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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즌-JT정밀 투쟁을 되돌아본다
한국씨티즌 정밀은 1989년 일본씨티즌 자본이 100%를 직접 투자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일본자본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진출한 배경에는 G20회의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고, 미․중 정상회담에서 쟁점이 된 환율문제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고, 1978년 석유파동을 겪은 미국은 고금리정책으로 전환했다. 이로 인한 달러가치가 높아지면서 대외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자, 미국은 당시 미국수출로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던 일본과 독일에 대해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의 조정을 요구했다. 결국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선진국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들이 모여 합의하게 된다.
이 합의로 당시 1달러당 260엔 이었던 엔화가 약세로 반전하자, 일본자본은 지속적인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한국씨티즌정밀도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주식양도-양수로 위장한 자본철수
자본금 44억을 투자한 일본시티즌 자본은 2005년까지 당기순이익을 주식배당을 통해 투자한 자본금의 몇 배를 회수해 갔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한국시티즌정밀주식회사의 이익구조가 영업손실이 나는 상황으로 변했고, 일본씨티즌 자본은 한국씨티즌정밀로부터 이익 배당은커녕 적자 규모만큼 다시 투자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2003년 마산수출자유구역에 있었던 한국씨티즌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본을 철수했다. 당시 한국씨티즌 노동조합은 일본원정투쟁을 통해 폐업 보상에 합의하고, 일본씨티즌의 회사 임원이 한국에 와서 사과를 했다.
2008년 다국적 기업인 일본씨티즌자본은 기업의 전략적 차원에서 시계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결정하고 이를 공시함과 동시에 지주회사인 일본씨티즌홀딩스 홈페이지에 이를 게시했다.
2008년 일본씨티즌자본과 한국의 고려TTR간의 주식양도와 양수는 철저하게 일본 자본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2003년 마산수출자유구역 내에 있었던 한국씨티즌의 자본철수 때 경험한 ‘학습효과’가 있어 자본철수라는 직접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주식양도와 양수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당시 한국씨티즌정밀지회와 경남지부는 일본씨티즌자본과 고려TTR간의 주식양도와 양수를 위장된 자본철수라 규정하고 투쟁했으며, 일본전통일노동조합의 지원 하에 일본 원정투쟁을 하였다. 고려TTR과 일본씨티즌 자본에게 계약금액과 계약 시기, 주식양도와 양수조건을 밝힐 것과 계약서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끝내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
한국씨티즌정밀지회는 계약서도 보지 못한 가운데 회사명이 한국씨티즌정밀주식회사에서 JT정밀주식회사로 변경된 것을 인정하고 고려TTR과 회사인수에 따른 합의를 했다. 그에 따라 이후 JT정밀 노동자의 운명은 일본씨티즌 자본의 해외생산전략에 따라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 있는 불안한 상태로 변했다. 결국 정확히 만 2년 후 고려TTR이 한국씨티즌정밀을 인수한 날에 폐업을 선언해 현실이 되었다.
결정적 걸림돌이 된 2008년 합의
2008년 합의는 고려TTR의 한국씨티즌정밀 인수에 따른 금전 보상과 이후 고려TTR과 일본씨티즌에 대해 회사매각에 따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 합의는 2010년 일본 원정투쟁에서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해 일본씨티즌 자본에 대해 직접교섭과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일본전통일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 원정투쟁에 동행한 경남지부 임원이나 금속노조의 부위원장이 일본전통일노동조합과 노동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질책을 받아야 했다.
2008년 당시 한국씨티즌정밀의 투쟁은, “일본씨티즌 자본이 자본철수를 한 것이냐, 아니면 한국씨티즌정밀을 정상적으로 매각을 한 것이냐?”에 따라 투쟁방향과 목표가 달라지는 상황이었다. 자본철수로 규정할 때 한국씨티즌정밀 단체협약에 따라 회사가 사전통보 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이로 인한 정리해고의 경우 평균임금의 48개월의 보상을 요구하거나 주식양도 양수가 무효이기 때문에 이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 투쟁의 목표여야 했다.
한편 일본씨티즌자본과 고려TTR간의 주식양도와 양수를 정상적인 기업양도․양수로 규정할 때는 한국씨티즌지회가 교섭할 사항은 기업매각에 따른 ‘고용승계, 단체협약승계, 노동조건의 승계, 노동조합인정 등’이 투쟁의 목표가 되는 상황이었다.
2008년 한국씨티즌정밀지회의 투쟁은 일본씨티즌 자본과 고려TTR간의 주식양도와 양수가 ‘위장매각과 자본철수’라고 규정하고 이를 철회시키거나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지만, 합의 시점에 가서는 경남지부나 지역본부가 한국씨티즌정밀지회에 기업 매각에 따른 합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이를 종용하고 교섭 또한 그렇게 진행해 결국 지회는 이를 받아 들여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 2008년 일본 원정투쟁 모습 / 사진=금속노조 경남지부
단체협약 해지에서 폐업통보까지
2008년 합의 이후 고려TTR의 대표이사인 김선남은 JT정밀주식회사에 전 노동부소장 출신인 조준행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후 2009년 단체협약 해지 통보와 함께 지부교섭과 중앙교섭에 참가하지 않았다. 또한 2009년 하반기에는 지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임금삭감과, 보상 한 푼 없이 현장 노동자 1/3이 희망퇴직해야 한다는 인력구조조정을 강요했다.
JT정밀 회사가 강요한 인력구조조정안에 대해 지회는 희망퇴직하는 노동자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할 경우 회사가 제시한 구조조정안에 대해 교섭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2010년 4월까지 회사와 교섭을 했다. 그러나 회사는 고려TTR이 2년 전 인수한 날이며 회사창립기념일로 지정한 휴일을 틈타 4월28일 회사 안에 있던 시계 반제품과 원재료를 회사 밖으로 빼냈고, 7월말로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교섭석상에서 말하고는 이를 문서로 지회에 통보했다.
회사의 폐업선언으로 2010년 JT정밀 노동자들의 투쟁은 시작되었고 이 투쟁은 2008년 한국씨티즌정밀 때의 투쟁과 날짜도 틀리지 않은 ‘판박이 투쟁’이었다. JT정밀 지회는, 2010년 투쟁은 2008년에 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계획을 전 조합원들과 함께 결의했다.
200억 회사를 88만원에 양도
JT정밀 지회는 고려TTR 타격투쟁, 회사 점거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2008년 일본씨티즌과 고려TTR간의 노동자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추악한 거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일본씨티즌자본은 2003년 마산 한국씨티즌을 폐업할 때 경험한 학습효과를 토대로 자본철수(폐업) 대신 주식 양도․양수라는 편법을 택했다. 그런데 순 자산 가치가 약200억인 한국씨티즌정밀을 주식 한 주당 1원의 가격으로 고작 88만원에 고려TTR에 넘긴 것이다. 그 과정에 2003년 마산 한국씨티즌 폐업 때 한국인 사장이었던 이년재가 개입한 증거도 밝혀졌다.
경남지부가 이 같은 2008년 추악한 거래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알리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JT정밀 투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다. 지역의 여론이 우호적으로 형성되었고, 관계기관 역시 JT정밀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계약서 공개, 폐업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교섭은 지회가 성실교섭기간을 정해 투쟁을 잠시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자산은 주주의 몫”이라는 회사의 억지주장으로 성과가 없었다. 이후 관계기관의 중재로 다시 시작된 교섭에서 마침내 폐업에 따른 보상액에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3일 그 동안 같이 투쟁한 단체와 경남지부 소속 지회를 초청해 보고대회를 함으로써 투쟁을 마무리했다.
한편 JT정밀 조합원들은 향후 1년간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남을 것을 결의하였고 경남지부에 2,000만원의 투쟁기금을 전달하였으며 2월에 지회해산 총회를 할 예정이다.
(사진=오마이뉴스)
먹튀자본에 대한 대책 마련해야
한국씨티즌정밀-JT정밀지회의 투쟁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이 투쟁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한국씨티즌정밀주식회사의 설립과 자본철수는 세계경제 상황 속에서 자본의 이윤확보와 유지 수단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03년 마산 한국씨티즌의 폐업과 2008년 한국씨티즌정밀의 주식의 양도․양수는 유럽과 동아시아 와 남미에 시계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씨티즌 자본이 해외생산전략에 따라 좀 더 임금이 싼 동아시아와 남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고려TTR은 이 같은 자본철수를 위한 이용물이었고, 고려TTR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몫 챙기려 한 것이다.
지난 1월 24일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외국자본의 철수와 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진보정당과 같이 개최했다. 외환위기 이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해외자본 유치에 혈안이 돼 국유지 장기 임대, 세금 유예․면제 등 온갖 특혜를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투기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단기차익만 얻고 한국을 떠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해외자본의 한국진출과 철수에 대해 법과 제도적인 규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2010년 JT정밀지회 일본 원정투쟁에서 걸림돌이 된 것은 2008년 합의였다. 2008년 일본씨티즌의 자본철수는 일본 노동법상으로 불법이었지만 이를 노동조합 위원장 명의로 합의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준 것과 같고, 일본 노동조합의 경우 한 번 합의한 사항은 설사 자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다시 같은 사항을 가지고 교섭을 요구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그래서 2008년 같이 일본에서 JT정밀 문제해결을 위한 지원과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즉 국제연대를 위해서도 최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올바른 상황판단과 투쟁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셋째, 폐업에 따른 보상요구를 어떻게 하고 목표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JT정밀의 경우 단체협약이 해지되기는 했지만 정리해고의 경우 평균임금의 36개월을 회사가 보상해야 하는데 회사는 이러한 보상을 회피할 목적으로 폐업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경남지부는 담당 임원을 통해 폐업에 따른 요구는 폐업을 선택한 자본의 의도가 분명한 만큼 정리해고에 준하는 요구를 하고, 타결목표는 남는 자산이 투쟁하는 조합원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이를 관철하면 가장 잘한 교섭이라고 강조했다.
요구안의 문제와 교섭 타결목표에 대해 다수의 조합원과 지회간부들은 동의를 했지만 일부지회간부와 조합원은 이를 동의하지 않아 합의이후 지회와 지부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한 상황이다. ●
- 진창근 (금속노조 경남지부 부지부장)
(2011년 2월 9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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