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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4호> 인사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인가

 

인사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인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위해 교섭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게 ‘인사권’이다. 회사는 인사권은 노동조합이 침범해서는 결코 안 되는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라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에 인사권을 다 넘기라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합리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제도를 요구하는 것인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 정색한다.

 

그런데 똑같은 말을 회사가 아니라 노동조합에서 듣는다면? 최근 금속노조 경남지부 상근자(선전부장, 총무부장) 채용과 관련한 문제제기에 되돌아온 유일하고 한결같은 대답이 그랬다. “인사권은 경남지부장에게 있다!”

 

이미 정해진, 그러나 혼자만 아는

 

잇따른 경남지부 상근자 채용인사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철저한 ‘밀실인사’였다. 형식적인 모집공고와 서류접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이미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 풍문만 떠돌 뿐 아무도(?) 몰랐다. 오직 인사권을 가진 경남지부장 말고는. 이미 정해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왜 채용해야 하고 어떤 면에서 적임자인지 사전에 충분히 논의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채용 때까지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차피 결국에는 그 정해진 사람을 채용할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인사권은 오직 경남지부장의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비정규직 정규직화 외면

 

둘째, 경남지부 상근자 중에는 소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 금속노조 채용 상근자가 정규직이라면, 집단교섭을 통해 확보된 재정으로 경남지부에서 임명한 상근자가 비정규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있던 상근자 3명을 차례대로 금속노조 채용 상근자로 정규직화하고, 새로 필요한 사람은 경남지부 임명 상근자로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자본에게 항상 주장해왔던 것이고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경남지부는 기존의 비정규직 상근자를 놔두고 선전부장을 금속노조 채용직으로 뽑았다. 왜 꼭 그래야했는지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해고자 배려 관례 무시

 

셋째, 이제까지 경남지부를 비롯한 노동조합 지역본부 상근자들 중에는 해고자 출신이 많았다. 오랜 투쟁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떠나게 되거나 회사 폐업 또는 노조 해산 등으로 활동 공간을 잃은 활동가들이 지역본부 상근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계속해왔다. 하나의 원칙이라고 는 말할 수는 없어도 일종의 관례였고 누구나 수긍하는 일이었다.

 

현재 우리지역에도 쌍용자동차, 대림자동차, 제이티정밀 등 투쟁과정에서 해고된 많은 동지들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림자동차 해고자는 채용신청을 하기도 했다. 경남지부는 당연히 이 동지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할 것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두 번의 인사 모두 이미 내정돼 있었고, 지역 동지들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채용되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을 다른 곳에서 채용해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성이 있다면 사전에 공개하고 충분한 공감을 얻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했다. 특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을 뜬금없이 지부 상근자로 채용한 것은 과연 무슨 필요성 때문이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넷째, 경남지부는 선전역량이 절실피 필요하다며 인터넷 언론 기자출신을 선전부장으로 채용했다. 참 손쉬운 방법이다. 그럼 법규부장은 변호사를, 총무부장은 회계사를, 노안부장은 의사를, 문화부장은 연예인을 채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한편 경남지부 선전역량에 커다란 구멍이 나게 한 경남지부장 본인의 과거 인사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진흙탕 싸움이 안 되려면

 

집행부 입장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전에도 역시 그래왔다. 하지만 별다른 논란이나 비판이 일지 않았던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정파 소속이냐를 떠나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이번 경남지부 인사 논란을 보며, 노동조합운동이 이제 그런 상식과 합리성조차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밖에서 보면 자칫 ‘진흙탕 싸움’처럼 비춰질 수 있기에, 또 말해봤자 소용 없다는 생각에 혼자 욕하고 마는 체념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체념으로 이어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맞다. 인사권은 경남지부장에게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혼자, 알아서, 독단적으로, 마음대로 휘두르라고 있는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

 

(2011년 1월 13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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