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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5호> 2011년은 2010년을 되풀이 할 것인가

 

2011년은 2010년을 되풀이 할 것인가

 

 

2011년 투쟁준비가 서서히 본격화되고 있다. 금속노조는 오는 2월 28일 개최되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11년 임단투 방침을 결정한다. 이에 앞서 노동부는 지난 1월 6일 ‘복수노조 업무매뉴얼’을 발표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앞세운 정권의 노동탄압의 윤곽이 어느정도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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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레디앙)

 

교섭창구 단일화의 목적은 교섭권, 쟁의권 박탈

 

정부의 ‘복수노조 업무매뉴얼’ 발표 이후 많은 논의들이 업무매뉴얼 내용 분석에 할애되고 있다. 정부 방침을 분석하여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복수노조를 둘러싼 투쟁의 의미와 방향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결의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노동부 매뉴얼에 대한 세부적 분석은 자칫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 손오공’이 될 수 있다.

 

그 한 예로 지난 1월 18일 개최된 김기덕 변호사의 ‘개정노조법과 대응’ 교육을 들 수 있다. 기대와는 달리 길고 지루하게 진행된 교육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법의 허점을 공략하라”였다. 그런데 아직 시행을 앞 둔 시점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저런 법적 허점들은 시행과정에서 결국 자본에 유리하게 현실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갑갑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한 교육이었다.

 

정부 매뉴얼에 대한 세부적 분석보다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강제적) 단일화의 목적은 민주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박탈하려는 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교섭권과 쟁의권이 박탈된 노조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개악된 복수노조 관련법과 민주노조 운동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조항은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노동조합의 주체적인 힘이 당장 부족하다면 2년, 3년, 4년에 걸쳐서라도 반드시 뜯어고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따르는 불가피한 고통과 희생은 지도부가 앞장서서 감수해나가야 한다.

 

이 같은 절박한 인식의 공유가 우선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그리고 조합원들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투쟁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특히나 점점 갈수록 ‘불법 투쟁’을 부담스러워하는 현실에서 절박한 인식의 공유 없이는 조합원들이 선뜻 투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 시작은 당연히 지도부의 절박함과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조합원들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를 보고 얼마만큼의 절박성과 결의를 느낄 수 있을까. 지도부가 진짜 투쟁할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아닌지 조합원들은 다 안다.

 

‘7월 이전 타결’이라는 헛된 기대

 

정부 매뉴얼 분석을 보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법이 시행되는 7월 1일 이전에 2011년 임단협을 타결하면 적어도 2년 동안은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설령 7월 1일 이전 타결이 안 되고 교섭 중에 복수노조가 생긴다고 해도, 노동부는 창구단일화를 하라고 하겠지만 그대로 교섭권을 갖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이런 주장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7월 이전 타결’에 대한 고려는 2011년 투쟁에 약이 되기보다는 자칫 투쟁을 교란시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타임오프를 둘러싼 2010년 투쟁에서 마찬가지로 ‘7월 이전 타결’ 주장이 어떤 현상을 초래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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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발전의 노조 와해공작과 관련해 책임자 처벌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기자회견.

            동서발전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복수노조를 앞세운 노조파괴를 미리 보여준다. (사진=레디앙)

 

또다시 개별 사업장에 맡길 것인가

 

2010년 타임오프를 둘러싼 투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행정력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을 금속노조는 개별 사업장이 각자의 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둘러싼 2011년 투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금속노조 지도부가 몰라서 타임오프 문제를 개별 사업장이 각자 해결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다 알면서도 현실적인 방안과 힘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금속노조 지도부의 근본적인 대책과 결단이 없다면 2011년 역시 다 알고 있으면서도 2010년을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오는 2월 28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 제출된 2011년 임단투 방침(안)에 어떤 대책과 결단이 담겨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2011년 투쟁이 2010년과 같이 전국적인 총노동 전선의 형성 없이 개별 사업장 별로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2010년보다 더 참혹할 것이다. 2010년 타임오프 문제가 금속노조 전체 사업장에 모두 해당되는 사안이었다면,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문제는 현대자동차 등 당장은 다수노조의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은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노동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조직력이 약한 사업장에서부터 노동조합이 각개격파 당할 것이다. 타임오프 문제가 정 안되면 전임자 수를 줄이는 선에서 후퇴할 여지라도 있었다면 복수노조 문제는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는 더 파괴적일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일기 속 다짐

 

전태일 열사는 ‘바보회’ 활동이 실패하고 좌절한 1969년 겨울 일기장에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나는 결단코 투쟁하련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 같은 일기장의 다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9월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왔고 11월 13일 마침내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항거했다.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결단코 투쟁하겠다는 전태일 열사의 다짐이 2011년 민주노조운동에게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민주노총과 경남도본부, 그리고 금속노조와 경남지부도 모두 마석 모란공원에서, 양산 솥발산에서 신년식을 하며 2011년의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그 결의는 과연 전태일 열사의 일기 속 다짐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34일째 밤을 보내는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생각하며, 민주노조운동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2011년 2월 9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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