성격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와 정규직 현대차지부는 입장이 달랐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이번 투쟁을 통해 지난 7월 대법원 판결을 법정이 아닌 현장에서, 몇 몇이 아닌 전면적으로 현실화하려고 하였다. 즉 투쟁의 목적은 비정규직 고용보장이 아니라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였다. 반면 정규직 현대차지부는 이번 투쟁의 내용을 폐업한 시트사업부 동성기업 고용보장 문제로 국한했다.

 

그렇다면 금속노조와 박유기위원장은 이번 투쟁의 목표와 성격을 무엇이라고 보았을까? 민주노조운동과 금속노조가 처한 위기상황을 감안하면 더더욱, 이번 투쟁에 대한 박유기 위원장의 모습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큼이나 절박한 것이어야 했다. 금속노조 위원장으로서 스스로 이 투쟁의 당사자이자 책임자가 되어야 했다. 금속노조 총파업을 결정하는 대의원대회에서 “박유기 위원장이 농성현장에 들어가 투쟁을 끝까지 책임지라는”는 수정발의안을 제출했던 한 대의원의 발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박유기 위원장은 결코 투쟁 당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않았다. 당사자로서의 절박함도, 위원장으로서의 결단도 없었다.

 

작년 여름, 정리해고에 맞서 77일 공장점거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투쟁을 떠올려 보자. 당시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산별노조, 하나의 노조인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투쟁을 이끄는 책임자요 당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철저한 중재자의 모습이었다. 정치권과 회사를 접촉하며 국회의원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해왔던 중재자의 역할을 금속노조 위원장이 하려고 했다.

 

쌍용차 투쟁 때의 정갑득 위원장의 모습과, 이번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투쟁에서 박유기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 다른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정갑득 위원장이 쌍용차 노동자들과 쌍용차 자본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려고 한 반면, 박유기 위원장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와 정규직 현대차지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했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공평한(?) 중재자가 아니라 주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를 설득하는 중재자의 역할이었다. 그러한 중재자의 모습 속에서 어떠한 절박함도, 결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박유기 위원장의 모습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은 금속노조에 대한 믿음을 얻을 수 없었다.

 

내가 전태일이다

 

이번 투쟁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규직화 쟁취’는 형식적인 구호가 아니라 너무나도 절박하고 현실적인 요구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에게 ‘비정규직 철폐’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운동의 존폐를 건 절박한 요구다. 그러나 소위 운동의 지도자들에게서 그 같은 절박함과 그에 걸맞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아 열린 2010년 전국노동자대회 슬로건은 “내가 전태일이다”였다. 이것이 한낱 폼 나는 광고카피가 아니기 위해서는 운동의 지도자들이 먼저 전태일이 되어야 한다. 투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2010년 12월 13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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